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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아야소피아 걸작 벽화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등록 2020-07-26 16:40수정 2020-07-29 16:48

[노형석의 시사문화재]
아야소피아 천장의 성모자상 주위에 그려진 미카엘 대천사상. 현재까지 남아 있는 동로마 비잔틴 대형 모자이크 벽화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평가된다. 위키피디아 발췌
아야소피아 천장의 성모자상 주위에 그려진 미카엘 대천사상. 현재까지 남아 있는 동로마 비잔틴 대형 모자이크 벽화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평가된다. 위키피디아 발췌
“솔로몬왕이여, 짐이 그대를 이겼도다!”

동로마(비잔틴)제국 최고의 정복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간신히 입을 떼며 중얼거렸다. 모든 것을 압도하는 천상의 빛을 담은 돔과 그 아래 드넓은 대성전이 펼쳐져 있었다. 서기 537년 12월27일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스탄불) 도심 언덕에 들어선 아야소피아 대성당의 축성식 풍경이다. 영국의 역사가 존 줄리어스 노리치는 <비잔티움 연대기>에서 ‘황제가 오랫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다가 솔로몬왕의 성전을 능가한 기쁨을 들릴락 말락 한 음성으로 이야기했다’고 묘사했다.

고대 로마의 돔과 바실리카 양식을 융합해 지은 아야소피아 사원의 외관. 위키피디아 발췌
고대 로마의 돔과 바실리카 양식을 융합해 지은 아야소피아 사원의 외관. 위키피디아 발췌
‘성스런 지혜’란 의미를 지닌 아야소피아는 높이 55m의 정육면체 건물에 지름 30m가 넘는 돔을 올린 당대 최대 규모의 성당이자 모스크였다. 최고의 정복자 손에 완성돼 이슬람제국의 보호를 받으며 1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부의 아름다운 모자이크 벽화와 이슬람 장식물까지 전해진 것은 불가사의다. 이 건물에서 드러나는 놀라운 선의와 공존의 정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건물이 완성된 6세기 황제의 건축사적 업적을 기록한 <건축>을 쓴 역사가 프로코피우스는 이렇게 적었다. “아직 어떤 사람도 이 기적 같은 장관에 싫증을 내지 않았다. 이 성소가 존재하는 동안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것을 기뻐할 것이요, 그곳을 떠나는 순간 온갖 언어로 찬사를 보낼 것이다.”

아야소피아 사원의 외관. <한겨레> 자료사진
아야소피아 사원의 외관. <한겨레> 자료사진
하지만 이달 초 터키 최고법원은 1935년 이래 박물관으로 쓰인 아야소피아의 지위를 다시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로 되돌리는 판결을 내렸다. 국부로 추앙받는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가 아야 소피아 내부에서 무슬림의 예배를 금지한 세속주의 정책을 뒤엎은 것이다. 지난 24일 아야소피아 안팎에서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모스크 전환 이후 첫 예배가 열렸다. 무슬림은 열광했으나, 세계 최고의 건축유산이 지닌 다문화 공존과 관용의 역사는 상처를 입게 됐다.

터키 법원의 결정으로 가장 우려가 된 것은 80여년 전 회칠을 벗기며 드러난 성화 벽화의 운명이다. 아야소피아 1·2층 회랑과 천장에는 비잔틴 미술사에서 가장 뛰어난 모자이크 성화 걸작들이 1930년대 부터 비사를 숨긴 채 공개되어 왔다. 예수 앞에 구원을 청하는 성모와 선지자 요한,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아야소피아를 성모에게 바치는 콘스탄티누스·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봉헌도, 성모자와 천사상 등 20여점의 벽화들이 그것이다. 15~18세기 무슬림들이 회칠했던 이 성화들은 30년대초 서구 국가와 학계의 요청으로 회칠을 벗기면서 일부 실체가 드러났다. 그러나 회칠 제거작업은 이슬람 유산을 파괴한다는 무슬림의 반발로 수년만에 중단됐고, 회칠 아래 묻힌 성화의 원래 모습을 어느 정도까지 복원할지에 대해서도 지난 수십여년간 기독교도와 무슬림 사이에서는 끊임없이 논란이 이어져 왔다.

