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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8세기 중엽이 아니라 초엽에 만들었다?

등록 2020-11-19 04:59수정 2020-11-19 07:35

[노형석의 시사문화재] 석굴암 조성 시기 논란
석굴암 본존불상. 최근 불상과 석굴이 만들어진 연대를 기존 8세기 중엽에서 8세기 초엽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돼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석굴암 본존불상. 최근 불상과 석굴이 만들어진 연대를 기존 8세기 중엽에서 8세기 초엽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돼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한국 미술사를 통틀어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경주 석굴암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이자 조각군이다. 동해가 보이는 토함산 꼭대기에 화강석으로 돔 천장과 원형 홀 얼개의 인공 석굴을 쌓고 그 안에 권위와 온화함을 겸비한 본존불을 중심으로 숱한 보살과 제자들, 사천왕상과 금강역사상, 팔부중상 등 신상들까지 모았다. 조각하기 가장 어렵다는 화강암 산에 신라 장인들이 불교적 우주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을 구축한 것은 인류 문화사의 경이로운 성취라 할 만하다.

하지만 21세기까지 석굴암엔 풀리지 않은 비밀이 남아 있다. 지난 세기 초 일본인들의 재발견 이후 미술사학, 역사학, 건축학 등의 분야에서 숱한 연구가 이뤄졌지만, 선입견이나 무관심으로 거의 조명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석굴암을 처음 축조한 연대와 애초 인공 석굴을 조성한 신앙적 배경, 원래의 구조 등에 관한 의문이 그것이다. 특히 오랫동안 미술사학자들이 공식적인 언급을 꺼렸던 석굴암의 연대를 둘러싼 논란이 조만간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창건주 김대성의 설화 기록을 근거로 8세기 중엽(751년)으로 추정했던 석굴암 창건 연대를 무려 반세기 이상 끌어올린 8세기 초엽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소장 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것이다.

일본의 고도 나라의 고찰 야쿠시사의 금당에 있는 금동약사여래좌상. 8세기 초 만들어진 이 불상은 석굴암 본존불과 얼굴, 몸체, 옷 주름 등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어 석굴암 본존불의 8세기 초 제작설을 뒷받침하는 주된 근거로 거론된다.
일본의 고도 나라의 고찰 야쿠시사의 금당에 있는 금동약사여래좌상. 8세기 초 만들어진 이 불상은 석굴암 본존불과 얼굴, 몸체, 옷 주름 등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어 석굴암 본존불의 8세기 초 제작설을 뒷받침하는 주된 근거로 거론된다.

포문을 연 것은 한정호 동국대 교수다. 그는 지난 13일 통도사에서 열린 불교미술사학회 학술대회에서 ‘화본으로 본 석굴암 창건 시기’란 논문을 통해 매우 낯선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석굴암 주실 본존불을 둘러싼 감실의 보살·제자 상, 들머리의 사천왕·금강역사 상 등 무려 7구가 8세기 초로 공인된 일본 호류사 금당벽화의 보살상, 중국 룽먼석굴 역사상 등과 손가락 표시(수인), 장식 등에서 거의 일치했다는 설명이다.

