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천재 신임 변호사 ‘우영우’(박은빈)가 대형 로펌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휴먼법정물.’
지난달 29일 케이블채널 <이엔에이>(ENA)에서 시작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수목 밤 9시, 극본 문지원, 연출 유인식)는 이 한줄 설명에서도 시청자의 감성을 건드리는 키워드가 많다. 장애가 있는 주인공이 편견을 딛고 성장하는 모습부터 그렇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비장애인 변호사와 우영우를 비교하며 ‘장애란 무엇인가’ 생각할 거리도 던진다.
그래서 따뜻하지만, 어떤 면에선 진부하다. 이와 비슷한 설정의 드라마는 이전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장애인이 장애인 배역을 맡을 정도로 리얼리티가 중요해졌다. 자폐의 천재적인 면만 강조하는 것은 또 다른 선입견을 줄 우려도 있다. 그런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이상하게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입소문이 빠르게 돌며 사랑받는다. ‘비현실적이더라도 괜찮다. 씩씩한 우영우만 보면 행복해진다. 힘이 난다’는 식의 반응들이다. 이른바 ‘우영우 충전’론이다. 왜 그럴까.
정덕현 평론가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증후군인 주인공을 내세워 그 매력을 드라마의 동력으로 삼았다. ‘이상하다’와 ‘특별하다’ 사이에서 그저 이상하게 보였던 ‘우영우’라는 인물이 차츰 특별한 인물로 보이게 되는 그 지점이 이 드라마가 가진 강력한 힘이다.
남지은 기자 = 그래서 우영우 캐릭터가 중요했는데, 잘 빚었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진부한데, 들여다보면 세밀한 지점에서 앞선 시도를 했다. 특히 캐릭터들이 비슷한 소재의 다른 드라마에 견줘 진일보했다. 우영우가 장애를 자원삼아 한발 나아간 것이 가장 돋보인다. 시니어 변호사 정명석(강기영)이 후배 변호사 앞에서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변호사가 불쌍하게 보이는 게 좋다”고 말하는데, 그때 우영우의 대답에서 이 드라마의 비범함을 느꼈다. “이 중에서 저만큼 불쌍하게 보일 사람은 없습니다.” 장애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세계. 주인공의 이런 설정이 신선했다.
김효실 기자 =주인공 캐릭터도 잘 만들었지만, 조명받아야 할 건 우영우 주변 인물들 같다는 생각도 든다. ‘장애인이 변호사를 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부정적 편견을 대놓고 드러낸 시니어 변호사 정명석(강기영)이, 영우의 능력·진심을 빠르게 인정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누리꾼들에게는 로펌 동료인 권민우(주종혁) 변호사도 자주 언급된다. 경쟁의식이 투철한 권민우에게 우영우는 장애인이기보다 ‘내가 이겨 먹어야 할 경쟁자’다. 그는 의뢰인이 우영우를 이상하게 여기자, 우영우의 장애를 ‘아우팅’하는 대신 “이 친구가 회사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요”라고 대처한다. 우영우의 로스쿨 동기인 최수연(하윤경)은 “어설픈 모습이 안쓰러워서 도와주다 보면 정작 걔는 1등하고 나는 뒤처지”는 결과가 싫으면서도, 회사 회전문을 통과 못 하는 영우를 목격하고 돕는다. 민우의 ‘편견 없는’ 냉혹함과 수연의 ‘이래도 괴롭고 저래도 괴로운’ 상황은, 장애를 대하는 태도를 여러 형태로 보여준다.
김효실 기자 = 단 2회 방송 안에서 자폐성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주인공은 물론,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비혼모’ 대신 ‘비혼부’, 이성애 커플 대신 여여 커플, 복수의 여성 로펌 대표들을 보여주면서, 여러 편견을 부쉈다. ‘천재’ 영우도 ‘여여 커플’을 상상하지 못하고 놀라는 것도 포인트다.
남지은 기자 = 그러고 보니 작품 자체가 주인공 우영우처럼 여러 편견 속에서 시작된 셈이다.
정덕현 평론가 = 캐릭터에 집중하는 법정드라마는 사건이 강하지 않다. 형사사건보다는 민사사건에 적합한 소재들이 많다. 그래서 심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우영우의 독특한 시각으로 문제를 해결해 간다. 기존 법정드라마와 관점 자체가 다르다. 예를 들어 ‘노부부 폭행사건’에서 우영우는 모두 다리미라는 다소 과격한 도구에 경도되어 있을 때 남편의 지병을 찾아내고, 결혼식장에서 신부의 드레스가 벗겨진 일로 거액의 위자료 소송을 치르는 과정에서 아무도 보지 못했던 신부가 원하는 진짜를 찾아낸다. 변호사가 등장하는 법정드라마지만 편견을 깨는 캐릭터가 주는 반전과 감동이 이 드라마의 진짜 묘미다.
