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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레인보우 라이더스’ 내년에 또 만나요

등록 2018-07-21 10:01수정 2018-07-21 11:22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14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레인보우 라이더스’가 14일 오후 서울광장을 출발하는 퀴어퍼레이드 행렬을 이끌고 있다. 박종식 기자
14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레인보우 라이더스’가 14일 오후 서울광장을 출발하는 퀴어퍼레이드 행렬을 이끌고 있다. 박종식 기자

오랜만에 헬멧 쓰고 인사드립니다. 지난해 ‘덕기자 덕질기’에서 당시 막 시작한 바이크 생활을 소심하게 소개했던 디지털 부문 김지숙입니다. 오늘은 제 바이크 생활 1년을 통틀어 가장 의미있는 일이지 않았나 싶었던, 뜻 깊은 행사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난 14일 서울 시청광장에서는 국내 최대 성소수자 축제인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렸습니다. 2000년에 처음 시작해 올해로 19회를 맞은 이 축제의 올해 슬로건은 ‘퀴어라운드’(Queeround)로, “우리(퀴어)는 일상 속 어디에나 있다”는 뜻이 담겼다고 합니다. 이날 축제에는 33도를 웃도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시민 6만여명(주최쪽 추산)이 참여해 축제를 즐겼는데요. 이날 퍼레이드에는 지난해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다름 아닌 무지개 깃발로 단장한 50여대의 모터바이크가 퍼레이드의 선두에 선 것입니다. 올해 첫 퀴어축제에 참여한 모터바이크 라이더들의 모임 ‘레인보우 라이더스’였습니다.

14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레인보우 라이더스’가 퍼레이드 중 즐거워 하고 있다. ⓒ 갬블러
14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레인보우 라이더스’가 퍼레이드 중 즐거워 하고 있다. ⓒ 갬블러
혹시 이날 종로, 명동 일대를 지나시다 장면을 목격하신 독자분들이 있으실지도 모르겠네요. 행진 중간에 빨간색 선글라스를 끼고 기우뚱 기우뚱 흰색 스쿠터를 운전하는 사람을 보셨다면 그것이 접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참여 신청 당시엔 이 일을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축제 당일 스쿠터를 타고 가서 대충 행진하다 오면 되겠지 했는데, 웬걸요. 지난 4일 저녁 서울 한강공원 망원 유수지에서 치러진 첫 공식 리허설은 저의 안이한 생각을 크게 반성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한강의 시원한 바람도 어쩌지 못하는 폭염 속에서 40여명의 라이더들이 비지땀을 흘리며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 행진을 위해 자발적으로 꾸려진 레인보우 라이더스는 예상보다 더 철저하고 계획적으로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대규모의 바이크들이 도심을 행진하는 만큼 불시에 벌어질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해 실제 행진 때처럼 대열을 정비하고, 까다로운 저속 운전을 리허설 전부터 몇 번이고 반복해 연습해왔던 것입니다. 레인보우 라이더스 쪽은 “총 준비기간은 3개월 걸렸다. 실제 연습 기간은 퀴어축제 전 2주 동안 거의 매일 저녁 진행했다”고 밝혔습니다.

대망의 퍼레이드 당일. 14일 광장을 가득 메운 함성과 무지개 깃발들 사이로 레인보우 라이더스들이 집합 장소인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 앞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습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륵주륵 흐르는 날씨였지만, 행사를 앞둔 라이더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습니다. 오후 4시40분 55대의 바이크와 라이더, 15명의 동승자들로 구성된 레인보우 라이더스 행진 대열이 을지로 4차선에 펼쳐졌습니다. 드디어 출발을 알리는 조장의 출발을 알리는 수신호가 떨어지고, 배기량에 따라 10명 혹은 7명으로 구성된 총 6개조의 대열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1시간 남짓 진행된 행진은 길고도 짧았습니다. 퍼레이드는 서울광장을 시작으로 을지로입구, 종각, 명동을 거쳐 다시 서울광장까지 약 4㎞의 거리를 행진했습니다. 시속 10㎞에도 못 미치는 ‘거북이 행진’이긴 했지만 레인보우 라이더들은 잠깐이나마 배기음을 마음껏 높이고, 경적을 울리며 평소에는 맛볼 수 없는 ‘해방감’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평소 익숙한 도심 거리를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그러나 라이더들이 입 모아 최고의 순간이라고 꼽았던 순간만큼은 뚜렷합니다. 선두에 섰던 바이크들이 행진을 마치고 유턴하면서 서로의 뒤에 서로가 있는 것을 확인하던 순간 모두 안장을 박차고 일어나 퍼레이드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맡겼습니다. “우리 뒤를 따라온 퍼레이드의 행렬을 본 순간, 그 날만은 우리가 소수가 아닌 다수라는 걸 느꼈다. 벅찬 감동이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는 이번 축제의 슬로건이 와 닿는 순간이었지요.

레인보우 라이더스의 주축이 된 ‘트바움’(트위터에 글 올리고 모터바이크를 타고, 페미니스트인 사람)들은 스스로를 가리키는 이 단어가 단체가 아닌 ‘정체성’이라고 말합니다. 아직 감동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레인보우 라이더스 단체 대화방에서는 벌써 내년 퀴퍼는 어떻게 할지 논의 중입니다. “음악이 없는 것은 우리 뿐이었어요” “다음 번엔 동승자가 아닌 제 바이크를 타고 가고 싶어요”. 이렇게 의욕 가득하니 조만간 다시 만날 수 있겠지요?김지숙 디지털에디터석 뉴스팀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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