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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신뢰받는 언론은 ‘가짜뉴스’보다 힘이 세다

등록 2017-06-22 19:30수정 2017-06-22 21:24

남아공 더반 세계편집인포럼 참관기

각국 언론인 테러·탄압과 함께
‘가짜뉴스’ 범람 최대위협으로 꼽혀

언론생존법은 결국 대중의 신뢰
가치·고품질 정보로 차별성 제시
독자들과 소통에서 해법 찾아야
지난 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세계편집인포럼 개회식에서 ‘자유의 황금펜 상’을 수상한 터키 언론인 잔 뒨다르가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세계신문협회 제공
지난 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세계편집인포럼 개회식에서 ‘자유의 황금펜 상’을 수상한 터키 언론인 잔 뒨다르가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세계신문협회 제공
어떤 나라들에서는 언론인에 대한 테러와 법의 외피를 쓴 탄압이 여전히 자행되고, 그보다 더 광범위한 나라들에서 언론인들은 가짜 뉴스를 비롯한 새로운 형태의 위협에 맞서고 있었다. 지난 7~9일(현지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세계신문협회(WAN-IFRA)가 주최한 세계편집인포럼(WEF)은 지구촌 곳곳에서 ‘진실에 대한 공격’에 맞서 분투하는 언론인들의 현장 보고이자 대안 모색의 자리였다.

목숨까지 위협받는 기자들 포럼 첫날 행사인 ‘언론자유 라운드 테이블’. 멕시코에서 온 아드리안 로페스(<에디토리알 노로에스테> 국장)는 “불과 2주 전에” 그가 일하는 도시 쿨리아칸의 거리에서 총격을 받고 피살된 하비에르 발데스의 이야기를 했다. 마약 밀매 등 조직범죄를 추적해온 저명 언론인인 발데스는 멕시코에서 3월 이후 희생된 여섯번째 언론인이다. 로페스는 “과거에도 수많은 기자들이 살해됐지만 범인이 처벌된 경우는 1%도 되지 않는다”며 멕시코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비난했다. 그는 “멕시코는 세계에서 언론인에게 가장 위험한 나라가 됐다”고 했다.

그보다 더 위험해 보이는 나라는 터키였다. 잔 뒨다르는 고국 터키로 돌아가지 못한다. 일간지 <줌후리예트> 편집국장이었던 그는 2015년 터키 정부가 시리아 무장조직에 무기를 공급한다는 의혹을 특종 보도한 뒤 국가기밀 유출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석달여 만에 풀려났지만 법원 앞에서 암살 위기까지 겪은 그는 독일로 망명해 살고 있다. 세계편집인포럼은 해마다 시상하는 ‘자유의 황금펜 상’ 수상자로 올해 뒨다르를 선정했다. 그는 “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언론인들의 감옥에서 왔다. 터키에는 지금도 150명의 동료가 갇혀 있다”며 “그들은 감옥에서도 기사를 쓰고 만평을 그리고 있다. 머지않아 이를 출판할 계획이다. 세계 언론의 연대로 그들이 혼자가 아님을 알리고 터키 정부에도 경고를 줘야 한다”고 호소했다.(포럼이 끝나고 닷새 만인 지난 14일, 뒨다르의 특종 보도 취재원이었던 터키 야당 의원에게 국가기밀 유출죄로 25년형이 선고됐다는 외신 기사를 접했다.)

지난 9일 진행된 세계편집인포럼 ‘신뢰의 미래’ 토론에서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왼쪽)가 발언하고 있다.  세계신문협회 제공
지난 9일 진행된 세계편집인포럼 ‘신뢰의 미래’ 토론에서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왼쪽)가 발언하고 있다. 세계신문협회 제공

가짜 뉴스와의 전쟁 이미 민주주의를 이뤘다는 나라들에서 온 언론인들은 민주주의에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는 가짜 뉴스와 언론의 신뢰 위기를 걱정했다. 언론을 ‘미국 국민의 적’으로 공격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포럼 기간 내내 비판과 조롱의 도마에 오르고, 미국 대선에서 두드러졌던 ‘가짜 뉴스 현상’이 집중 분석 대상이 됐다.

미국언론연구소(API)의 제인 엘리자베스 선임연구원은 “10만개의 트위터를 분석한 결과 가짜 뉴스들은 이를 바로잡는 뉴스보다 8배나 빨리 퍼져나갔다”고 소개했다. 이 연구소가 1만명의 저널리즘스쿨 졸업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언론이 직면한 문제점으로 ‘수익구조 악화’나 ‘사주들의 지나친 이익 추구’보다 ‘온라인에 넘쳐나는 잘못된 정보’를 꼽은 응답이 가장 많았다. 전문적인 팩트체킹 매체·기관이 2014년 이후 2.5배나 늘어난 것도 가짜 뉴스에 대한 미국 사회의 경각심을 보여준다.

