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쪽샘의 대표적인 신라 적석목곽무덤(돌무지덧널무덤)인 44호분을 위에서 내려다본 전경 사진이다. 한눈에 고분의 평면이 타원형임을 알 수 있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발굴 중이다.
세모, 동그라미 따위의 도형을 그리고 추론하는 기하학이라면 유클리드, 피타고라스 같은 고대 서양 수학자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젠 기하학에 밝았던 귀재들 목록에 신라 장인들도 반드시 넣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920년대 이래 금관과 장신구 등 화려한 황금유물을 무더기로 쏟아냈으며, 최근에도 잇따라 발굴돼 눈길을 끄는 경주의 4~5세기 적석목곽무덤(돌무지덧널무덤). 이 무덤이 바로 신라 장인들의 놀라운 수학적 지혜가 반영된 당대의 기념비적 건축 구조물이란 점이 새롭게 드러났다.
44호분 무덤 봉분 적석(돌무지) 부분. 돌무지에 박힌 흰 말뚝 부분이 무덤을 쌓을 당시 나무 구조물을 놓았던 부분이다. 신라인들은 이들 사이의 구획된 공간에 정연하게 돌을 쌓아 적석부를 조성했다.
이런 사실을 고증한 이는 경주 시내 쪽샘 유적에서 44호분 등 신라 돌무지덧널무덤을 발굴 조사하고 있는 심현철(37)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다. 그는 최근 부산대 박사학위 논문 ‘신라 적석목곽묘 연구’에서 신라 장인들이 정교한 타원형 평면으로 무덤 터를 설계하고, 그 위에 사각형 나무틀 구획을 놓아 50~100톤에 이르는 강돌 수천개를 채워 넣는 공법으로 수십m 높이에 지름 30~60m에 이르는 대형 무덤을 축조했다는 사실을 고증해 학계의 관심을 받았다.
적석목곽묘란 무엇인가. 알려진 대로 무덤 속에 수천개의 돌덩이를 채워 넣고 그 안에 주검과 유물이 들어찬 목곽을 들여 도굴이 불가능한, 고대 신라에만 있는 독자적인 무덤 양식이다. 그 무덤의 설계 원리를 파악해낸 것이다.
적석목곽무덤의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단면도다. 모두 3단계에 걸쳐 묘곽을 받치는 돌무지 적석과 봉토를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현철 학예사의 논문에서 전재한 그림이다.
“무덤을 발굴하면서 1600여년 전 신라 장인들이 놀라운 기하학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막대기와 끈을 이어 정교한 타원을 땅에 그려 설계를 했고, 그 위에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거대한 돌무지와 무덤 곽으로 이뤄진 독창적인 무덤 건축을 만들었습니다.”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그는 “지난 수년간 발굴된 신라 무덤의 평면 단면을 이리저리 뜯어보고 분석했는데 소름 돋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했다. 경주 시내 대릉원과 인왕동 등의 중심부와 주변부 고분 120여기의 단면을 첨단 실측 장비로 분석한 데이터를 살펴보니 타원형과 원형의 비율이 8 대 2 정도로 타원형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황남대총, 금관총, 천마총 등 유명한 고분은 하나같이 타원형을 하고 있었다. 컴퍼스로 그린 듯 원형을 띤 것은 규모가 작은 무덤뿐이었다. 그렇다면 신라 장인들은 타원의 무덤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왜 타원으로 설계한 것일까.
타원은 그리기가 쉽지 않다.
심 학예사가 파악한 가장 정확하고 손쉬운 방법은
땅에 두개의 초점을 나무 말뚝으로 박아놓고 줄을 느슨하게 연결해 팽팽하게 당기는 방식이다. 당긴 상태에서 한 바퀴 돌리면 타원이 작도된다는 것. 실제 실험으로 경주 시내 적석목곽묘 타원 평면이 설계도처럼 그려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초점 사이의 거리가 무덤의 장축이 되고 무덤에 들어간 주검의 머리 방향이 된다는 것도 파악했다.
경주의 신라 지배세력이 무덤 평면을 타원으로 설정한 건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무덤을 자신들의 권력과 위세를 잘 드러내는 기념비로 만들기 위해 가장 적절하게 구상할 수 있는 설계 모형이 바로 타원이라고 심 학예사는 설명했다. 터의 중심부 지상에 단을 쌓아 주검과 부장품 들어간 묘곽을 놓고 그 양옆에 ‘적석부’로 불리우는 수천여개에 달하는 돌무더기들을 수직으로 쌓아올리면서 우뚝한 높이의 거대한 무덤을 만들기에는 어느쪽이나 지름이 똑같은 원이 아니라 장축과 단축이 있는 타원이 맞춤하기 때문이다.
경주 대릉원 미추왕릉 지구와 쪽샘 지구 고분군의 평면을 실측한 그림. 대부분 분명한 타원형의 평면을 보여준다.
논문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또 있다. 신라 장인들이 오늘날 현대건축계에서 ‘모듈’ 혹은 ‘개비온’이라 불리는 단위식 틀 구조물 같은 것을 설치해 적석부의 돌덩이를 세우듯 쌓아 올리며 거대한 높이의 권위적인 고분을 만들었고, 이런 무덤이 오직 경주에만 존재한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실제로 경주 쪽샘 44호분이나 수년전 재발굴했던 경주 노서동 금관총 무덤의 적석부에서는 한결같이 나무틀 구조물을 일정 간격으로 설치해 돌을 채워넣는 구획을 정했던 흔적이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경주 일대의 옛 소국 사로국을 터전 삼았던 신라의 지배세력은 자신들의 권세를 확실히 과시하는 시각적 구조물을 고민하다 당대 첨단 공법으로 마천루처럼 봉분이 우뚝 솟은 무덤 기념비를 만들었던 셈이다.
타원이란 도형이 역사적으로 각인된 건 16~17세기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의 공이 크다. 그는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의 공전 궤도가 타원형이라는 행성운동의 법칙을 밝혀내 타원형을 우주와 일상의 실체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심 학예사의 논문을 통해 우리는 신라 장인들이 케플러의 발견보다 1000여년이나 앞선 시기에 이미 타원형의 수학적 의미와 실용적 가치에 눈을 뜨고 무덤 건축에서 독창적인 활용물을 내놓았음을 알 수 있게 됐다. 고대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타원을 활용한 구조물의 사례들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을 보더라도 타원형 설계 원리로 지어진 경주의 적석목곽무덤들은 신라 문명의 지혜와 역량을 보여주는 본보기라고 할만하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