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천금같은 추석 연휴.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요? 취향도 담당 분야도 모두 다른 <한겨레> 문화팀 기자들이 소개합니다. ‘나 추석에 이거 하고 놀래!’
추석 연휴는 단 나흘. 큰며느리로 시댁에서 차례 지내고, 친정 가서 송편이라도 먹고 오면 후딱 지나갈 것 같은 짧은 연휴지만 나는 결정했다. 이번 연휴에 웹소설을 읽겠다고!!
고백하건대, 웹소설은 10대들의 전유물이라고 치부했다. 웹소설의 대부분이 ‘츤데레 초초초미남’(상대방에게 애정이 있으나 겉으로 쌀쌀맞게 행동하는 아주 잘 생긴 남자)과의 뻔한 로맨스, 운명의 굴레에 맞서 큰 뜻을 펼치는 무협이 대부분 아니겠나. 굳이 읽을 필요도 없고 안 읽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틀렸다. 웹소설은 이제 이야기산업의 중심이다. 그동안 즐겨봤던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MBC), <성균관 스캔들>(KBS), <구르미 그린 달빛>(KBS) 등이 모두 웹소설에서 탄생한 작품들이다. 지금도 <저스티스>(KBS) 등 드라마로 방영되고 방영될 작품들이 줄을 서 있지 않은가. 웹소설이 영화, 공연으로도 만들어지는 주요 콘텐츠가 됐는데 더이상 모른 체 하고 있을 수가 없다.
포털에서 읽을 만한 웹소설을 고르기로 했다. 뭐부터 읽을지 모를 땐 추천작, 베스트작품에서 고르는 게 편하다. 남녀별, 연령별 인기작품을 살폈다. 무협물은 관심 없으니 패~스! 여성들에겐 로맨스, ‘로판’(로맨스 판타지)이 인기인 모양이다. <팀장님은 신혼이 피곤하다> <끝나지 않는 첫날 밤> <혼전계약서> <재혼 황후> <위험천만한 연애> <오늘부터 천생연분>…. 제목을 주르륵 읽다 보니 어딘가 기시감이 든다. 1990년대 중고딩 시절에 빠져들었던 할리퀸 로맨스물 제목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 시절에 봤던 책 제목도 <잊지 못할 하룻밤> <유혹의 공간> <금지된 욕망> <사랑스러운 사기꾼> 뭐 이런 거였다. 운명처럼 빠져드는 사랑, 벗어날 수 없는 유혹, 잊을 수 없는 환희, 치명적 일탈…. 교생실습 나온 남자 선생님을 주인공에 대입해보기도 하며 몰래 읽었던 할리퀸 로맨스의 추억이 웹소설 제목들을 보자 떠올랐다. 어렸고, 순수했고, 뭘 해도 즐거웠던 시절로 웹소설이 데려다주려나.
웹소설 <위험한 남편을 길들이는 법>. 네이버웹툰 갈무리.
추석 연휴에 읽을 웹소설을 미리 ‘찜’ 해보기로 했다. 30~40대 인기작품 중에 먼저 골랐다. 제목은 <위험한 남편을 길들이는 법>. 첫 회는 재벌가 사생아로 무시 받으며 자라온 여주인공이 온갖 흉흉한 소문을 가지고 있는 다른 재벌가의 아들과 정략결혼을 위한 선을 앞둔 설정으로 시작한다. 소설은 총 106회로 긴 편이나 완결됐고(결말 기다리는 것만큼 기운 빠지는 게 없다) 무료로 읽을 수 있어 마음에 든다.
연재된 소제목들을 살펴보니 여주인공은 결국 사이코패스로 알려진 남자와 결혼(19화 신혼집에서의 첫날 밤)을 해 이혼위기(77화 이혼했으면 좋겠어)를 맞으나 애 낳고(101~103화 육아지옥) 잘 사는가 보다. ‘웹소설에서도 남편과 육아라니 이건 아니지’ 싶은데 인기작품이라니 믿어보기로 한다. 내가 읽었던 할리퀸 로맨스는 언제나 해피엔딩이었듯이 웹소설 속 결혼생활도 현실과 다른 달콤함이 있겠지. 적어도 내 남편보다는 잘 생긴 주인공이 나오지 않나.
연령별로 고르게 인기작으로 올라온 <재혼황후>도 어디 볼까. 변심한 황제의 곁을 떠나 자신의 삶을 열어가는 황후 나비에의 이야기란다. 사랑 없는 결혼이 어이없게 끝나고 옆 나라 황제와 결혼을 하게 되는 내용 같다. 댓글을 보니 “대환장 파티” “막장드라마” 등이 눈에 띈다. 자극적이어야 명절 스트레스도 풀린다. 이것도 찜!
벌점이 높은 <카메라 뒤의 보이프렌드>도 눈길이 간다. 연극계에서 공인된 실력파 배우 하윤이 인기 절정의 아이돌그룹의 멤버 정현에게 연기 레슨을 해주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란다. 캐릭터 분명하고, 현실성도 있어 드라마로 만들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만 이 작품은 뭐지. <아파도 하고 싶어> <간택-왕들의 향연> <키스 식스 센스>… 제목만 읽어도…. 아이쿠, 여기가 한번 빠지면 못 나오는 ‘개미지옥’이구나.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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