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참여가 많은 ‘태양의 서커스’ <쿠자>는 공연 시작 30분 전과 장면 전환 때마다 광대들이 나와 관객들의 흥을 돋운다. <쿠자> 제공
“윈스턴~ 윈스턴~”
공연 30분 전인데 시작 시간을 잘못 안 걸까? 연극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의 배우들이 무대 위아래를 오가며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다. 입장하던 다른 관객들도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 극중 무대감독 역을 맡은 배우는 “2막에 나올 프렌치 불독인 윈스턴이 없어졌다”며 극장을 돌아다니고, 스태프 역할인 배우는 벽난로 선반 고치는 걸 도와달라며 관객을 무대로 끌고 나간다. 관객들은 직감한다. ‘뭔가 잘못 되어가는 연극’이란 뜻의 제목처럼 이 공연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공연 30분전, 연극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처럼 ‘공연 시작 30분전’ 사실상 작품을 시작하거나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이 늘고 있다. 클래식은 관객들에게 낯선 작품의 이해를 돕는 강의나 토크쇼를 열고, 연극·뮤지컬 등은 관객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게 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흥을 돋우는 식이다.
서울시향은 공연 30분전 초연되는 공연이나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프리 콘서트 렉처’를 올해 선보였다. 서울시향 제공
■ 낯선 클래식·무용도 속성 과외로 이해 ‘쏙쏙’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올해 유명 작곡가들의 숨겨진 작품을 소개하는 ‘익스플로러’ 시리즈에서 클래식 평론가가 공연 직전 20분간 강연하는 ‘프리 콘서트 렉처’를 진행했다. 지난 10월 선보인 ‘번스타인 탄생 100주년’ 기념 오페레타 <캔디드>처럼 초연되는 작품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에 대한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 ‘속성과외’다. ‘원데이 클래스’, ‘해설이 있는 콘서트’처럼 기존에도 해설 프로그램은 많았지만 공연 바로 직전 설명을 해주는 프로그램은 올해 처음 도입했다. 프리 콘서트 렉처를 맡았던 송주호 평론가는 “아무래도 바로 설명을 듣고 콘서트를 보면 이해가 빠르다”면서 “입장시간이 관객들이 집중할 수 있는 때는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 악보나 사진 같은 이미지를 활용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세종문화회관이 오페라 <투란도트> 공연 30분 전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로비 오픈 렉처’를 진행하는 모습. 세종문화회관 제공
세종문화회관은 공연 30분 전 ‘로비 오픈 렉처’를 종종 선보인다. 올해 오페라 <투란도트>와 <모차르트&살리에르> 때도 작품 감상 포인트, 제작 비하인드 등을 들려줬다. 지난 7월 평창대관령음악제 메인콘서트 중 하나인 <그래야만 하는가?>도 공연 시작 전 손열음 예술감독과 김광현 원주시립교향악단 지휘자의 ‘프리-콘서트 토크’를 진행했다. 탄생 250주년을 맞은 베토벤을 테마로 대화를 들려준 두 음악가의 이야기는 훌륭한 길라잡이가 돼줬다. 이달 초연된 바그너 4부작 오페라 중 1부인 <니벨룽의 반지>도 3년간 진행될 대서사시의 예고편을 공연시작 30분 전 강연으로 들려주고, 인도의 힌두사원을 배경으로 한 발레 <라 바야데르>도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이 무대에 올라 무용수들의 손동작이 의미하는 표현들을 설명했다. 유니버설발레단 관계자는 “공연 직전 강의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소개하는 정기공연때 주로 해오고 있다”면서 “공연 뒤 리뷰나 댓글을 보면 공연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많다”고 말했다.
공연의 연장선처럼 배우들이 공연 시작 전 관객을 맞으면 관객들이 공연에 더 몰입하는 효과도 얻는다. 뮤지컬 <록키호러쇼>는 ‘팬텀’이라고 부르는 앙상블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본공연에서 함께 출 ‘타임워프 댄스’를 미리 가르치고, ‘태양의 서커스’ <쿠자>는 광대들이 관객들에게 팝콘을 쏟고 모자를 뺏는 등의 장난을 친다. <쿠자> 관계자는 “관객 참여가 필요한 공연에서 사전에 참여를 유도하면 본 공연에서 관객들이 훨씬 적극적이 된다”고 전했다.
무용 <라 바야데르>를 선보인 유니버설발레단은 공연 30분 전 문훈숙 단장이 무대에 올라 무용수들의 손동작이 의미하는 표현들을 설명해줬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 인터미션도 놓치지 않을 거야 인터미션(쉬는 시간)에도 관객들과 소통하는 ‘팬서비스’는 이어진다. 뮤지컬 <마틸다>에서 마틸다 아빠인 웜우드는 2막 전 다른 배우들보다 빨리 무대에 선다. 20분 정도인 인터미션이 끝나갈 무렵에 등장하는 그는 마틸다에게 말하듯 관객들에게도 “책 읽는 ‘독서충’이 되지 말라”고 훈계한다. 즉석에서 관객 이름을 넣은 노래를 부르며 자연스럽게 2막을 여는데 관객들은 그를 보기 위해 자리를 지키기도 한다. 뮤지컬 <캣츠>의 늙은 고양이 ‘올드 듀터로노미’의 별명은 아예 ‘인터미션 고양이’다. 쉬는 시간 동안 관객들을 한명씩 안아주는데 그와 포옹하기 위해 서는 줄이 화장실 줄보다 길다.
국립현대무용단은 공연 전후나 인터미션때 다음에 선보일 공연을 미리 5분간 보여주는 ‘팝업스테이지’를 지난해부터 도입했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인터미션 또는 공연 전후시간을 다음 공연 예고에 알차게 쓰기도 한다. 국립현대무용단은 공연 때마다 다음 공연을 5분간 소개하는 ‘팝업 스테이지’를 선보이고 있다. 잘 알려진 고전 레퍼토리가 많은 발레와 달리 현대무용은 창작 초연작이 많아 관객들이 관람을 결정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 착안했다. 다음 공연에 참여하는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핵심 장면을 뽑아 미리 보여주는 형식이다. 현대무용단 관계자는 “팝업스테이지로 새 공연을 선보인 날엔 새 공연 티켓판매율이 높아진다”고 귀뜸했다.
이러한 팬서비스가 관객들에게만 좋은 건 아니다. 서울시향 관계자는 “공연 전 강연이 있으면 관객들이 일찍 도착하기 때문에 공연 시작이 지연되는 경우가 줄어 기획사 입장에서도 장점”이라고 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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