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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아무도 없는 곳’…‘대화’는 계속된다

등록 2021-03-30 15:47수정 2021-03-31 02:38

[31일 개봉 김종관 감독 신작 ‘아무도 없는 곳’]
영화 <아무도 없는 곳>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아무도 없는 곳>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김종관 유니버스’를 아는가. 지난해 개봉한 <조제>의 김종관 감독이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해 구축한 세계관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처럼 히어로들이 따로 또 같이 나오는 것도 아닐 텐데 무슨 세계관을 어떻게 구축했다는 걸까? 김종관 유니버스를 가로지르는 건 캐릭터가 아니라 ‘대화’라는 형식이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겹겹이 쌓여 한 편의 영화가 되고, 그 영화들이 모여 흐름을 이룬다. 처음엔 적은 예산으로 찍으려고 특정 공간에서 두 사람이 하는 대화 형식을 택한 것이 갈수록 김 감독 고유의 스타일로 발전한 셈이다. 31일 개봉하는 <아무도 없는 곳>은 김종관 유니버스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은희(한예리)가 하루 동안 길에서 세 남자를 만나며 겪은 일을 담은 <최악의 하루>(2016), 어느 카페 테이블에서 이뤄진 서로 다른 네 쌍의 대화로만 구성한 <더 테이블>(2017)의 형식을 뒤섞어, 이번엔 주인공 창석(연우진)이 며칠 동안 찻집과 길에서 사람들과 하는 대화로 영화를 이끌어간다.

영화 &lt;아무도 없는 곳&gt;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아무도 없는 곳>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창석은 영국에서 7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소설가다. 을지로 지하철 역사 안 오래된 카페에서 만난 미영(아이유)은 창석을 보고 죽은 남편을 그리워한다. 또 다른 카페에서 만나 낮술을 마신 출판사 편집자 유진(윤혜리)은 함께 길을 걸으며 헤어진 연인에 대해 고백한다. 북촌의 찻집에서 우연히 만난 사진가 성하(김상호)는 암에 걸린 아내를 간병하던 중 용하다는 스님의 계시를 따르다 창석을 만났다고 말한다. ‘혼술’ 하려고 찾아간 술집의 바텐더 주은(이주영)은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며 창석에게 술 한잔에 재밌는 기억을 팔 것을 제안한다.

영화 &lt;아무도 없는 곳&gt;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아무도 없는 곳>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흔한 플래시백(회상 장면) 하나 없이 오롯이 대화하는 두 사람만 보여주는데도 흡인력이 상당하다. 이야기를 듣는 청자 역할에 충실한 창석은 함께 귀 기울이는 관객을 대표하는 느낌도 든다. “아, 그래요?” “신기하네요” 같은 추임새를 간간이 넣는 연우진의 과하지 않으면서도 섬세한 리액션 연기가 극의 전개를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유 구실을 한다.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늙음, 죽음, 이별, 상실 등에 관한 것이다.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의 밝고 가벼운 대화와는 상반된다. 이런 면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옴니버스 영화 <페르소나>(2019) 가운데 김 감독이 연출한 단편 <밤을 걷다>와 통한다. 아이유와 남자가 밤길을 걸으며 대화하는 걸 흑백으로 담은 20분짜리 영화는 삶과 죽음,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허문다. 김 감독이 <밤을 걷다> 다음에 쓴 시나리오가 <아무도 없는 곳>이다. 그래선지 삶과 죽음, 실제와 환상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게 닮았다. <밤을 걷다> 작업 당시 이 영화 시나리오를 본 아이유는 출연 제의를 흔쾌히 수락했다.

영화 &lt;아무도 없는 곳&gt;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아무도 없는 곳>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는 내용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그림자에 가깝다. 해가 지고 점차 어두워질 무렵이나 푸르스름한 새벽녘처럼 경계의 시간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많다. 김 감독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침체한 요즘 같은 때야말로 오히려 어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희망과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무도 없는 곳>은 어둡고 무겁다. 그런데도 보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김종관 유니버스의 마법인지도 모른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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