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민 스님은 명상 앱 ‘코끼리’의 헤드티처로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코끼리 앱 제공
▶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코로나19 감염증 사태로 많은 국민들이 침체된 느낌을 호소한다. 휴대폰 앱을 통해 집에서도 혼자 쉽게 명상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혜민 스님에게 이 시기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들어봤다. 그는 명상이 부정적 생각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도록 도와준다고 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힐링 멘토’ 혜민 스님에게 코로나 시대를 헤쳐 나가는 지혜를 구하자, 그는 평소 강조하듯 ‘감사함’을 이야기했다. “저는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이만해서 다행입니다. 훨씬 더 나빴을 수도 있었는데, 이만해서 다행입니다’ 이렇게요.” 이어 그는 말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지혜롭게 지금 상황을 잘 헤쳐 나가겠습니다.” 코로나 블루의 영향으로 2020년 상반기 우울증 진료 건수가 늘고 특히 자해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35.9% 늘었다는 우울한 소식이 나오는 가운데, 지난 16일 혜민 스님에게 서면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 시대를 건너는 방법을 물었다. 마음치유학교 교장으로 명상의 대중화에 힘써온 그는 지난해부터 휴대폰 명상 앱 ‘코끼리’의 헤드티처로 여러 명상 프로그램을 물리적인 장벽 없이 전하고 있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스님도 요즘 재택근무를 하는데, 적어도 하루 서너번 코끼리 앱에 접속한다. 아침에 일어나 ‘매일 명상’을 듣고, 낮에는 ‘심리 수업’을 듣거나 ‘커피 명상’, ‘스트레칭 명상’을 하고, 글을 쓸 땐 에이에스엠아르(ASMR)나 편안한 음악을 틀어놓는다. 잠들기 전에는 ‘잠으로 안내하는 명상’이나 최근에 올라온 <제인 에어> 같은 오디오 소설을 듣기도 한다.
혜민 스님은 특히 코로나19처럼 주변 상황이 좋지 않을 때 마음에서 올라오는 생각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주변 상황이 안 좋으면 자연스레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올라오는데, 명상은 그런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있는 나를 그 생각으로부터 구해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렇게 나빠질 것같이 보이는 게 아니라 그 생각이 구름처럼 지나가는 감정이 되도록 돕죠.”
휴대폰으로 하는 심리 방역
밖에 나가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집에서 마음을 편히 다스리고자 명상 콘텐츠를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유튜브에는 동영상을 보면서 혼자 명상할 수 있게 안내하는 채널이 여럿 나와 있다. 특히 108배처럼 운동과 마음수련 효과를 동시에 기대하는 사찰식 홈트레이닝도 소개되고 있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에는 <자아와 명상 2 워크북>(2019), <명상에 대한 거의 모든 것>(2020) 같은 책이 종교 주간베스트에 올라 있다. 스마트폰 앱 스토어에는 다운로드 수 10만 이상인 명상 앱만 10여개에 이른다. 그중 지난해 9월 첫선을 보인 명상 앱 ‘코끼리’ 가입자는 현재 30만1천여명으로, 코로나19가 국내에 처음 발발한 1월20일 15만4천여명이었던 것에 비해 약 2배가 됐다. 코끼리 앱에는 코로나 시대에 유용한 맞춤형 명상들이 나와 있다.
