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준 아리랑페스티벌 음악감독이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12~14일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우리 민족은 노래하면 춤을 추잖아요. ‘듣는다’ ‘느낀다’가 아니라 ‘부른다’ ‘춤춘다’는 행위로서의 아리랑을 보여주려고 해요.”
지난 3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황호준(46) 서울아리랑페스티벌 음악감독의 표정에서 여유가 묻어났다. 서울아리랑페스티벌은 아리랑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해 2013년부터 매년 열리는 서울의 대표축제 중 하나다. 올해는 ‘춤추는 아리랑’을 주제로 오는 12~14일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축제의 장을 펼친다. 첫날 개막공연을 맡은 황 감독은 “아리랑은 한 같은 정서적으로 강제된 요소가 강하고 재해석할 여지가 많지 않아 음악가에겐 어려운 테마인데 작곡가로서의 욕심보다 시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아리랑은 흔히 말하는 애절한 한과 슬픔만 담겨 있지 않다.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슬픔을 대면하는 방식, 벗어나는 방식, 극복하는 방식이 달랐던 것 같아요. 슬픔을 따로 떼어내 가지 않고 푸는 요소로서 아리랑이 불렸어요. 지역별로 아리랑이 다양한데 한이 신명, 흥과 분리되지 않고 한데 있어요. 진도아리랑은 음조가 슬퍼도 흥겹게 부르고, 가장 오래된 아리랑인 긴아리랑도 밝은 장조죠. 두 곡만 봐도 흥과 한이 늘 하나의 행위 안에서 이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4개의 장으로 구성된 개막공연 <춤추는 아리랑>은 그의 이런 생각이 잘 함축돼 있다. 긴아리랑, 구아리랑, 진도아리랑, 정선아리랑, 강원도아리랑, 밀양아리랑, 해주아리랑 등 지역별 아리랑으로 대한민국 100년의 서사를 엮은 아리랑 대서사시다. 60인조 오케스트라 음악 위에 10인조 서울아리랑페스티벌앙상블의 연주와 경기가창앙상블 ‘모해’의 가창을 더해 웅장한 음악을 선보일 예정이다. “작·편곡 한 아리랑 길이가 45분가량 돼요. 총 4개의 장에 일제강점기의 수난, 한국전쟁의 상흔, 민주화 과정에서의 희망, 다가오는 평화의 시대에 모두 하나 되자는 화합의 메시지를 담았어요. 사물놀이 대가인 김덕수 선생님의 연주로 시작해 시민들이 함께하는 아리랑 대합창으로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국악, 무용, 뮤지컬 등 공연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곡가인 황 감독은 그간 창극 <메디아>, 오페라 <아랑>,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 등의 음악을 맡아왔다. 올해 5월 광주에서 열린 ‘5·18기념음악회’에선 그의 아버지인 소설가 황석영이 테이프 제작·배포에 참여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서정적인 관현악곡으로 만들어 초연하기도 했다. “5·18 항쟁에 참여한 분들에게 들어보니 당시 우리가 함께하며 목숨을 걸고 있다는 행복감,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자부심 등에 대한 기억들이 있더라고요. 더 나은 세계로 나가고 있다는 확신 같은 것들이 밝게 느껴져 그런 감정들을 담았어요. 음악의 역할에 치유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급하게 가는 역사 속에서 뒤처진 해결되지 않은 정서나 감정의 찌꺼기를 잘 어루만지는 것이 아닐까 해서 작업했던 곡이고요. 이번 아리랑도 (긴 세월 동안)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다듬으려고 했어요.”
아리랑페스티벌은 개막공연 외에도 다양한 행사들이 준비돼있다. 록밴드 YB, 데이브레이크 등이 참여해 대중음악 감성으로 아리랑을 재편곡해 선보이는 ‘광화문뮤직페스티벌’(13일), 사물농악대 1100여명과 시민 등 2천여명이 함께 어울리는 판놀이길놀이(14일) 등이 펼쳐질 예정이다. 황 감독은 “우리의 흥이 미래로 가는 데 중요한 힘이 될 것”이라면서 “아리랑을 단순히 듣고 감상하는 행사가 아니라 신명을 찾아가는 축제이니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참여하고 즐기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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