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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확실히 트렌드의 중심이 유튜브로 넘어간 모양이에요.” 제59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이 열린 지도 보름이 넘었는데, 내 주변 사람들은 아직도 <피식쇼>의 백상예술대상 티브이(TV)부문 예능작품상 수상을 이야기한다. 코미디언 이용주, 김민수, 정재형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영어 토크쇼 <피식쇼>는, 유튜브 콘텐츠로는 최초로 백상예술대상의 후보에 올랐으며, 후보에 오르기가 무섭게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그럴 법도 하다. 출연자들의 면면만 봐도 그 어느 레거시 미디어 예능 프로그램보다 화려하니까. 방탄소년단(BTS)의 알엠(RM)부터 가수 씨엘(CL), 미국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존 케이,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을 홍보하기 위해 출연한 배우 크리스 프랫과 감독 제임스 건까지. 처음엔 농담처럼 걸었던 ‘글로벌 토크쇼’, ‘케이(K)-코미디의 세계화’라는 목표가 어느덧 마냥 농담이 아니게 된 상황이다.
<피식쇼>만 화제인 것이 아니다. 최근 유튜브에서 가장 뜨거운 장르는 토크쇼다. 코미디언 이용진과 이진호의 <용진호건강원>이나, 웹툰 작가 겸 유튜버 침착맨(이병건)의 <초대석>, 가수 아이유의 뮤직 토크쇼 <아이유의 팔레트>, 가수 광희가 초대손님과 함께 팬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한다는 콘셉트의 토크쇼 <가내조공업> 등, 유튜브에는 일일이 그 목록을 적는 것만으로도 지면이 모자랄 만큼 많은 토크쇼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특히 화제가 되는 포맷은 음주 토크쇼다. 누가 술 좋아하는 민족 아니랄까 봐. 래퍼 이영지의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 가수 조현아의 <조현아의 목요일 밤>, 방탄소년단의 슈가가 진행하는 <슈취타>에 이르기까지, 술의 힘을 빌려 더 진솔한 대화를 끄집어내겠다는 음주 토크쇼들은 연일 높은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유튜브에서 다양한 토크쇼 콘텐츠들이 성공하고 있는 비결에 대해서는 <한겨레> 남지은 기자의 올해 4월14일치 기사(‘연예인 토크쇼, 유튜브를 접수하다’)를 통해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젊은 유튜브 토크쇼’에 밀려 ‘라스’ ‘유퀴즈’ ‘아형’ 정도만 명맥
그렇다면 티브이 토크쇼가 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튜브 토크쇼 콘텐츠들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완성도 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동안, 지상파를 비롯한 티브이에서는 토크쇼가 전멸하다시피 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주 7일 가득 토크쇼가 편성되던 시절이 있었지만 현재 남아 있는 티브이 토크쇼는 문화방송(MBC) <라디오스타>, <유퀴즈 온 더 블럭>(tvN), <아는 형님>(JTBC) 정도다. 유튜브에서의 열풍을 보면 여전히 토크쇼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존재하는데, 왜 티브이에서는 토크쇼들이 사라진 걸까?
티브이 산업에 종사 중인 이들에겐 인정하기 싫은 이야기겠으나, 티브이를 주로 소비하는 세대와 대중문화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세대가 분리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대중문화를 가장 왕성하게 소비하고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10·20세대에게, 티브이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나이 든 사람들이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토크쇼의 진행자 유재석(<유퀴즈 온 더 블럭>)이나 김구라(<라디오스타>), 강호동(<아는 형님>)조차도 모두 50대에 접어든 탓에,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는 스타가 출연할 때면 종종 게스트가 진행자들에게 ‘내가 왜 유명한지’ 한참 설명을 해야 하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물론 진행자가 나이 들었다는 게 꼭 나쁜 일은 아니다. 그만큼 연륜이 쌓였고 시야가 넓다는 의미가 될 수 있으니, 그를 통해 대화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확보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연예인과 정치인, 작가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출연하는 영미권 토크쇼와 달리 한국 토크쇼가 다루는 영역은 주로 ‘연예계’에만 국한돼 있으며, 그것도 대부분 최근 잘나가는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를 다루는 데 집중되고 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나 이미경 씨제이(CJ)그룹 부회장처럼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이끌어가는 거물들을 날카롭게 인터뷰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연륜이 있는 진행자의 기용이 도움이 되겠지만, 최근 데뷔해 10대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연예인을 인터뷰하는 데에는 연륜이 크게 도움 되진 않는다.
<피식쇼>나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 등의 유튜브 토크쇼가 성공하고 있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유튜브 토크쇼에는 10·20세대가 향유하는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는 스타들이 출연하는데, 진행자 또한 게스트들이 어느 지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어떤 매력을 지닌 사람인지 이미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게스트들이 진행자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야 하는 단계를 생략하고 갈 수 있는 것이다. 자기소개를 하는 단계를 생략할 수 있으니, 더 빠른 시간 안에 더 내밀한 이야기로 진입하기도 쉽다. 게스트를 잘 알고 있고 각종 밈(온라인상에서 유행하는 코드)을 이해하는 젊은 진행자들은 10·20세대의 토크쇼 수요를 빠르게 흡수했다.