아야소피아 사원의 내부 중앙홀 모습. 천장의 40개 광창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천장 벽에는 천사와 성모의 성화가 보이며, 2층 회랑을 테두리에 두른 거대 공간에는 이슬람 선지자들의 이름을 아랍글자로 적은 거대한 나무 명판이 매달려 있다.
아야소피아 사원의 내부 중앙홀 모습. 천장의 40개 광창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천장 벽에는 천사와 성모의 성화가 보이며, 2층 회랑을 테두리에 두른 거대 공간에는 이슬람 선지자들의 이름을 아랍글자로 적은 거대한 나무 명판이 매달려 있다.
그중 압권은 안쪽 후당 천장에 새겨진 성자를 안은 성모마리아상과 이들을 사면에서 지키는 미카엘을 비롯한 대천사 6명의 상이다. 숭고미를 이야기할 때 흔히 대자연에 빗대지만, 이 작품은 인위적 예술이 낳은 최대의 숭고미를 보여준다. 우아하면서도 엄숙하고 자상하면서도 근엄한 분위기를 풍기는 성모자상과 피안을 바라보는 그윽한 눈빛과 표정을 담은 미카엘 천사, 6개 날개로 몸을 숨긴 다른 수호천사상들은 지극히 아름다운 선묘와 색채가 돔 천장 창문 빛과 어우러져 눈을 부시게 한다. 역사가들은 벽화들을 품고 떠있는 듯한 천장 돔을 일컬어 “도저히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고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다”고 묘사하곤 했다.

아야소피아 천장의 성모자상과 주변 천사상의 모습. 9세기 비잔틴 모자이크의 걸작이다. 위키피디아 발췌
아야소피아 천장의 성모자상과 주변 천사상의 모습. 9세기 비잔틴 모자이크의 걸작이다. 위키피디아 발췌
아야소피아를 다문화가 공존하는 장으로 오늘날까지 보존하는 데 큰 공을 세운 것은 오스만튀르크제국의 술탄과 예술가들이었다. 메흐메트 2세가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켜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천도한 뒤 적장 로마 황제가 예배한 이 성당을 모스크로 바꾸는 데는 상당한 반대가 따랐다. 그런데도 술탄은 아야소피아의 숭고미에 매혹돼 곧장 전용 모스크로 삼고 훼손을 금했다. 오스만제국의 최고 전성기를 이끈 술레이만 대제가 아야소피아의 성화에 모조리 회칠을 해 모든 비잔틴 유산을 이슬람화하라고 엄명을 내렸지만, 건축가 미마르 시난은 이를 이행하는 데 급급하지 않고 판테온과 바실리카가 결합한 로마풍의 건축양식을 근세기 특유의 독자적인 모스크 양식으로 전환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이스탄불 도심에 있는 슐레이마니에 자미(모스크)와 술탄 아흐메트 자미, 에디르네의 셀리미에 자미, 인도 아그라 타지마할 등이 이런 예지로 아야소피아의 건축 유전자를 계승한 시난과 그의 수하 제자들의 걸작이다.

성모자에게 아야소피아 대성당과 콘스탄티노폴리스 도성을 바치는 유스티니아누스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습을 담은 모자이크화. 아야소피아 사원 1층 남서쪽 출구 문 위에 그려진 벽화다.
성모자에게 아야소피아 대성당과 콘스탄티노폴리스 도성을 바치는 유스티니아누스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습을 담은 모자이크화. 아야소피아 사원 1층 남서쪽 출구 문 위에 그려진 벽화다.
터키 정부는 아야소피아가 모스크로 바뀌더라도 기도 시간에만 벽화를 가리는 방법으로 지금처럼 관람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실제로 24일 생중계된 아야소피아 예배 현장 영상에는 돔 천장의 성모상과 천사상을 흰 천으로 가린 풍경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하루 내내 숱하게 이어지는 기도 시간마다 성화를 가리는 작업은 그리 간단치 않다. 기도나 예배 과정에서 열혈 무슬림이 돌발행동을 할 경우, 제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세계유산을 지정 관리하는 유네스코와 사전에 어떤 교감도 없이 정치적 의도로 모스크 전환을 선언한 터키 정부의 행태는 문화유산 보호의 기본에도 어긋난다. 오스만튀르크제국 시절 선조들이 로마의 유산에 베풀었던 공생과 배려의 미덕이 절실한 때다.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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