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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일제·미군·재벌에 잇단 액운 안긴 ‘송현동 땅’의 운명은?

등록 2020-04-29 17:20수정 2020-04-30 02:04

[노형석의 시사문화재]
땅 소유했던 일제·미국·재벌들
‘금단의 기운’ 앞 액운 끊이지 않아
23년째 재개발 없는 박물관 그 자체
한진 매각 후, 공원으로 보존되길
최근 한진그룹 쪽이 매각 방침을 밝히면서 역사문화공원 논의가 본격화한 서울 송현동 49-1번지 옛 미국대사관 숙소터(1만여평)의 전경. 경복궁에서 북촌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에 해당하는 곳이다. 지난 27일 낮 남쪽 트윈타워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이다.
최근 한진그룹 쪽이 매각 방침을 밝히면서 역사문화공원 논의가 본격화한 서울 송현동 49-1번지 옛 미국대사관 숙소터(1만여평)의 전경. 경복궁에서 북촌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에 해당하는 곳이다. 지난 27일 낮 남쪽 트윈타워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이다.

서울 장안에서 팔자가 가장 드센 터라고 한다. 지난달 한진그룹 쪽이 매각을 결정하면서 땅의 운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서울 종로구 송현동 49-1번지, 옛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터 1만1084평(3만6642㎡)에 대한 세간의 평이 그렇다.

원래는 경복궁 외곽을 감싸 안는 외원(바깥 정원 숲)이었다. 이 금싸라기 땅은 1997년 국방부가 삼성그룹에 땅을 넘긴 이래 23년째 재개발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 전 소유주였던 일제와 미국, 구한말 세도가들도 쓰라린 후일담을 남기고 떠나야 했다. 200여년간 시기를 달리해 이 땅에 들어온 재력가와 권력자들에겐 액운이 끊이지 않았다. 권력·재력 앞에 호락호락하지 않은 기운을 유지해왔다는 말이다.

녹음에 덮힌 송현동 땅의 모습. 터 서북쪽에 있는 사간동의 한 건물에서 찍은 풍경이다.
녹음에 덮힌 송현동 땅의 모습. 터 서북쪽에 있는 사간동의 한 건물에서 찍은 풍경이다.

송현은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솔고개’를 뜻한다. 이 지명이 언제부터 쓰였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원래는 정궁인 경복궁에서 또 다른 궁궐 창덕궁으로 갈 때 첫 번째 관문인 백악산 지맥의 높은 고개였다. 빤히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요지였기에 집을 짓지 못하게 하고 궁궐을 싸안는 외원으로 삼은 것이다.

금기를 깨뜨린 것은 조선 말기 안동 김씨 세도가였다. 1830년 순조의 딸 복온 공주가 김병주에게 시집가면서 송현동에 터를 주어 창녕위궁이 들어섰다. 그 뒤 이곳은 구한말 친일파 윤덕영·윤택영 형제가 차지한다. 이들은 떡 벌어진 대갓집을 지어 안중식 등 화가에게 집 그림을 그리게 하며 위세를 과시했지만, 동생 윤택영은 막대한 빚을 지고 중국 베이징으로 도주해 비참하게 살다 세상을 떴다. 윤덕영의 집 역시 1938년 조선식산은행에 넘어가게 된다. 1919년부터 송현동을 차지한 일제는 식민수탈기관인 식산은행 사택 터로 활용했다. 양반의 근거지였던 북촌 초입에 일제 기관의 사택이 들어선 모습은 조선 몰락을 상징하는 풍경이었다. 일제는 1938년 송현동 전역을 식산은행 사택 터로 확보했지만 7년 만에 패전으로 쫓겨가게 된다.

녹음에 덮힌 송현동 땅의 모습. 남쪽으로 중학동과 안국동의 고층빌딩군이 보인다. 터 서북쪽에 있는 사간동의 한 건물에서 찍은 풍경이다.
녹음에 덮힌 송현동 땅의 모습. 남쪽으로 중학동과 안국동의 고층빌딩군이 보인다. 터 서북쪽에 있는 사간동의 한 건물에서 찍은 풍경이다.

땅 주인은 1949년 이 터를 양도받아 1990년까지 대사관원 관저로 썼던 미국 정부로 바뀐다. 식산은행 사옥에 그대로 눌러앉아 41년간 주인 행세를 했다. 1990년 서울 덕수궁 선원전 터의 옛 경기여고 터와 등가교환해 대사관 숙소를 이전하려 했으나, 한국 시민단체의 반발로 실패하면서 숙소를 용산의 미 8군 기지로 옮겼다.

1997년 국방부로부터 1400억원에 땅을 인수해 2008년까지 소유한 삼성가 역시 액운 앞에 좌절을 겪었다. 프랭크 게리의 설계로 대형 미술관을 지으려다 단념한 운니동 터를 대체해, 미술관과 디자인교육원을 포함한 문화단지를 구상했다. 하지만 땅을 사자마자 서너 달 만에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면서 물거품이 됐고, 미술관은 결국 한남동 문화단지 예정 터로 옮겨가 2004년 리움이 된다. 그 뒤 땅은 계륵처럼 남아 있다가 삼성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 <행복한 눈물>이 얽힌 ‘비자금 사건’으로 직격탄을 맞은 직후인 2008년 한진으로 넘어간다. 한진그룹은 고 조양호 회장의 숙원사업으로 7성급 호텔 건립을 추진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호를 받아 호텔 관련 법 개정까지 추진했다. 그러나 ‘땅콩 회항 갑질 사건’으로 동력이 떨어진다.

다큐사진가 김한용이 1978년 찍은 경복궁 일대 풍경사진의 세부. 경복궁 동십자각 뒤쪽 송현동 일대에 당시 미국 대사관 직원들의 사택 단지가 늘어선 모습이 보인다.
다큐사진가 김한용이 1978년 찍은 경복궁 일대 풍경사진의 세부. 경복궁 동십자각 뒤쪽 송현동 일대에 당시 미국 대사관 직원들의 사택 단지가 늘어선 모습이 보인다.

사실 이런 내력보다 송현동 터는 2010년 벌인 발굴 성과로 주목받았다. 조선 말기와 근대기 수십여 곳의 집터와 우물 등 유적이 발굴돼 한국 근대 도시 고고학의 출발을 알렸다. 바닥에 구멍을 낸 대형 물푸레옹기 세개를 잇달아 겹쳐 땅에 묻고 지하 수맥과 연결한 우물은 학계에 화제가 됐다. 송현동 터는 사실 조선 후기에서 근대기로 넘어가는 도시 주거 양상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현장 박물관인 셈이다.

이런 자취를 잘 복원해 남겨놓고(공평 도시유적 전시관처럼) 조경을 잘해 조선사와 근대사가 갈마드는 역사·자연 도시공원으로 보존하는 것은 어떨까. 그 안에 어떤 문화시설을 들일지는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푸른 풀에 덮인 송현동 땅은 주변 풍경에 숨통을 틔워준다. 빌딩에서 내려다보면 신비스럽고 아련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비무장지대(DMZ)가 서울 한복판으로 옮겨온 느낌이란 말이 실감 난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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