앞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다루는 주제가 주로 ‘연예계’에만 국한돼 있다는 것 또한 티브이 토크쇼의 가능성을 축소시킨 원인이다. 연예계 이슈만 다루다 보면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 앨범 등을 홍보하러 나온 연예인들의 신변잡기, 혹은 자신을 둘러싼 루머에 대한 적극적인 방어 정도인데, 이런 이야기만 반복하다 보면 언제 그 어떤 토크쇼를 봐도 ‘뻔히 아는 이야기’로만 채워질 수밖에 없다. 한때는 주 7일을 가득 메워 편성됐던 토크쇼들이 하나둘씩 사라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다 어디서 한번쯤 들어본 듯한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지적과 함께 ‘연예인 이미지 세탁용 프로그램’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레거시 미디어에서 살아남는 데 성공한 <라디오스타>와 <유퀴즈 온 더 블럭>이 연예계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게스트 조합을 시도한 토크쇼라는 점은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암시한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정치나 시사 관련 이슈를 커버하기에도 타이밍이 좋지 않다. 지상파 토크쇼들이 정치 시사 이슈를 외면하는 동안, 한국에선 제이티비시 <썰전>에서부터 시작한 시사대담 정치토크쇼 포맷이 자리를 잡아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정치 이슈는 전·현직 정치인들이 출연하는 시사대담 정치토크쇼들의 전유물이 됐다. 게다가 한국 예능은 기껏 정치인이 출연해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몸을 사리는 바람에 정치인들의 이미지 메이킹에 도움을 주는 선에 그친 역사가 길지 않았나. 이제 와서 예능으로서의 토크쇼가 그 외연을 넓히려 시도한다고 해도, 과연 오래된 관성을 얼마나 깰 수 있을지 미지수다.
새삼스레 티브이 토크쇼의 쇠락에 대해 이야기한 건, 오랜만에 지상파 채널들이 새 토크쇼를 선보인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에스비에스(SBS)는 <강심장>(2009∼2013)의 원년 진행자 강호동·이승기와 함께 두번째 시즌 <강심장 리그>를 선보일 준비를 마쳤다. 오는 23일 첫 방송을 선보이는 12부작 <강심장 리그>는, <강심장> 특유의 ‘떼토크’의 이점을 살려 ‘알고리즘에 갇혀 최신 트렌드를 읽기 어려워진 시대’에 경제·의학·연예 등 최대한 다양한 이슈를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것으로 승부수를 걸었다. 많은 게스트가 출연하는 토크쇼답게 더 다양한 이슈를 다루겠다는 건데, 이는 기존 티브이 토크쇼의 한계로 지적됐던 소재의 협소함을 극복하겠다는 시도로 보인다. 하지만 한 회에 두자릿수의 게스트가 출연하는 <강심장>의 포맷을 떠올려보면, 자칫 다양한 이슈를 ‘겉핥기’식으로만 다루는 매거진식 구성에 그칠 우려도 있다.
문화방송은 6월 중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라는 토크 버라이어티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용진·최시원·조세호·주우재·유병재가 진행을 맡은 이 프로그램은, 매회 게스트가 제안하는 ‘안 하던 짓’을 키워드로 대화를 이어가며 소재를 확장해 스튜디오와 야외를 넘나드는 버라이어티 구성을 이어간다는 구상이다. 진행자들의 연령대로 보나, 최시원을 제외한 네명의 진행자 모두 유튜브에서 토크쇼 포맷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는 점으로 보나, 프로그램이 노리는 바는 명확하다. 더 젊고 최신 트렌드를 이해하는 진행자들을 앞세워서, 티브이 앞을 떠나 유튜브로 간 10·20 시청자들의 토크쇼 수요를 다시 끌어오겠다는 의도가 아닐까?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나 구성으로 볼 때, 새롭게 선보일 두 지상파 토크쇼의 목표는 ‘기존 티브이 토크쇼의 한계 극복’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쟁자가 다른 지상파 채널이었던 10년 전과 달리 새롭게 선보이는 토크쇼들의 경쟁 상대는 유튜브 토크쇼다. 훨씬 작은 규모의 프로덕션이 민첩하게 움직이고, 그만큼 방향 전환이나 콘셉트의 변경도 용이하며, 셀 수 없이 많은 채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우후죽순 등장하는 유튜브 토크쇼. 과연 이 새로운 경쟁에서 지상파 토크쇼들은 어엿한 플레이어로 살아남아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러려면 시청자들의 예상을 깨부술 만큼 새로워져야 할 것이다. 과감하게 깊어지거나, 과감하게 넓어지거나, 혹은 과감하게 젊어지거나.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2개월 휴식 뒤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