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인조에게 삼전도의 굴욕을 안겼던 청 태종의 칼이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장에 나왔다. 생전 전장에서 썼던 보검으로 전해지고 있어 병자호란 당시 그가 차고 다녔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의 국보 격인 1급 국가문물이다. 전시의 대표적인 출품작 가운데 하나다.
역사도, 인생도 무상하다.
383년 전 ‘삼전도의 굴욕’을 안기며 조선을 속국으로 만들었던 청나라 2대 황제 태종 홍타이지(황태극). 그의 칼이 옛 속국 왕실 박물관에 일개 전시품으로 들어온 풍경은 야릇한 감회를 안긴다. 지금 서울 경복궁 경내 국립고궁박물관 기획전시실 안쪽 진열장엔 청 태종이 썼던 ‘황태극도’(皇太極刀)가 그가 썼던 큰 활과 나란히 전시 중이다.
청나라 2대 황제 태종 홍타이지를 그린 초상화.
칼은 중국 동북지방 선양(심양)에 자리한 고궁박물원의 청 황실 컬렉션의 일부다. 선양고궁박물원과 국립고궁박물관이 지난 연말부터 함께 연 교류전 ‘청 황실의 아침, 심양 고궁’에 전시된 것이다. 선양의 청대 고궁에서 수백년 보관된 보검은 중국 국보 격인 1급 국가 문물이다. 전체 길이 94.5㎝. 상어 가죽으로 감싼 표면에 현란한 무늬의 금동장식 테를 네개나 두른, 우아하게 휘어진 소나무칼집이 먼저 눈길을 끈다. 칼집 속 칼은 정교한 꽃무늬가 가득 새겨진 손잡이와 손잡이에 테처럼 두른 칼코 등의 장식이 품격을 과시한다. 칼집에 달린 흰 가죽엔 만주 글자와 한자로 ‘태종문황제의 어용 요도 한자루가 성경(선양)에서 귀중하게 보관됐다’는 글귀도 쓰여 있다. 전쟁터에서 썼다고 전해지는 터라 병자호란 때 차고 다녔을 가능성도 있다고 박물관 쪽은 귀띔했다.
국립고궁박물관 기획전시실 한쪽에 마련된 청 태종 홍타이지의 전시 공간. 그의 초상과 생전 입었던 옷, 차고 다닌 칼 등이 진열된 모습이 보인다.
선양은 청의 첫 수도지만 우리 겨레엔 쓰라린 기억으로 남은 도시다. 병자호란 뒤 왕족과 사대부의 자제와 여인들, 평민들이 볼모로 끌려가 비참한 이역살이를 했다. 수난을 당하고 돌아온 여인들을 ‘환향녀’라며 박대했던 모질고 슬픈 역사도 잊을 수 없다. 여진족 후예로 1616년 후금을 건국한 칸(추장) 출신의 청 태조 누르하치가 1625년 도읍으로 삼았고, 청 태종 홍타이지는 1636년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황제에 오른 뒤 조선을 침공해 신하국으로 삼았다.
17세기 청나라의 전성기를 이룩한 성조 강희제의 어머니 효장문황후의 옥제 시보와 시보를 담은 용, 봉황 무늬가 새겨진 금칠함.
교류전은 역사적 질곡을 의식한 자리는 아니다. 누르하치와 황후들의 시호를 새긴 인장인 옥제 시보와 이를 담은 시함, 화려한 용무늬가 새겨진 황금빛 용포 등 궁중 활옷, 금속 유약인 법랑을 쓴 궁중 공예장식품을 통해 청 황실의 역사와 문화예술을 소개할 뿐이다. 하지만 민족 사상 최대 굴욕인 삼전도 항복을 강요한 청 태종의 옷과 무기, 초상 등이 나왔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이 선양에 얽힌 디아스포라(이산)의 아픔까지 떠올리게 한다.
청의 시조이자 후금을 건국한 태조 누르하치의 시호를 새긴 옥도장 ‘시보’. 용이 웅크린 모양으로 손잡이를 만들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확산이 이 전시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참으로 얄궂다. 다음달 1일 전시가 끝나는 대로 모든 유물은 중국으로 돌려보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당분간 국내에 볼모처럼 남는 처지가 됐다. 유물 호송을 맡을 한·중 전문가의 출입국이 현재로선 난망하기 때문이다. 유물이 귀환하려면 선양고궁박물원 관계자가 호송관으로 한국에 들어와야 한다. 한국 고궁박물관 쪽 역시 전문가가 중국 관계자와 함께 유물을 비행기에 싣고 선양 현지로 가서 수장고에 입고시키는 절차까지 입회해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상대국에 입국하기가 꺼림칙한 상황이 됐다. 지병목 관장은 “중국 쪽과 전시를 한달 정도 연장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다른 대안이 없는데, 사태가 장기화하면 출품 유물을 어떻게 관리할지도 고민”이라고 말했다.
청나라 황실 여인들이 입었던 화려한 일상복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남색 비단 바탕에 복숭아 꽃나무 가지와 나비 등이 들어간 협포와 붉고 검은 비단 바탕에 수복을 상징하는 글자 문양이 들어간 협포 등이 내걸렸다.
전염병 사태로 국내에 들어온 외국 문화유산의 발이 묶인 건 사상 처음이다. 17세기 병자호란 뒤 숱한 조선인을 볼모로 끌고 가 고초를 겪게 했던 청 제국 황실의 보물이 300여년이 지난 21세기, 중국발 바이러스에 막혀 옛 속국에 볼모로 남는 상황이 벌어질 참이다. 기구하다면 기구한 역사의 반전이 아닐 수 없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