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보는남자
〈내 남자의 여자〉의 결말은 어떨까. 만에 하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드라마건 영화건 결말을 모르고 봐야 한다고 믿는 독자는 더 이상 읽지 않는 게 좋겠다. 홍준표(김상중)가 죽을 것 같다.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가 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작가 김수현이 준표의 입에서 ‘오토바이’ 이야기가 맥락 없이 두 번이나 나오도록 대본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지적재산권의 소유자를 밝혀야 마땅할 텐데 이런 추리는 나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는 이의 것이다.) 실제로 준표가 죽음을 맞는 것으로 이 지독한 불륜의 드라마가 끝을 맺는다면 몹시 아쉬울 것이다. 손쉽고 상투적인 결말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완전한 사랑〉에서 시우(차인표)를 갑작스럽게 죽게 함으로써 여주인공의 시가를 일거에 응징한 바 있는데 준표마저 같은 운명이라면 재미가 없다. 알다시피 주인공의 죽음은 이민과 함께 우리 드라마가 너무 오랫동안 써먹은 뻔한 ‘봉합용 설정’이다. 작가가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야기를 벌여놓고 뜻밖의 한 방으로 다 덮어 버리면, 시청자는 원망과 무력감 사이에서 피곤하다. 준표가 죽음을 통해 전처, 아버지, 어머니, 아들, 애인 등 복잡하게 꼬인 인간관계를 단숨에 청산하고, 드라마 속의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똑같은 애도의 눈물을 흘리는 일치단결의 천국에 도달한다면 나는 실망할 것 같다.
준표가 드라마 끝까지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의 일부가 생명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준표는 자존과 성애를 잃었다. 드라마 초반 준표는 화영이 자신을 남자이게 만든다고 했고 화영은 자신이 색정녀가 되어 버렸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두 사람은 성적 열망에 들떠 대형 사고를 친 모험심 가득한 캐릭터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뜨겁지 않다. 집안 허드렛일이 화영을 아줌마로 만들었다. 준표도 많은 것을 잃었다. 아내도 아들도 아버지도 거액의 유산 그리고 명예를 잃었다. 그 대가로 얻은 애인도 이제는 관능적이지 않다. 그는 자산도 쾌락도 하나 없는 빈털터리, 속이 텅 빈 허수아비 신세이며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미아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불륜 남성이 사정없이 몰락하는 설정 뒤에는 두 가지가 깔려 있다. 그 중 하나는 자매애에 대한 작가의 긍정이다. 작가는 화영과 지수가 서로 연민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의 배경은 판에 박힌 가르침이다. 성적 열정은 수명이 짧아 신뢰할 것이 못되니 지루하더라도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견뎌내야 한다는 고래의 가르침을 드라마는 강조한다. 초반만 해도 드라마가 ‘주부용 토크쇼’와는 확연히 다를 줄 알았다. 화영은 관능적이며 현명하며 과단성이 뛰어나며 지적인 인물이다. 이 여자는 부분적 승리와 자기 긍정을 취할 자격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도 이제 패잔병 신세다.
드라마는 2회가 남았고 작가는 반전을 노리고 있을지 모른다. 팬들도 그것을 기대한다. 위험한 사랑과 성애와 상식 거부 등 급진적 주제로 출발했다가 보수적인 결말로 끝맺어버리면 시청자들은 적잖게 아쉬울 것이다.
이영재/웹진 〈컬티즌〉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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