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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청담역 6번 출구 앞에 생긴 페미니즘 카페에 가봤다

등록 2017-02-09 15:21수정 2017-02-09 15:28

20년 만에 돌아온 페미니즘 멀티 카페 ‘두잉’
신학·상담 공부한 페미니스트 김한려일씨 개점
책읽기·상담·갤러리 등 여성주의 복합문화공간
“강남역 살인·세월호 사고 죄책감이 동력”
“저는 남성이지만 여성학을 배우고 싶은데 수강 신청할 강의가 없어요. 서울에서 여성학 강좌가 개설된 대학은 서울대·이화여대·서강대 3곳 정도로 알아요.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다루는 강의 개설을 요구하는 학생들이 모여 이곳에서 책도 보고 대책을 마련하려 해요.”

대학생 김태완(24)씨가 말하는 ‘이곳’은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문을 연 카페 ‘두잉’이다. 전체 이름은 ‘페미니즘 멀티 카페 두잉’. 페미니즘을 내세운 카페는 1997년 6월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에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카페 ‘고마’가 생겼다 사라진 뒤 처음이다.

20년 만에 돌아온 ‘페미니즘 카페’를 지난 7일 가봤다. 북카페가 주요 콘셉트인 두잉에는 책 600여권이 구비됐다. 페미니즘, LGBTQ(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퀴어) 등 젠더·섹슈얼리티 관련 도서에다 문학·철학·역사·문화·과학·정치·심리·신학 등 20개 분야를 페미니즘 관점에서 읽을 수 있도록 영역별로 분류해뒀다. 김한려일 두잉 대표는 “강연·세미나, 갤러리 그리고 여성 상담과 쉼터를 포함하는 페미니즘 복합문화공간, 페미니스트들의 허브를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카페는 쉬러 가는 곳이고, 북카페에서 열리는 강연은 심심찮게 접할 수 있지만, 이곳처럼 갤러리이자 상담소인 카페는 드물다.

그림과 상담은 ‘치유의 도구’라는 점이 닮았다. 실제로 두잉에는 상담실이 따로 있다. 장로회신학대에서 신학을, 이화여대에서 상담을 공부한 김한려일 대표는 “두잉에서 1차적으로 상담이 이뤄지지만, 내담자에게 관련 전문가나 페미니스트 단체를 연결해 드리는 등 ‘다리’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상담은 1회 1만원.

책장이 설치된 벽면을 제외한 모든 벽엔 그림이 걸려 있다. 상설 갤러리인 셈이다. 페미니즘·인권·환경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이 주로 소개될 예정이다. 현재는 정수화랑, 경인미술관 등에서 두 번의 개인전을 연 신진 작가 황슬의 작품전 ‘품다’가 진행 중이다. 모두 11점이 전시·판매된다. 관람료는 무료, 오는 3월3일까지.

페미니즘 카페 ’두잉’ 내부.
페미니즘 카페 ’두잉’ 내부.
김한려일 두잉 대표(마이크 든 이)가 지난 4일 카페 개소식에서 발언하는 모습. 두잉 제공
김한려일 두잉 대표(마이크 든 이)가 지난 4일 카페 개소식에서 발언하는 모습. 두잉 제공

서가에는 ‘군 위안부’와 세월호 코너도 따로 두었다. 김한려일 대표는 2014년 9월부터 2015년 5월까지 강남역에서 세월호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시민 서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에게 강남역은 각별한 장소인 듯했다. “평생 가장 충격적인 일이 둘이에요. 하나는 2014년 4월 세월호, 하나는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 사건. 죄책감이 너무 커요. 이 두 사건이 두잉을 시작하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청담역 6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한 두잉에서 강남역까지 거리는 4.7㎞ 정도로 그렇게 멀지 않다.

‘청담역 6번 출구’는 10대들에겐 꽤 알려진 지명이기도 하다. 인근에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 사옥이 있기 때문. 페미니즘 카페가 청담역에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없어요. 단지 오랫동안 이 부근에서 살았고, 직장 생활을 했고, 세월호를 잊지 말자고 거리에 섰고… 제겐 편한 곳이 된 거죠. 마침 지하철역 출구 코앞에 카페 만들 만한 공간이 생겼던 거예요.”

이날 오후 두잉을 찾은 손님은 대부분 20대였다. 대학생 박지은(25)씨는 “학내에 여성학 강좌는 없지만 스스로 여성학 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스터디 그룹도 조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치마만다 은고지 아다치에 지음, 창비)를 읽고 있던 20대 남성은 “페미니즘이란 말은 많이 듣는데 생소한 건 사실이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모르는 게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페미니즘 카페라는 건 모르고 들어왔지만, 거부감은 별로 없다”고 했다.

오는 25일 낮 1시부터 두잉에선 페미니즘 도서 낭독회가 열린다. 참가자 전원이 분량을 나눠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봄알람)을 소리 내 읽는 자리. 이 책을 지은 이민경 작가도 참석한다.

글·사진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두잉에 마련된 상담실. 벽에 황슬 작가의 그림이 전시돼 있다.
두잉에 마련된 상담실. 벽에 황슬 작가의 그림이 전시돼 있다.
두잉에 진열된 페미니즘 굿즈(goods) 에코백과 머그컵.
두잉에 진열된 페미니즘 굿즈(goods) 에코백과 머그컵.
<페미니즘 모먼트> <대한민국 넷페미史>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등 여성주의 책들이 보기 쉽게 진열돼 있다.
<페미니즘 모먼트> <대한민국 넷페미史>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등 여성주의 책들이 보기 쉽게 진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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