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이 새롭게 출시한 ‘케이비에스 플러스’(KBS+) 앱. 한국방송의 콘텐츠를 무료로 다시보기 할 수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올해 9월3일 방송의 날, 한국방송(KBS)은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앱)을 공개했다. 아니, 이 말은 어폐가 있다. 단순 애플리케이션이 아니라 무료 오티티(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공개한 거니까. 한국방송이 공개한 케이비에스플러스(KBS+)는, 국내 방송사 가운데 유일하게 자사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는 오티티 앱’이다. 한국방송 1티브이·2티브이와 계열사 케이블 채널 5개, 라디오 채널 8개 실시간 방송은 물론, 각종 인기 프로그램 정주행 채널과 5만여건의 드라마·예능·시사교양 콘텐츠 다시보기를 무료로 제공한다.
현재 방영 중인 프로그램의 다시보기는 본방송 후 3주부터 1년 사이에 방영한 회차에 한정돼 있지만, ‘태조 왕건’(2000∼2002), ‘추노’(2010), ‘김과장’(2017), ‘99억의 여자’(2019∼2020) 등 인기 있었던 과거 드라마들은 전 회차 다시보기를 제공한다. ‘콘서트 7080’(2004∼2018), ‘개그콘서트’(1999∼2020) 등의 과거 인기 예능 또한 전 회차는 아니어도 방대한 분량을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앞서 ‘애플리케이션’이라고 이야기한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케이비에스플러스는 한국방송의 다시보기 애플리케이션 ‘마이 케이’(my K)를 리브랜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전신인 ‘플레이어 케이(K)’까지 짚어보면, 한국방송 애플리케이션의 역사는 201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방송이 세상에 없던 아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 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케이비에스플러스를 애플리케이션이라고만 부르는 게 어폐가 있다고 한 까닭은 편성 전략 때문이다. 한국방송의 고화질 다큐멘터리나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케이비에스 명품관’이나, 수도권 시청자들은 그 존재를 모르거나 알아도 접근하기 어려웠던 지역국의 콘텐츠들을 접할 수 있는 ‘지역국’ 섹션 등은 케이비에스플러스의 방향성을 짐작하게 한다. 이번 리브랜딩에선 단순히 인기 있는 콘텐츠를 다시 보여주는 서비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영 미디어로서 한국방송이 추구하는 사회적 역할인 ‘담론 제시’와 ‘포용성’을 구현하겠다는 야심을 엿볼 수 있다.
비로그인 기반의, 광고 없는 무료 오티티라는 점 또한 공영 미디어로서 문턱 없는 포용을 추구하는 점이다. 하나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방송에 접근하기 취약한 계층들을 고려한 서비스 설계다. 케이비에스플러스는 모든 기능을 다 사용할 수 있는 ‘일반’ 모드 외에도 어린이 시청자들이 게임처럼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설계한 ‘키즈’ 모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기 어려워하는 노령 인구를 위해 기능을 대폭 단순화하고 버튼의 크기를 키워 티브이 리모콘과 같은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간편’ 모드를 제공한다.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낯설어하는 이들이 키오스크 앞에서 망설이는 게 사회적 문제가 된 시기에, 더욱 손쉽게 조작할 수 있는 사용 모드를 도입한 것은 다른 여타 오티티들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노력이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작업도 조금씩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처럼 모든 프로그램에 자막을 입힌 것은 아니지만, 종영한 인기 드라마나 주요 프로그램들 다시보기에는 방송통신위원회와 시청자미디어재단이 제작한 한글 자막이 제공된다. 한국방송은 케이비에스플러스 소개 페이지에서 접근성을 위한 이미지 대체 텍스트를 적용하고 주요 프로그램들에 자막을 제공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미디어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밝히고 있다. 오티티 서비스가 단순히 비장애인만 즐기는 게 아니라, 시각·청각장애인도 함께 즐기는 서비스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 리브랜딩인 셈이다.
치열한 오티티 플랫폼 경쟁을 생각한다면, 한국방송의 이런 행보는 시대의 흐름과는 방향을 달리한다. 어떻게든 자사의 콘텐츠를 독점해서 회원들에게만 공개하고, 아이디 공유를 금지해서 회원 수를 늘리고, 서비스 이용 가격을 올려서 수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오티티 플랫폼 경쟁은 갈수록 더 치열해지고 있지 않나. 그런 상황에서 케이비에스플러스는 스마트폰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아예 담장을 허물어버리는
길을 택했다.