“숨 크게 들이마시고, 편안하게 내쉬고…. 내 몸은 새털처럼 가벼워지기 시작합니다. 신기하게도 내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하늘을 날기 시작합니다. 몸은 영적인 섬이라 알려진 인도네시아 발리섬을 향해 날아갑니다. (중략) 한참을 날아와 발리 해변에 도착했습니다. (중략) 야자수 그늘 아래 의자로 가서 누워봅니다.”(수면 명상 ‘잠으로 떠나는 발리섬 여행’)
잠자리에 누워 편안한 목소리의 디제이 허윤희씨의 내레이션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발리에 도착한다. 예전처럼 여행을 할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을 상상의 날개를 펴 해소하고 불면도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재택근무 하는 이들을 위한 명상’도 있다. “오늘 계획했던 중요한 일을 잘 마치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중략) 그 일을 마치고 퇴근 후 휴식하는 내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봅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편안하게 내쉬고….” 이처럼 집에서도 상상을 통해 기분 좋은 상황으로 이끌어주는 오디오 명상은 답답한 현실을 잊게 해 마음의 평안을 준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카페와 식당에 머물지 못하자 구독자들은 재택근무를 하며 ‘베를린 커피숍 소리’, ‘파리 몽마르트 카페’ 같은 에이에스엠아르를 듣기도 한다. ‘파리 몽마르트 카페’를 들어보면 잔잔한 샹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불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나지막한 대화 소리가 들린다. 마치 내 몸이 프랑스 파리에 온 듯 코로나 이전 활력있는 도심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혜민 스님은 디지털 명상 역시 오프라인 명상 못지않은 효과를 준다고 했다. “우리 뇌는 실제 상황과 본인이 상상하는 상황의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전문가가 가이드 해주는 명상을 통해 같이 따라 하다 보면 마음이 자연스럽게 안정되고 평온해집니다.” 혜민 스님은 “우리(코끼리 앱)가 환경을 바꿀 수는 없지만 경험과 상상력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위안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으로 재생되는 명상 프로그램. 코끼리 앱 제공
명상물들은 가상의 여행이라도 장면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게 세심히 작업한다. 원고 쓰기, 내레이터의 녹음, 디자이너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 원고에 어울리는 음악 선별과 편집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 앱에 올라오게 된다.
코끼리 앱은 영국 출신 기자이자 기업인 다니엘 튜더 대표가 만든 스타트업 ‘마음수업’의 직원 여덟명이 꾸려가고 있다. 대표는 지난해 혜민 스님에게 명상콘텐츠 총괄직을 제안했고, 당시 마음치유학교 교장이었던 혜민 스님은 지리적, 시간적 한계로 더 많은 이들이 명상에 참여하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스님은 많은 이들에게 명상을 알릴 기회라 생각해 흔쾌히 직을 수락했다.
구독자들은 ‘설거지하면서 하는 명상’, ‘샤워하면서 하는 명상’을 틀어놓고 일상에서 명상한다. 혜민 스님은 “명상이 어렵거나 종교적인 것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삶과 밀접한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앱의 목표”라고 했다. 그래서 명상 콘텐츠의 아이디어는 지금 어떤 명상이 필요한지 사용자 의견을 설문조사해 얻기도 한다. 직장인, 학생, 육아 중인 부모 등에게 숙면, 집중, 스트레스 해소 같은 구체적 도움을 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새 문화현상 된 디지털 ‘집명상’
콘텐츠는 무료라는 인식이 강한 환경에서 명상 유료구독 모델이 자리잡은 것은 그만큼 집에서 디지털 명상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현재 코끼리 앱은 800여개의 명상 콘텐츠를 제공하고 월 구독료 5900원(1년 구독 3만5천원)을 받는다. 초기엔 구독 모델이 성공할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고품질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유료를 택했다.
최근 스님은 베스트셀러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2018)의 영어 번역본을 손질해 미국 출판사로 넘기는 작업을 마무리한 뒤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전 국민이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스님에게 위기를 극복하는 메시지를 부탁했다. 그는 어찌할 수 없는 환경에 대한 수용과 마음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환경이라면 자신의 마음을 돌봐야 스스로를 오랫동안 지금 상황의 피해자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어도 마음챙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리 천상에서 태어나도 그곳이 너무 완벽해서 문제라고 하면서 거기서도 우울해할 것입니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회 환경을 바꾸는 것과 동시에 우리 마음을 돌보는 것이 함께 병행되어야 하지요.” 스님은 몸이 아프면 시간을 내어 몸을 돌보듯 마음 돌봄도 마찬가지임을 강조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