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당신의 사월>을 연출한 주현숙 감독. 서정민 기자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차창 밖 고급 외제차 뒷유리에 붙은 노란 리본이 눈에 들어왔다. ‘비싼 차 모는 사람은 안 그럴 것 같았는데, 저 사람은 왜 노란 리본을 붙였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왜 아직도 노란 리본을 달고 있나요?” “당신의 그날은 어땠나요?”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아 1일 개봉하는 다큐 영화 <당신의 사월>은 그렇게 시작됐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슬프고 괴로워요.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얼마나 끔찍하던지.” 지난 29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주현숙 감독이 말했다. 15년 넘게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는 다큐를 만들어왔어도 “세월호는 감당할 자신이 없어 애써 피해 다녔다”는 그다. 하지만 2017년 세월호 참사 3주기가 지났을 무렵 우연히 맞닥뜨린 노란 리본과 이에 대한 호기심은 그를 세월호에 다가가게 만들었다.
물어보니 다들 첫마디가 “세월호 다큐 하는 거 힘들지 않겠어요?” 하는 걱정이었다. 그러고는 어김없이 “근데 내가 그때…” 하며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흥미로웠어요. 보통은 특정 날짜에 내가 뭘 했는지 잘 기억 못 하는데, 그날은 ‘택시에서…’ ‘출근길 운전하다…’ ‘전원 구조됐다고 해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등 다들 너무 상세하게 기억하는 거예요. ‘나만 그랬던 게 아니구나. 모두의 기억이구나. 기록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해 여름부터 6개월에 걸쳐 단편 다큐 <이름에게>를 만들어 이듬해 4주기에 공동체 상영, 영화제 등을 통해 선보였다. 이후 장편으로 확장한 것이 <당신의 사월>이다. 참사 그해에 나온 <다이빙 벨>부터 지난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부재의 기억>까지 대다수의 세월호 다큐가 진실을 좇거나 유가족, 생존자 등 당사자들을 담았다면, <당신의 사월>은 처음으로 보통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배가 침몰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 거의 유일한 세월호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분노하거나 달아오르지 않고 시종일관 담담하게 사람들 얘기에 귀 기울인다. 수업시간에 소식을 접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당시 고3 학생 이유경, “내가 배에 탔다면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에 답할 수 없었던 중학교 교사 조수진, 대통령을 만나러 온 유가족들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카페 사장 박철우, 유가족 곁을 지키려고 달려간 인권활동가 정주연, 사고 해역에서 주검을 수습한 기억을 떠올리며 말을 못 잇는 진도 어민 이옥영 등 5명이 카메라 앞에서 속마음을 꺼냈다. 주 감독은 “평범하지만 국면마다 목격자로서 얘기해줄 만한 사람들을 열심히 찾았다. 처음엔 다들 ‘제가 자격이 될까요?’라며 머뭇거렸지만, 취지를 듣고는 흔쾌히 응해줬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고 세월이 흘렀어도 해결된 게 별로 없어요. 사람들 기억에서 점점 잊혀가는 것도 같고요. 이런 때일수록 각자의 슬픔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우리 모두 방관자가 아닌 당사자가 되어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너도 나처럼 아팠구나’ 하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서로를 위로하고 연대하는 시작점이 될 거라 믿어요.”
유가족들도 특별한 감사를 전했다.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본 한 유가족은 “당시 경황이 없어 도와주신 분들께 고맙다는 말을 못 했는데, 영화가 저를 대신해 고맙다고 전해주는 것 같아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유경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지난 23일 언론시사회에서 “7년을 매달리면서 ‘시민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 지겨워하진 않을까?’ 궁금했는데, 영화를 통해 속마음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주 감독은 “영화가 유가족에게도 힐링이 되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려는데, 주 감독이 물었다. “기자님은 그날 어땠나요?” 애써 묻었던 기억이 엉킨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려나왔다. 묘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가방에 매달려 흔들리는 노란 리본이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마워’라고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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