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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차별도 무릎 꿇은 담대한 어머니들

등록 2021-05-03 18:24수정 2021-05-04 02:35

가양동 특수학교 설립 갈등 다룬
다큐영화 ‘학교 가는 길’ 5일 개봉
영화 <학교 가는 길>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학교 가는 길>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차별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아래로 스며들되 역류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보다 더 소수자를 차별하는 건 여전히 얄궂은 일이다. 강자는 차별받지 않는다.

5일 개봉하는 영화 <학교 가는 길>은 아래로만 향하는 한국 사회의 차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서 벌어진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갈등을 통해, 장애인에겐 교육받을 권리마저도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아프게 일깨운다. 지난달 30일 오전, 영화 속 출연자인 어머니들과 이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낸 김정인 감독을 만났다.

지난달 30일 오전, 영화 &lt;학교 가는 길&gt;의 김정인 감독(왼쪽부터)과 출연자 이은자 강서퍼스트잡지원센터장, 장민희 강서장애인가족지원센터 팀장이 서울시내 한 커피숍에 모여 영화 촬영 뒷얘기를 하고 있다. 오승훈 기자
지난달 30일 오전, 영화 <학교 가는 길>의 김정인 감독(왼쪽부터)과 출연자 이은자 강서퍼스트잡지원센터장, 장민희 강서장애인가족지원센터 팀장이 서울시내 한 커피숍에 모여 영화 촬영 뒷얘기를 하고 있다. 오승훈 기자

서울시교육청이 폐교된 서울 가양동 공진초 자리에 발달장애 학생 특수학교 설립을 발표한 것은 2016년 8월이었다. 장애 학생들의 원거리 통학과 과밀학급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나, 1990년대 이 지역이 임대아파트 밀집지역으로 조성되면서 빚어진 갈등으로 피해 의식이 있던 가양동 주민들은 “왜 또 가양동이냐”며 반발했다.

“사실 저도 지현이를 낳지 않았다면 아마 마이크를 들고 특수학교를 반대했을 거예요. 근데 지현이를 낳고 차별당해 보니 차별받는 다른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거예요. 자리가 바뀌면 풍경도 바뀌는 거죠. 결과적으로 지현이가 저를 조금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 거 같아서 감사하죠.”(이은자 강서퍼스트잡지원센터장)

영화 &lt;학교 가는 길&gt;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학교 가는 길>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고난의 세월을 건너온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너그러움이었지만, 사실 당시 주민들의 폭언은 어머니들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종북세력 ××들.” “알아서 나가. 어디 눈깔을 동그랗게 뜨고 ××이야.” “왜 온 거야? 이유가 뭐야, 이유가.” “상판대기에 철판을 깐 거지.” “빨리 안 나가? 여기서 울지 말고 나가.” “나가, 나가.”

폭언과 고성으로 아수라장이 된 1차 토론회 관련 기사를 우연히 본 김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2차 토론회 자리를 찾았다. “평소 장애인 문제에 관심 있는 편은 아니었는데, 아이를 둔 부모 입장에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막상 가본 토론회는 초현실적이더라고요. 고성과 비방이 난무하는 그곳에서 어머니들은 너무도 담대하고 의연하더라고요. 그 모습에 반해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영화 &lt;학교 가는 길&gt;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학교 가는 길>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애초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던 주민들은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립한방병원 건립’을 총선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자 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결국 2019년 교육청은 한방병원 설립에 협조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작성하고 나서야 특수학교인 서진학교를 세울 수 있었다. “교육청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안타까웠죠. 다른 지역에서도 특수학교 건립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나쁜 선례를 남긴 거니까요.”(장민희 강서장애인가족지원센터 팀장)

다큐는 무릎을 꿇은 채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응시하면서도, 반대하는 주민들을 악의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 사회의 약자이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영화를 보고 나서 개인이나 집단을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작품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결과적으로 가양동 주민들과 김성태 전 의원에겐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다”고 했다. 또 “임대아파트 밀집지역으로서 소외돼온 가양동의 역사적·지역적 맥락을 보여주고 싶었다. 서로의 입장차를 해소할 순 없지만 접점을 찾아보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영화 &lt;학교 가는 길&gt;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학교 가는 길>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의 이런 성숙한 시선은 어머니들의 ‘어른스러움’과 닮아 있었다. 이 센터장은 “임대아파트 갈등 문제까지 다루면서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된 점이 좋았다”고 했다. 장 팀장은 “가양동에 이런 속사정이 있는지 자세히는 몰랐는데, 우리도 스스로를 한번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사실 장애 학생의 부모들은 자녀가 일반학교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사회의 일원으로 자라길 바란다. “발달장애아라도 적극적으로 위험에 노출될 기회를 줘야 해요. 실패할 기회, 상처받을 기회를 줘야 합니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서 수업을 받아야 하는 이유죠.”(이 센터장) “발달장애인들도 시련을 통해 성장합니다. 그 과정이 비장애인에 비해 조금 더딜 뿐입니다. 느리게 자라는 아이죠.”(장 팀장)

<학교 가는 길>은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살기”를 바라는 장애인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흔치 않은 경험을 선사한다.

글·사진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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