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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이름 나열만 하다가 끝난 수상소감?…나눠주기 시상부터 바꿔야

등록 2018-01-01 17:36수정 2018-01-03 14:57

남지은의 이 장면 NG

소감 매뉴얼이라도 있는 걸까. “하느님께 감사드리고”를 시작으로 제작진, 미용실, 회사, 가족한테 감사하다는 말만 늘어놓다가 끝난다. 이름만 열거했는데도 시간이 모자란다. 급기야 제작진은 빠른 진행을 주문한다. 호명되면 나와서 상 받고 고마운 이름 열거하다가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감흥이 생길래야 생길 수가 없다.

때가 되면 찾아오는 ‘연기·연예대상’은, 올해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예외없이 감사하기 대회는 이어졌다. 그나마 김상중(문화방송), 천호진·김영철(한국방송), 지성(에스비에스) 등 대상 수상자들이나, 시로 마음을 대신했던 송옥숙(문화방송, 황금연기상), “솔직한 배우 되겠다”는 말로 신인의 떨림을 전달했던 양세종(에스비에스, 신인상), 드라마 내용에 맞게 성범죄에 일침을 가한 정려원(한국방송, 최우수상)의 소감 정도가 인상적이었을까. “강아지야 보고 있니”라며 강아지를 찾았어도 그 순수함에 한없이 사랑스러웠던 이로운(문화방송, 아역상)을 제외하면 비슷비슷한 소감을 나열했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열리는 방송 3사 ‘연예,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배우들의 수상 소감이 대부분 고마운 이들을 나열하는 데 그쳐 아쉬움을 남긴다. 시상 분야가 많고 수상자가 많아 소감을 말할 시간도 없는 등 결국, 상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문제로 이어진다. 사진은 <2017 엠비시 연기대상>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연말이면 어김없이 열리는 방송 3사 ‘연예,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배우들의 수상 소감이 대부분 고마운 이들을 나열하는 데 그쳐 아쉬움을 남긴다. 시상 분야가 많고 수상자가 많아 소감을 말할 시간도 없는 등 결국, 상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문제로 이어진다. 사진은 <2017 엠비시 연기대상>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왜 우리는 개성 넘치는 소감을 들을 수 없을까. 배우들은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기 때문에 고마운 사람을 안 챙길 수 없다”고 말한다. “누군 부르고 누군 부르지 않으면 서운해할까봐 일일이 말하다 보면 시간이 다 간다”는 것이다. 인상적인 소감을 말하고 싶어도 남들 다 고마움을 표현하는데, 나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함에 결국 감사한 사람부터 열거하게 된다고도 한다. 그래서 <엠비시 연예대상> 서경석처럼 고마운 분들의 이름을 미리 적은 보드판을 들고나오는 센스 만점 수상자들이 오히려 반갑다.

배우들은 그럴 수 있다. 의미있는 자리에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 문제는 상 받는 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상 받는 사람이 많으니 소감 발언 시간은 줄어들고, 시간이 없으니 ‘고마운 사람’과 ‘소신 소감’ 중에서 많은 이들이 이름 열거를 택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엠비시 연기대상> 수상자만 40명이다. <케이비에스 연기대상>은 46명. <에스비에스 연기대상>이 22명 정도로 그나마 상식적인 범위다. 각 사 <연예대상> 수상자도 30명 남짓이다. 1993년 각 사 10명 미만이던 수상자가 3~4배 늘었다. 대상-최우수상-우수상-인기상-신인상’ 정도로 분류됐던 시상 분야는 2008년께부터 미니-일일극-주간극으로 나뉘는 등 세분화되고 있다. 올해 <엠비시 연기대상>은 ‘악역상’ ‘투혼 연기상’ ‘코믹 캐릭터상’까지 신설했다. 공동수상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엠비시 연기대상> ‘월화극 부문 최우수 연기상’은 후보가 3명인데 2명이 받았다.

시상식이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해버리면서 벌어진 일이다. 일부 피디들은 “배우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방송사가 트로피를 연말 성의 표시나 섭외 용도로 활용하면서 벌어진 촌극”이라고 말한다. 어렵게 공들여 출연해준 배우한테 고마움의 표시를 해야 하고, 또 미래의 관계맺기를 위해서도 상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줘야 하니 분야를 쪼개기 시작했고 공동수상을 남발하기 시작했다. 받아서 기쁘기보다 못 받으면 서운한 상이 돼버린 것이다. 결국, 수상 소감 촌극은 ‘상’을 둘러싼 한국 드라마 시장의 요상한 정치학의 결과인 셈이다. 어쨌든 의미도 감동도 없는 수상 소감이 나오지 않으려면 방송사의 시상식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하는 걸까. 그런 의미에서 의미없는 수상 소감은 내년부터 안 듣고 싶다. 엔지.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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