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저에게 같이 있자고 시그널을 보낸 건데 제가 몰라준 걸까요? 이거 그린라이트 맞나요?”(<마녀사냥 2022> 1화 사연 중에서)
타인에게 연애 감정으로 호감이 있음을 뜻하는 신조어 ‘그린라이트’를 만들어낸 연애 토크쇼 <마녀사냥>이 돌아왔다. 2013년 8월 처음 방송을 시작해 2015년 12월 123화를 끝으로 종영한 지 7년 만이다. 공중파 최초로 청년 세대의 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내 사회적 관심을 받았던 만큼, 시즌2의 시작에도 눈길이 쏠렸다.
지난 5일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오티티∙OTT) 티빙이 공개한 <마녀사냥 2022> 1화를 보면, 과거 프로그램을 대표하는 간판 꼭지 ‘그린라이트를 켜줘’를 비롯해, 스튜디오 소품, 배경음악, 컴퓨터그래픽(시지∙CG) 등 형식적인 부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진행자(엠시)들이 시청자의 연애 고민을 소개하는 꼭지인 ‘실시간 고통정보’, 연예인 패널들을 초대하고 거리의 시민들을 찾아가 의견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로멘트를 써줘’ 등도 과거 꼭지들을 살짝 변주한 모양새다.
달라진 건 일단 사람이다. 시즌1은 ‘남자들이 말하는 여자 이야기’를 슬로건으로 내세워, 30~40대 남성 4명을 고정 엠시로 삼았다. 이번에는 남성 2명, 여성 2명으로 엠시의 성별 균형을 맞췄고, 20대를 포함해 세대 구성도 다양해졌다. ‘원년멤버’로는 신동엽만 다시 엠시를 맡았고, 작사가 김이나, 가수 코드 쿤스트와 비비가 새 엠시로 합류했다.
시즌1에 이어 연출을 맡은 홍인기 피디는 지난 4일 제작발표회에서 “(엠시들이) 선을 아슬아슬하게 타면서 (타인을) 불편하지 않게 하는 분들이라서, 네분의 시너지를 기대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방송에 기대하는 인권·젠더 감수성이 높아진 사회 분위기를 의식하는 모습이었다. 1화 오프닝에서는 지난 7년 동안 달라진 연애 풍경으로 동성 연인이 입을 맞추는 장면을 내보내기도 했다.
<마녀사냥 2022> 1화의 한 장면. 티빙 제공
■OTT 사전 심의로 성 표현 수위 ‘대범’해졌다
또한 눈에 띄게 달라진 건 표현의 수위다. 과거 <마녀사냥>은 ‘낮져밤이’(연인에게 낮에는 지고 밤에는 이긴다는 뜻) 등의 유행어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성관계와 관련한 이야기는 이처럼 은유적으로 언급했다. 성관계를 ‘운동’으로 바꿔서 에둘러 이야기할 정도. 하지만 <마녀사냥 2022> 1화에서는 ‘선섹후사’(성관계를 먼저 한 뒤에 연애 여부를 결정한다는 의미)를 요즘 청년 연애 문화 가운데 하나로 비중 있게 다뤘다.
시즌2가 대범해질 수 있는 이유는 시청 등급과 관련한 제도 적용이 ‘사후 심의’에서 ‘사전 심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 <마녀사냥>은 종합편성채널 <제이티비시>(JTBC)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매주 금요일 밤 11시에 방영됐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방송법’에 따라 방송사가 자율적으로 프로그램 주제, 폭력성, 선정성 등을 바탕으로 시청 등급을 분류하는데, 방송이 나간 뒤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자체 모니터링, 시청자 민원을 토대로 심의할 수 있다. 방심위는 규정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프로그램을 내보낸 방송사에 대해 행정 지도나 법정 제재를 내린다.
<마녀사냥> 시즌1은 시작부터 종영까지 방심위로부터 총 4번의 고강도 법정 제재를 받았다. 모두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5조 2항 ‘성과 관련된 내용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는 항목이 적용됐다. 애초 <제이티비시>는 자체 판단을 통해 ‘15세 이상 시청가’로 분류했으나, 방심위가 심의에 착수하자 ‘19세 이상’으로 등급을 조정했다.
