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오바마 전쟁>이라는 영화가 있다. 2014년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을 비롯해 그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찬사받았던 작품임에도 국내에서는 디지털 형태로 조용히 개봉한데다 다소 생뚱맞은 번역 제목 탓에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이 수작의 존재가 뒤늦게나마 알려진 것은 올해 초 넷플릭스에서 10부작 드라마판을 공개하면서부터다.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Dear White People)이라는 원제를 그대로 살린 드라마는 공개되자마자 국내에서도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 호평을 얻어내며 원작에 대한 관심까지 이끌어냈다. 원작 영화가 흑인 대통령이라는 표상 아래 한층 교묘해진 인종 차별 문제를 다루며 ‘오바마 시대’를 성찰한다면, 2017년의 드라마는 한층 뚜렷해진 인종 간 갈등을 부각시키며 ‘트럼프 시대’의 그늘을 증언하고 있다.
드라마는 원작의 연장선장에 있는 이야기다. 여전히 백인 중심의 가상 명문대 윈체스터 대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원작의 핵심 사건인 ‘블랙페이스 파티’ 이후부터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백인 학생들이 피부를 검게 칠하고 흑인 코스프레를 했던 이 ‘윈체스터 역사 최악의 스캔들’은 캠퍼스에 엄청난 후유증을 몰고 온다. 흑인 학생 연합의 리더 샘 화이트(로건 브라우닝)의 인종차별 고발 라디오쇼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의 발언 수위는 더 높아지지만, 흑인 학생들 간에는 저항 방식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교차하고 학교 쪽은 갈등을 봉합하기에 급급하다. 이 와중에 교내 경찰이 흑인 학생 연합의 또 다른 리더이자 강경파인 레지 그린(마크 리처드슨)을 총으로 겨누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미묘한 아이러니를 통해 오바마 시대의 인종주의를 겨냥한 원작에 비해, 차별의 폭력이 더 직접적인 형태로 구현된 드라마는 풍자의 섬세한 층위가 다소 힘을 잃은 편이다. 하지만 원작보다 입체성이 강화된 캐릭터들의 매력이 그 아쉬움을 채우고도 남는다. “백인은 계속해서 다양한 존재로 묘사되지만 문화 속 흑인은 대부분 비슷하다. 문화는 사람들에게 가능성을 말해주는 강력한 도구다. 유색인종의 선택권은 좁은 편이다.” 학내 신문 <디 인디펜던트> 기자이자 흑인 게이 청년 라이어넬 히긴스(데런 호턴)가 지적한 미국 문화의 한계를, 드라마는 다양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들의 묘사로 극복한다. 그리하여 백인 청년들의 전유물과도 같았던 아이비리그 캠퍼스 드라마를 흑인 청춘물로 멋지게 다시 쓴다.
더 나아가 이 같은 미덕은 소수자 집단 모두에게 적용된다. 영화 속 흑인 캐릭터 묘사를 비판하는 레지에게 한 중국계 학생이 “이번달에 흑인이 나오는 영화는 딱 두 편이라 짜증나겠다. 난 2000년 이후로 아시안 나오는 건 <조이 럭 클럽>이랑 <와호장룡> 두 편밖에 못 봤는데”라고 받아치는 장면이 대표적인 사례다.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은 그렇게 트럼프 시대의 노골적인 폭력과 오바마 시대의 은밀한 인종주의를 영리하게 횡단한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