이는 8세기 초 공통된 그림본(화본)을 모델로 신라, 일본의 장인이 불상을 조각하거나 그렸기에 가능한 것이란 결론이다. 한반도에서 불교문화가 전래한 일본 고대 사찰의 8세기 초 불보살상이 석굴암 불상과 유사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동시대 일본 불상보다 양식이 앞선 석굴암의 창건 연대 역시 8세기 초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석굴암 본존불을 둘러싼 감실 불상들 가운데 아홉째 감실의 보살상(오른쪽)과 일본 호류사 금당벽화 2호 벽에 그려진 보살상을 함께 비교한 도상 사진. 조각과 그림이란 차이가 있지만, 양손의 수인(깨달음을 나타내는 손가락 움직임)과 천의 자락 자태, 몸체를 수놓은 영락 장식의 표현까지 거의 닮았다. 한정호 동국대 교수는 동일한 8세기 초의 그림본을 모델로 두 작품이 각각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석굴암 본존불을 둘러싼 감실 불상들 가운데 아홉째 감실의 보살상(오른쪽)과 일본 호류사 금당벽화 2호 벽에 그려진 보살상을 함께 비교한 도상 사진. 조각과 그림이란 차이가 있지만, 양손의 수인(깨달음을 나타내는 손가락 움직임)과 천의 자락 자태, 몸체를 수놓은 영락 장식의 표현까지 거의 닮았다. 한정호 동국대 교수는 동일한 8세기 초의 그림본을 모델로 두 작품이 각각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한 교수의 주장은 20일 경주에서 열리는 국제인문학포럼 ‘석굴암을 다시 본다’에서 핵심적인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불교미술사 전공자인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석굴암 조성 시기의 재검토’란 발표문을 통해 한 교수와 같은 논지로 석굴암 본존불 조성 연대를 8세기 초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설을 제기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는 703년, 710년, 745년으로 각각 추정되는 중국 산시성 루이청현 출토 여래상 3점의 당나라 양식 도상들이 석굴암 본존불 조성 연대를 8세기 초로 추정하는 데 좋은 비교 자료라고 소개했다. 뒤이어 주목한 건 일본 나라의 고찰 야쿠시사 금당에 있는 8세기 초의 금동약사여래좌상. 이 상 또한 석굴암 본존불과 옷 주름 등에서 별 차이가 없고, 얼굴 등에선 당나라 양식화가 좀 더 진행된 것으로 보여 본존불 연대를 올리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석굴암 본존불 공간 들머리에 있는 금강역사상.
석굴암 본존불 공간 들머리에 있는 금강역사상.

두 학자의 주장은 8세기 초 신라와 일본에 영향을 미친 당나라 전성기의 불교양식 전파 속도가 신속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하지만, 기존 연대관을 견지한 중견 미술사학자들의 반박 또한 만만치 않을 듯하다. 20일 포럼을 꾸린 임영애 동국대 교수는 민 관장이 소개한 중국 출토 불상은 물론 706년 작품인 경주 전황복사탑 출토 금제아미타상에도 6~7세기 상현좌(옷자락이 흘러넘쳐 대좌를 덮음) 스타일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들어 이런 스타일이 사라진 석굴암 본존불 제작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며 8세기 중엽설을 옹호하는 견해를 내놓았다.

중국 룽먼석굴 고평군 왕동의 금강역사상. 8세기 초 작품으로, 기본 자세가 석굴암 금강역사상과 닮아 석굴암 상의 조형적 모델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 룽먼석굴 고평군 왕동의 금강역사상. 8세기 초 작품으로, 기본 자세가 석굴암 금강역사상과 닮아 석굴암 상의 조형적 모델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석굴암 창건 연대는 지난 100년 동안 사실상 신성불가침으로 치부됐다. 일연 스님의 저작인 <삼국유사>에서 재상 김대성이 경덕대왕 때인 751년 전생의 부모와 현생의 부모를 모시기 위해 석불사(석굴암)와 불국사를 지었다는 설화 기록이 절대 권위로 군림했던 탓이다. 본디 미술사는 조형적 관찰과 이를 상상하고 해석하는 통찰의 성과들이 축적돼 이뤄진다. 문헌 기록과 항상 일치하지 않으며, 뜻밖의 작품에서 상식을 깨는 발견이 이뤄진다는 점이 연구자를 매혹한다. ‘인류 영혼의 영원한 방랑길에 우뚝 서 있는 이정표’라고 조각사를 정의한 미술사가 허버트 리드의 말처럼 말이다. 석굴암 연대 논란이 우리 고대 조각사의 지평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한겨레> 자료사진·한정호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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