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영국, 약혼녀 플로라(조애나 밴더햄)를 런던에 두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마이클(올리버 잭슨코언)은 치열한 전장에서 만난 토머스(제임스 매카들)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둘은 곧 사랑에 빠지지만, 마이클은 플로라와의 결혼 약속을 저버릴 수 없다. 전쟁이 끝나자, 마이클은 결국 토머스와 헤어지고 런던으로 돌아가 결혼식을 올린다. 60년 뒤, 노년이 된 플로라(버네사 레드그레이브)는 마이클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살아간다. 아직 과거의 상처를 잊지 못한 플로라는 손자 애덤(줄리언 모리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혐오를 감추지 못한다.
2017년, 영국 동성애 금지법 폐지 50주년을 맞아 <비비시>(BBC) 특집극으로 방영된 2부작 드라마 <오렌지색 셔츠를 입은 남자>(Man in an Orange Shirt)는 사회의 혐오와 억압으로 인해 고통받아온 성소수자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패트릭 게일이 자전적 가족사를 반영해 집필한 극본은 인물들의 생생한 심리묘사와 더불어 시대에 따라 변화한 성소수자들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그려 호평을 받았다.
예컨대 1부에서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곧바로 감옥에 갇히는 야만의 시절 위에 제2차 세계대전의 폭력을 겹쳐 놓았다. 마이클과 토머스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포탄처럼 날아와 박히는 혐오와 감시의 시선 속에서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마이클의 아내 플로라도 피해자이긴 마찬가지다. 남편과 토머스의 관계를 알게 된 플로라는 배신감에 몸부림치지만, 이른바 ‘성범죄자’의 가족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유지해야 했다.
2017년으로 건너뛴 2부에서는 마이클과 플로라의 손주인 애덤을 통해 신세대 게이들의 초상이 그려진다. 동성애 금지법이 폐지된 지도 50년, 이제 동성애자들은 앱을 이용해 데이트 상대를 쉽게 만나고 결혼으로 합법적 가족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시적 변화 이면에 은밀한 혐오와 편견의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직접적인 처벌의 공포에 떨었던 할아버지 세대와 달리, 내면화된 혐오 때문에 흔들리는 애덤의 모습은 성소수자들이 맞서 싸워야 하는 또 다른 차원의 장벽을 잘 보여준다. 가벼운 데이트 상대만을 만나고 지속적인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느끼던 애덤은 섬세하고 사려 깊은 건축 디자이너 스티브(데이비드 지아시)를 만나면서 차츰 안정을 찾는다.
두 남성의 시점을 위주로 한 전개에서 또 다른 피해자인 플로라의 입장이 충분히 조명되지 않은 점은 아쉬운 지점이다. 다만 노년의 플로라 역을 맡은 배우 버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연기와 존재감이 극본에서 채 담아내지 못한 플로라의 고통을 깊이 있게 전달한다. 인권운동가이기도 한 버네사 레드그레이브는 극 중에서 60년이라는 세월 동안 성소수자의 인권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지켜본 목격자로서, 낡은 시대와 새로운 시대를 잇는 증인으로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오렌지색 셔츠를 입은 남자>는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 간 시민결합법에 대한 공개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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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