일본의 공영방송인 일본방송협회(NHK)가 운영하는 ‘엔에이치케이플러스’(NHK+) 또한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일본방송협회 수신료 납부를 인증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케이비에스플러스보다는 폐쇄적이다. 그나마 케이비에스플러스와 그 방향성이 비슷한 서비스를 찾자면 미국의 공영방송 피비에스(PBS)가 운영하는 피비에스 애플리케이션이 있겠다. 실시간 방송과 뉴스·교양·예능 프로그램 등 다양한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케이비에스플러스와 피비에스는 그 방향성이 일치한다. 그러나 여전히 인기 드라마들을 다시 보려면 애플티브이 등의 서비스를 통해 회차별로 다시보기를 구매하거나, 피비에스에 기부금을 내고 ‘피비에스 패스포트’ 회원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 피비에스 애플리케이션 또한 케이비에스플러스보다는 폐쇄적인 서비스다. 영국의 ‘비비시(BBC) 아이플레이어’도 수신료 납부를 인증해야 한다. 다른 나라 공영방송 사례와 비교해도 케이비에스플러스는 압도적으로 개방적인 서비스다.
사실 케이비에스플러스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떠올렸던 건, 올해 중에 공개 예정인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무료 오티티 서비스 나사플러스(NASA+)였다. 나사플러스는 미 항공우주국의 라이브 중계는 물론, 자체 제작 토크쇼와 강연 등 우주 관련 프로그램들을 광고 없이 무료로 제공할 예정이다. 미 항공우주국은 기존에도 14만개 이상의 고해상도 사진이나 영상·음성 파일 등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고, 지금도 유튜브나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꾸준히 데이터베이스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을 받아 운영되는 기관인 만큼, 그를 통해 얻은 정보와 생산된 콘텐츠를 공공에 다시 환원하는 작업의 일환인 것이다. 나사플러스의 출범 소식을 듣고 나는 그 공영성이 부러웠다. 그러나 국민의 수신료를 받아 운영되는 한국방송이 제 콘텐츠를 공공에 무료로 환원하는 케이비에스플러스를 선보인 덕에, 더는 나사플러스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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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 이렇다 할 준비 기간도 없이 추진된 티브이 수신료 분리징수가 시행됐을 무렵 사람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명확한 정치 성향을 지닌 시민들의 경우 ‘당연히 분리징수를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쪽과 ‘방송을 길들이려는 정권 차원의 탄압’이라고 말하는 쪽으로 나뉘었지만,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도 사실은 다소 냉소적이었다. 요즘 누가 지상파 방송을 보느냐며 수신료를 안 내도 된다는 사실을 반겼던 이들부터, 한국방송이 그 많은 수신료 수입으로 대체 하는 게 뭐냐고 반문하는 이들, 한국방송이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했으니 분리징수로 인해 수입이 줄어들어도 할 말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까지
더는 수신료를 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는 것과는 별개로, 한국방송이 일정 이상의 지속적인 수입을 유지해야 하는 까닭은 따로 있다. 국민의 수신료를 받아 운영되는 한국방송은,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작해 국민들의 문화 생활 향유를 돕는 것은 물론 난시청 지역 생활자, 디지털 인터페이스가 낯선 노령인구, 비장애인 중심의 미디어 환경에서 소외되기 쉬운 장애인 시청자 등 다양한 환경에 놓인 시청자들을 모두 포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마치 케이비에스플러스가 그런 서비스를 내놓은 것처럼.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일들을 더 잘 해내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려면, 한국방송이 일정 이상의 지속적인 수입을 보장받는 것이 중요하다.
방송의 날 이튿날인 9월4일 개최된 제50회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에서, 한국방송 ‘법대로 사랑하라’(2022)에서 연기했던 배우 이세영이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방송의 가치에 대해 말했다. “사람들이 검색하고 가입하고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람들에게 찾아가는 것은 여전히 오로지 방송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파는 나이나 사는 곳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쉽고 공평한 편이니까요. 그래서 방송은 다른 방식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들의 어머니로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세영이 탁월하게 지적한 것처럼, 방송의 가치는 ‘나이나 사는 곳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쉽고 공평’하다는 점에서 나온다. 비록 지상파 형식은 아니지만, 케이비에스플러스 또한 ‘나이나 사는 곳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쉽고 공평’하게 접근하려는 서비스라는 점에서 공영방송의 가치를 충실하게 계승한 오티티 서비스다. 조금은,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것이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