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5월 광주는 제가 잘 아는 일이고 겪은 일입니다. 그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객관적인 거리를 두게 되지 않을까 했는데 뜻밖에도 아주 몰입해서 봤습니다. 특히 두 주인공이 광주와 아무 상관 없는 국외자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두 국외자의 시선을 통해 광주로 들어가게 한 연출이 보편적 휴머니즘을 발동시켜서 보는 동안 계속 눈물이 나더군요.”
작가 황석영이 18일 저녁 서울 합정동 한 영화관에서 80년 5월 광주를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하고 이 영화를 연출한 장훈 감독, 그리고 이다혜 <씨네21> 기자와 대담을 나누었다. 황석영은 1985년 5월 광주의 진실을 담은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넘어 넘어>)의 대표 집필자로 참여한 바 있다. 그는 이날 대담에서 “대하소설 <장길산>을 1984년 9월에 완간한 뒤 이듬해인 85년에는 한창 이 책의 마케팅을 해야 할 무렵이었는데, <장길산> 완간 직후부터 <넘어 넘어> 기록에 매달리느라 그러질 못했다”며 “결국 그 책 때문에 85년 3월 광주를 떠났고 다시는 광주로 돌아가지 못한, 나로서는 작가로서 중요한 시기를 바친 감회 깊은 책”이라고 말했다.
“배우 송강호가 연기한 주인공 택시 운전사는 정치 의식이나 시사 상식이 거의 없는 소시민입니다. 그런 사람이 광주의 죽음과 삶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이틀을 광주에서 지내면서 인간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아주 근사하게 그렸어요. 특히 송강호가 서울 집으로 돌아가려고 순천까지 갔고 거기서 어린 딸의 신발까지 샀다가 결국 광주로 되돌아가는 반전 장면에서 울컥했어요. 말하자면 소시민적 꿈을 넘어서게 하는 어떤 인간적인 점이 있다는 거죠.”
그러나 황석영은 “영화 말미에 나오는 ‘카레이싱’(추격) 장면이 너무 소박하달까 순수해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장훈 감독은 “그 장면은 시나리오 초고에도 있었던 장면이고 촬영할 때 가장 어려웠던 장면이었다”며 “영화에서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도청 앞에서 택시와 버스 운전사들이 차량을 이용해 계엄군의 방어선을 뚫었던 사실을 감안해 그분들의 마음을 영화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석영 역시 “카레이싱 장면이 너무 소박하고 순수해 보였다는 뜻일 뿐, 정으로 둘러싸인 공동체가 위협 받았을 때 공동체 성원들이 들고 일어나는 모습을 그런 장면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는 타당성이 있다”고 동의했다.
“사실 당시 광주에서는 영화에서보다 더 잔인하고 극악한 일화들이 많았습니다. 거기 내려온 군인들은 국민을 지키는 군대가 아니라 쿠데타를 일으킨 군사 반란 세력의 사병이었고 광주 시민들이 그에 맞선 것은 헌법에도 보장된 국민저항권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광주’는 어느 한 시기에 반짝 빛났다가 사라진 불빛이 아니라 우리 근현대사를 면면히 이어져 온 민의의 디엔에이의 힘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지난 10년간 집권 세력이 ‘광주’를 왜곡하고 폄훼했던 것은 순전히 정권욕 때문이었던 것이죠.”
황석영은 “그동안 나왔던 몇편의 광주 영화들이 지나치게 추상적·관념적이거나 거꾸로 투사 및 시민군의 시점을 과장해서 그렸던 데 비해 이 영화는 과장하지 않은 점이 좋았다”며 “지금쯤 이런 현실주의적 시각을 지닌 영화가 나타난 게 매우 좋고 특히 현실에서 곧바로 튀어나온 듯 자연스러운 송강호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소감을 마무리했다.
영화 <택시운전사> 특별 시사회 뒤 대담을 하는 장훈 감독(왼쪽부터), 황석영 작가, 이다혜 <씨네21> 기자.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쇼박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