미국의 경험은 다른 나라들에 반면교사가 됐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37개 언론사가 연합해 ‘크로스체크’라는 프로젝트팀을 만들었다. 이들은 10주 동안 활동하며 시민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64개의 가짜 뉴스를 가려내 보도했다. 이와 별개로 <르몽드>는 수백개의 웹사이트와 블로그, 페이스북 페이지, 트위터 계정 등을 검토해 신뢰도와 정확도의 등급을 매겨 독자들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세계 80개 언론사·연구기관 등이 참여해 인터넷상의 잘못된 정보를 가려내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퍼스트드래프트’의 전략·연구 책임자 클레어 워들은 “과거에는 잘못된 정보는 언론의 관심사가 아니었지만 이제는 언론 수용자들이 거짓 정보의 세계를 항해하는 데 도움을 받길 원한다. 검증과 팩트체킹은 언론의 새로운 영역이 됐다. 앞으로 이 분야의 전문기자들도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의 무기화’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필리핀 사례는 가짜 뉴스와 이를 파헤치는 언론인에 대한 공격, 민주주의의 후퇴 등이 얽힌 복합적인 그림을 보여줬다. 인터넷 언론 <래플러>는 1년여간 가짜 뉴스의 흐름을 추적한 끝에 26개 페이스북 계정이 200만명 이상의 이용자에게 가짜 뉴스를 전달한 사실을 밝혀냈다. 지난해 대선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후보 지지를 유도하는 내용들이었다. 가짜 뉴스 생산자들은 대선이 끝난 뒤에는 두테르테 대통령 비판 세력을 겨냥했다. 필리핀에서는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말을 하는 이들, 특히 여성들에게 소셜미디어에서 가차 없는 공격이 쏟아진다고 한다. 심지어 살해와 성폭행 협박까지 받는다고 한다. <래플러> 대표인 마리아 레사는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가짜 뉴스 분석 기사를 보도한 뒤 나 자신도 시간당 90개의 악성 메시지에 시달렸다”고 했는데, 이 말이 또 가짜 뉴스로 가공돼 퍼졌다. “마리아 레사가 ‘분당 90명이 나를 성폭행하길 원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레사는 포럼 발표에서 “소셜미디어가 언론사를 성장하게 하고 좋은 의미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큰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H4s결국 답은 언론의 신뢰 회복 포럼에 참석한 유네스코 표현의 자유 국장인 가이 버거는 “세계적으로 언론인에 대한 신체적 공격, 디지털 공격, 가짜 뉴스, 불신의 조장 등 전방위적인 공격이 벌어지고 있다. ‘퍼펙트 스톰’이라고 할 만하다”고 표현했다. 이에 맞서는 언론의 무기는 무엇일까?

남아프리카공화국 언론위원회 사무총장인 원로 언론인 조 틀롤로에는 극단적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인권탄압에 맞섰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저널리스트를 죽이려는 이유는 그들이 갖는 힘 때문이며 그 힘은 바로 대중의 신뢰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언론은 그 반대편에 선 자들의 공격 목표가 되기도 하지만 그런 노력을 통해서만 공격을 이겨낼 힘도 얻을 수 있다는 말로 들렸다.

포럼에서는 언론에 대한 신뢰가 점차 엷어져가는 현실에 대한 진단과 함께 신뢰를 다시 다지기 위한 다양한 방안도 제출됐다.

“언론이 신뢰를 회복하려면 윤리적이고 가치있는 고품질의 정보로 그 밖의 정보와 차별성을 보여야 한다.”(영국 언론윤리네트워크 에이던 화이트 사무총장)

“언론이 주창해온 투명성, 참여 등의 가치를 언론 자신한테도 적용해 독자들과 대화하는 저널리즘을 만들어야 한다.”(미국 텍사스대학교 나이트저널리즘센터 호젠타우 아우베스 소장)

“갈수록 복잡해지고 가짜 정보도 넘치는 세상에서 좋은 저널리즘은 유지돼야 한다. 저널리스트는 그들의 뉴스가 진지하고 믿을 만하고 의지할 만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버거 국장)

세계 각지에서 모인 동료들의 현실과 고민을 나누고 각자의 일터로 돌아간 언론인들에게 이번 포럼의 소주제 가운데 하나였던 ‘신뢰의 미래’는 계속 붙들어야 할 소중한 화두가 될 것 같다.

더반(남아프리카공화국)/박용현 기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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