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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같이 먹고 같이 잠들고 “우리는 랜선 자매”

등록 2017-04-09 19:35수정 2017-04-09 20:55

일상을 중계하는 유튜버들
한번 보면 그냥 끝까지 보게 되는
쌩얼 수다, 먹방, 생활소음
아무 것도 안하는 장면이 주는 위로
미스 데이지.
미스 데이지.
“갑자기 카메라가 켜고 싶었어요.”(‘고수의 데일리 스냅’) “일본에서 택배가 왔어요.”(‘회사원B’) “동동이(강아지)를 키우기로 하고 서울로 데려왔어요.”(‘이승인’)

유튜브 동영상을 켜면, 친구를 만나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엄마와 수다를 떨고 애완동물이 자는 모습이 나온다. 특별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특별한 장소도 등장하지 않는다. ‘고수의 데일리 스냅’ 부제는 ‘평범해도 괜찮아’이고 ‘회사원B’의 채널 설명은 ‘유튜브 속에 사는 여자의 유튜브에서 가장 별 볼 일 없는 채널’, 이승인의 브이로그는 ‘이승인의 보통날’이다. ‘브이로그’(vlog·동영상으로 생활을 기록하는 블로그)는 휴대전화의 진화와 고속 인터넷 기술, 손쉬운 편집 프로그램이 협업하여 만들어낸 2017년의 풍경이다. 이제 유튜버(유튜브 채널 운영자)들은 먹방, 뷰티, 여행 등 먹고 꾸미고 떠나는 ‘특별한’ 경험을 넘어서 ‘일상’을 중계한다.

‘쌩얼’로 택배 뜯고 라면 끓여 먹고 2년 전 미국 보스턴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취미로 유튜브를 시작한 ‘미스 데이지’(김수진)도 가끔 일상 영상을 올린다. “유튜브에서 카메라 조작법 등을 배워서” 유학생활·영어 팁을 올리기 시작했고, 다이어트와 뷰티 등의 ‘주제’가 있는 영상들로 옮겨갔다. 그 뒤 댓글에서 궁금해하는 것들을 풀어주려고 찍다 보니 ‘방송과 일상’의 경계도 넘게 되었다. 미스 데이지는 “처음에는 일상을 공개한다는 것에 경계심이 있었”지만 “마음을 열도록 한 것은 영상을 보는 분들의 댓글이었다”고 한다. 가을에 있을 결혼 소식을 맨 처음 알린 것도 유튜브 채널이었다. “결혼 날짜가 정해진 뒤 친한 친구에게 전화하듯이 유튜브에 알렸다. 연애 과정도 알고 고민도 아는 이들이 축하 인사를 해주니 뿌듯하고 기뻤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생활과 나란히 ‘언니’(유튜버)들의 이런 생활 모습을 지켜본다. 독신의 회사원 ㅈ(33)씨는 “결혼하고 싶을 때” 알콩달콩 사는 부부의 일상이 그려진 ‘촘미’(chommy)의 ‘춈봉부부’ 영상을 본다. “부유하거나 화려하게 살지 않아도 저렇게 소소하게 뜻 맞춰 살면 좋겠다 싶을 때, 그리고 웃을 일 없을 때 보게 된다.” ‘촘미’는 결혼하고 처음 사과를 깎는 남편의 모습, 남편에게 몰래 선물하는 모습 등을 1분가량의 영상에 담아 보여준다. 재생 속도를 빨리하여 유쾌한 소리로 만든 것이 영상의 특징이다.

회사원 ㅇ(34)씨는 “자기 전” ‘언니’들을 찾아간다. 이틀에 한 번 정도는 본다. 언제 업데이트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차피 잠은 안 오니 언니들 근황을 확인하려고 보게 된다.” 재미로 치자면 ‘택배 뜯는 영상’이 제일이다. “칼을 찾아서 뜯고 하나하나 꺼낼 때의 그 두근거림이 그대로 전달된다.” 파워 뷰티 유튜버 ‘회사원A’가 추가로 운영하는 ‘회사원B’ 채널은 일상 채널 영상이다. 일본의 유튜브 친구가 보내준 택배 개봉, 대형할인매장에서 장 보고 돌아와 품목을 확인하고 꺼내서 시식하는 장면 등을 보여준다. 아침 일찍 국제우편물이 도착하면 바로 카메라를 켜고 녹화를 한다.

