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서복’ 감독 “마블식 SF 원했나요? 인간의 두려움이 나의 장르”

등록 2021-04-19 18:40수정 2021-04-20 11:39

이용주 감독 인터뷰
<건축학개론> 이후 9년 만에 영화 <서복>으로 돌아온 이용주 감독. 씨제이이엔엠 제공
<건축학개론> 이후 9년 만에 영화 <서복>으로 돌아온 이용주 감독. 씨제이이엔엠 제공
지난 2012년 이용주 감독의 영화 <건축학개론>이 개봉됐을 때, 첫사랑의 떨림과 열병을 깔밋한 연출로 담아낸 이 역대급 멜로영화의 감독이 차기작으로 복제인간 이야기를 선택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5일 개봉한 이 감독의 복귀작 <서복>은, ‘멜로에서 에스에프(SF·공상과학)로의 변화’라는 단순한 예단을 뛰어넘으며 감성 연출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재확인시켜줬다. 복제인간을 내세운 에스에프란 소재는 그저 장치일 뿐, 영화는 인간의 보편적인 삶과 죽음의 문제를 흥미롭게 풀어낸 드라마였던 것이다.

<건축학개론>을 자신의 ‘첫사랑’이자 대표작으로 꼽던 이 감독은, 이제 그 자리에 <서복>을 앉히려 한다. 물론 사랑은 배반되기 마련이다. 지난 16일 온라인 화상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서복>을 에스에프영화로 오해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앞으로도 (인간의)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더군요. 관객들은 할리우드 마블식 에스에프를 기대한 게 아닐까 싶어요. 영화를 알릴 때도 에스에프라는 단어를 쓴 적이 없는데, 복제인간이라는 소재가 그렇게 읽히도록 한 것 같습니다. 역시 단어의 힘이 센 거죠. 감독 입장에서 장르는 이야기의 외피일 뿐인데, 관객들에겐 영화를 읽는 중요한 요소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다음 작품을 만들 때, 교훈으로 삼아야죠.”

<서복>을 연출하는 이용주 감독. 씨제이이엔엠 제공
<서복>을 연출하는 이용주 감독. 씨제이이엔엠 제공
이 감독은 일부 관객의 부정적 평가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영화의 의미와 취지를 설명했다. “복제인간을 소재로 설정한 건 삶과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쉽게 전달하는 도구로 그만한 게 없다는 판단에서”라는 것이다. 이런 점이 대중의 호불호가 갈리는 결과를 낳았는데, 사실 이는 그에게 이미 익숙한 일이기도 하다. “2009년 데뷔작 <불신지옥> 때도 관객 평점이 10점과 1점으로 갈렸어요. 비판은 주로 ‘공포영화에 왜 귀신이 안 나오느냐’는 거였죠.(웃음)”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드라마라고 해서 이 영화가 혼종이나 컬트적인 건 아니다. <서복>은 버디무비와 로드무비의 문법을 익숙하게 따르는, 잘 만든 장르영화다. “장르는 죄가 없죠. 얼마나 관객을 설득하는지가 관건이죠. <서복>은 초월자 같은 존재인 서복(박보검)이 기헌(공유)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면서 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게 큰 줄거리입니다. 이 점이 관객들에게 (과거 자신의 작품과는) 다르게 다가갈 거라고 봤습니다.”

그는 “이야기의 목적은 언제나 작가인 감독 자신이어야 한다”고 했다. “끝까지 가려면 작가로서 ‘내가 왜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합니다. ‘흥행 잘될 것’이라며 들어온 제안도 감독이 끌리지 않으면 할 수 없지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노력으로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죠.”

이용주 감독. 씨제이이엔엠 제공
이용주 감독. 씨제이이엔엠 제공
이 감독은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배우 공유를 콕 집어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공유씨가 구토 장면을 목에 담이 걸리도록 찍었는데, 막상 영화에선 편집이 많이 됐어요. 관계자 시사에서 다들 그 장면을 보고 ‘시한부 환자가 아니라 전날 술을 많이 먹어서 오바이트하는 거 같다’고 해 결국 들어냈죠.(웃음)”

그는 “이전까지 저의 대표작이 <건축학개론>이었다면, 지금은 <서복>”이라고 힘줘 말했다. 기억나는 한 장면을 꼽아달라고 하자, 영화 후반부 기헌과 서복이 서로를 신뢰하게 된 바닷가 장면을 들었다. “서복이 돌무덤 등을 이용해 기헌을 위로하는 장면을 꼽을 수 있겠네요. 시지(CG·컴퓨터그래픽)에 공을 많이 들였던데다 제가 제작진을 설득해 관철시킨 장면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이 감독은 두려움에 대한 서사를 풀어낸다는 점에서 <서복>이 자신의 데뷔작인 <불신지옥>의 확장판이라고 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는 무엇을 욕망하는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욕망이 없으면 두렵지도 않거든요. 또한 두려움은 나이 든 사람들의 감정이기도 합니다. 젊었을 때는 겁이 없잖아요.(웃음)”

“행복은 실재하지 않는 파랑새 같은 것”이라며 “행복보다 덜 불행한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그는 “차기작은 파트너만 정해진 상태인데, 코미디를 하더라도 내 얘기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번잡한 일상 내려놓은 대도시의 매력 찾아…하루짜리 서울 여행 1.

번잡한 일상 내려놓은 대도시의 매력 찾아…하루짜리 서울 여행

검은 물살 타고 대마도 밀려 간 제주 사람들 2.

검은 물살 타고 대마도 밀려 간 제주 사람들

경복궁 주변 파봤더니 고려시대 유물이 줄줄이? 3.

경복궁 주변 파봤더니 고려시대 유물이 줄줄이?

1월 24일 문학 새 책 4.

1월 24일 문학 새 책

서울어린이대공원 땅밑에 조선시대 말 목장이 묻혀 있었다 5.

서울어린이대공원 땅밑에 조선시대 말 목장이 묻혀 있었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