‘19금’으로 등급이 조정된 뒤에도 심의가 반복되자, 방심위원들과 연출진 사이에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5년 열린 방심위 소위원회 회의에서 한 위원이 “저는 이걸 보고 포르노 티브이인가 생각했다”고 말하자, 의견진술을 위해 출석한 <마녀사냥> 연출진 중 한 사람은 “(시청자들이) 포르노처럼 흥분하려고 <마녀사냥>을 보지는 않는다”고 반박하는 일도 있었다. 이 연출진은 심의를 의식해 “조심하고 있다”면서, “솔직히 출연자분들이 요즘 ‘왜 그거 안 나갔어?’ 할 정도로 통으로 들어낸 부분도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방송 시작 2년이 지나며 시청률과 화제성이 떨어진 탓에 더 자극적으로 바뀐 부분도 있었지만, 공중파에서 시도할 수 있는 ‘19금’ 표현의 최전선에 <마녀사냥>이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7년 사이 오티티가 대세로 떠올랐고, <마녀사냥> 시즌2도 텔레비전 플랫폼 대신 오티티를 선택했다. 오티티와 관련한 규제 체계가 아직 정돈되지 않은 탓에, 오티티 오리지널 콘텐츠는 현재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화비디오법)의 적용을 받는 상태다. 콘텐츠가 공개되기 전에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로부터 등급을 분류 받기만 하면 된다. 방송법 적용 대상이 아니므로, 방심위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 시즌2 1화는 이미 지난달 26일 영등위에서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다. 오티티 유통을 선택하여 콘텐츠에 대한 ‘사후심의’를 받을 필요가 없어진 것은, 제작진의 표현 자유를 높여준 장점이다.
<마녀사냥 2022> 1화의 한 장면. 티빙 제공
물론 <마녀사냥>이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던 이유가 공중파에서 보기 어려운 ‘섹드립’과 생생한 현실 연애담이 주는 재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연애를 매개로 청년 세대의 고민을 진지하게 듣고 지지해주는 태도가 시청자들의 마음에 가닿았던 덕분이다. <마녀사냥>이 신생 방송사 <제이티비시>의 20~40대 시청률을 높이며, ‘개국공신’ 프로 가운데 하나로 이름을 올린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도 온라인에서는 “마녀사냥 명언”이라는 제목으로 출연진의 다양한 조언이 회자되고 있다.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여자를 소중하게 대해주는 남자는 없다”(곽정은), “남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결국 인기 많은 시체가 된다”(허지웅) 같은 말들이다.
이처럼 <마녀사냥>은 당시 다른 많은 미디어가 결혼이라는 ‘목적지’를 염두에 둔 사랑만을 이야기할 때, 결혼과 분리된 ‘개인의 성장 서사’로서 연애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차별점이 두드러졌다. 청년들을 향한 ‘삼포 세대’니 ‘오포 세대’니 하는 호명 속에서, <마녀사냥>은 개인이 스스로 느끼는 감정의 진정성을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끝없이 설파한 것이다. 연애 시도나 과정에서의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도, 개인의 성장 서사를 중시하는 태도에서 비롯했다.
■ 아직은 과거의 추억에 머물러…‘레전드’ 명성 되찾으려면
새로 공개한 <마녀사냥 2022> 1화에서도 출연진은 사연 당사자의 감정을 존중하려는 태도를 보여줬다. 하지만 <마녀사냥>의 공백기 동안 비슷한 태도를 취하는 연애 토크쇼가 곳곳에 등장해 자리를 잡은 탓에, 다른 차별점을 찾기 어려웠다. 1화에 공개한 것보다 ‘매운맛’ 수위의 성 상담 프로그램도 이미 존재한다.
시즌2 1화에서도 시즌1처럼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마녀 부스’를 만들어 서울 성수동에 설치하고 여러 시민과 사연자의 고민을 함께 나눠서 흥미를 더했다. 하지만 과거처럼 출연진이 거리의 시민들과 ‘이원 생중계’로 대화를 나누고, 출연진 대화에 대한 사연자의 반응을 다음 방송에 반영하는 등 시청자와 더 가까이 호흡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모든 회차가 방송 전에 영등위 심사를 받아야 하므로, 시청자 피드백이나 트렌드에 시의적절하게 반응하기가 쉽지 않다.
7년 만에 돌아온 <마녀사냥>을 마주하면, 2022년 현재 청년들에게 연애의 의미는 무엇인지 묻게 된다. 과거처럼 시청자들과 깊이 교감하며 재미와 의미를 함께 제공할 수 있을까? 1화에서는 아직 답을 찾기 어렵다. ‘레전드’의 과거를 추억하게 될 뿐이다.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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