남지은 기자 = 선한 인물이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도 좋다. 요즘 선한 드라마가 잘 없잖아. 드라마에서도 세상을 구하려면 주인공이 악인보다 더 악해져야 한다. 이 드라마는 우영우처럼 선한 사람이 답이라고 말하는데, 그 자체로 안도감이 든다. 어떻게 보면 사회에서 약자였던 우영우가 또 다른 약자를 돕는 셈이다. 아무리 정의로운 변호사라도 ‘강자’이기에 소시민은 그에게 “부탁한다”며 애원해야 했다. 이 드라마에서 우영우는 진실을 밝히는 일은 변호사가 해야 할 마땅한 일이라 여기며 일했다. 함께 힘을 모아 우리를 지켜냈다는 생각도 들어 어떤 장면에서는 뭉클해지기도 한다.
정덕현 평론가 =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약자가 법정에서 억울한 누명을 쓴 누군가를 변호해주고 그를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더 큰 휴먼드라마의 감동을 준다. 이러한 휴먼드라마적인 선택은 법정드라마가 추구하는 법정에서의 승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삶의 문제라는 걸 드러내 준다. 우영우는 법정에서 이기기보다는 당사자들의 행복한 삶을 더 지지하고 그 손을 들어준다. 이것은 여타의 법정드라마들과 다른 이 드라마의 결이라고 볼 수 있다.
남지은 기자 = 이 모든 인기의 중심에는 이 배우가 있다. 박은빈. 드라마 성공의 일등공신이다. 사실 자폐 캐릭터는 많이 나와 배우한테는 아무리 잘해도 ‘본전’이다. 박은빈은 그 이상을 보여주더라. 눈동자도 연기하고 있다면 과장일까. 역할 소화력을 떠나 우영우를 통해 그가 얼마나 기본기가 탄탄한지 보여줬다. 대사도 많고 속도까지 빠른데 발음이 또렷해서 다 들린다. 그 점이 좋았다.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의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많잖아. 그런 배우들이 이 드라마를 봤으면 한다.
정덕현 평론가 = 박은빈은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며 ‘원톱 배우’로 성장했다. <청춘시대>에서는 보이시한 매력을 드러냈고, <스토브리그>에서는 씩씩한 캐릭터를 소화해냈으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는 순수함과 수줍음을 오가는 인물을 연기했다. 또 <연모>에서는 어려운 사극을 잘 소화해내면서 동시에 남장여자의 멜로라는 역할도 수행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자폐 장애를 가진 변호사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기해내고 있다.
김효실 기자 = 연출도 한몫한다. 우영우가 애정하는 동물 고래가 소품과 컴퓨터그래픽(CG) 등으로 섬세하게 구현되는데, 시청자가 우영우의 세계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효과를 준다. 우영우에게만 보이던 고래가 준호(강태오)와 공유되는 순간도 인상적이다.
남지은 기자 = 오티티 시대가 되면서 시청자들은 이제 재미있으면 알아서 찾아본다는 걸 실감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케이블 채널인데 시청률이 1회 0.9%로 시작해 지난 6일 3회 방송이 무려 4%까지 뛰었다. 최근 <종이의 집> 등 여러 드라마가 함께 쏟아졌다. 그 가운데에서 이 작품은 기대작도 아니었다.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종이의 집>보다 오히려 더 화제를 모은다. 만듦새도 연기도 이 작품이 좋다.
김효실 기자 = 다만, 드라마 제작과정에서 실제 자폐성 스펙트럼 장애인들이 어느 정도 참여했는지 궁금하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이 여럿 등장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별나도 괜찮아>는 주인공의 친구 역할을 자폐인 배우들에게 맡기는 등 제작과정에서 자폐 스펙트럼 당사자들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려고 한 노력이 보이는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전문가의 조언을 들었다는 내용 말고는 당사자들과 얼마나 소통했는지 알 수 없어서 아쉽다.
남지은 기자 = 커뮤니티에서 실제 자폐 장애인이 올려놓은 글을 봤다. 이 드라마가 세심한 부분을 잘 살렸다고 하더라. 우영우가 문을 열고 몇초 뒤에 들어가는 것도 이유가 있었다. 과장인 줄 알았던 것이 다 디테일이었다. 그 디테일에 우리의 심장이 알아서 움직인 것이다. 역시 빵빵한 홍보보다 디테일이다. 하지만 자폐인을 선하게 그린 것은 좋은데 너무 비범하게만 그린 것이 살짝 걸린다. 그런 출중한 능력없이 평범하지만 선하고 그래서 예쁜 이들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데 말이다. 앞으로 기대해봅니다.
남지은 기자= 뜬금없지만 주인공 이름도 ‘에러’다. 왜 ‘우영우’일까. 주변에서 자꾸 “이상한 변호사 우X우 봤다”고 잘못 말한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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