유트루.
유트루.
ㅁ(35)씨는 얼마 전 친구가 보내준 링크를 타고 이런 일상을 탐닉하게 되었다. “문화충격이었다. ‘쌩얼’로 일어나고 뭐 만들어 먹고 운전하고 그러면서 계속 이것저것 수다를 떠는 것을 보는데, 그냥 끝까지 보게 되더라.” 뷰티 유튜버 유트루(유진실)는 일상 채널 ‘유트루’(Yootrue)를 별도로 운영한다. 뷰티 채널에서도 화장 팁과 함께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빠지지 않는다. 한 영상에 달린 댓글 “이거 보다가 잠들어요”에는 ‘좋아요’(엄지척)가 61개 표시되어 있다. 길 가는데 아는 사람이라며 간식거리를 안겨준 팬도 만난 적이 있다.

같이 잠들고 같이 먹고 댓글을 통해 수다를 떤다. 일상 채널의 구독자들은 “우리는 ‘랜선자매’”라고 말한다. 전문 일상채널 브이로그 ‘이승인’은 21만명, ‘회사원B’는 35만명, ‘유트루’는 7만명이 구독하고 있다.

‘에이에스엠알(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자동감각쾌락반응)이라고 하는, 생활 소음을 담은 동영상도 인기다. 사탕봉지를 까고 그릇에 굴리거나 블록을 쌓고 무너뜨리는 소리, 비누를 깎는 소리를 담은 동영상은 ‘무덤덤’하게 몇십분씩 이어진다. 머리를 만져주는 소리나 귀 파주는 소리 등은 그리운 친구나 어머니 무릎에 누워 잠을 자던 경험을 일깨운다. 이런 경험을 동반한 편안한 소리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다.

초의 데일리쿡.
초의 데일리쿡.
■ 맥락은 필요 없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장근영 박사는 “(이러한 영상에는) 처리해야 할 정보가 많지 않다. 전후 맥락을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 새로 배워야 할 것도 없다. 이런 부담이 없는 게 인기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정보 과잉의 사회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영상’에 위로를 얻는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 비평가 아즈마 히로키가 오타쿠 문화를 분석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꺼낸 ‘동물화’ 개념과 연결된다. 어떤 콘텐츠를 소비할 때 전체 줄거리나 맥락을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취향에 맞는 특징적인 부분이나 캐릭터를 즐기는 게 동물화다. 줄거리나 내용의 완결성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화장법처럼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너도 나도 별다를 것 없는 것 같은 일상생활 동영상을 만들고 소비하는 현상은 이와 일맥상통한다.

올해 송출을 시작한 엠시엔(Multi-Channel Network) 방송 <다이아티브이>(Dia TV)는 일상생활을 담은 동영상을 내보내고 있다. 다이아티브이에서는 “1인 가구의 증가가 1인 미디어의 증가로 이어졌다. 외로운 1인 가구 구성원들이 ‘생활의 감각’을 찾아서 동영상을 보는 게 아닐까”라고 일상 동영상의 증가 원인을 짐작한다. 점심은 뭘 먹었고, 저녁엔 누구를 만났으며, 오늘 누구 때문에 화가 났는지,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감정을 나눌 상대가 없는 ‘외로움’이 일상 동영상의 인기 배경이라는 것이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장은 “바쁘고, 경쟁에 시달리는 사회에서 개인들이 파편화되고 일상은 파괴되고 있다. ‘평온한 일상’을 누리는 게 현실에서 점점 불가능해지면서 일상 동영상을 통해 그런 욕구를 간접적으로나마 충족시키려는 현상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사진 유튜브 캡처·유튜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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