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우리말 녹음이 사실상 자리를 감췄지만 성우들의 인기는 여전하다. 지난 24일 한국방송 3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성우들이 <소설극장>을 녹음하는 모습.
무명들은 일당 5만원 ‘야동 더빙’
방송 입사해도 참관교육이 전부
스타급들 ‘예능’서 새분야 개척
방송 입사해도 참관교육이 전부
스타급들 ‘예능’서 새분야 개척
“날아라, 가제트 팔!” 이 말 한마디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직업, “다음 내리실 곳은…” 이 말 한마디로 퇴근길 모든 이에게 스며들듯 위로하는 목소리를 빚어내는 그들. 수백만명의 청취자를 자랑하던 라디오 드라마 시대를 거쳐, 외화 우리말 녹음의 시대까지 성우들은 방송의 중심축이었다.
외화 우리말 녹음이 사실상 자리를 감추면서 성우가 설 자리를 잃는가 했지만, 성우 지망생만 2000여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는 여전하다. 여전히 아이들은 만화 주인공에 열광하고 예능 프로그램에 진출한 성우들은 ‘목소리’로 몸 연기를 선보인다.
마이너리그만 2000명, 여전한 인기
지난 24일 한국방송 3라디오 <소설극장>(월~일 오전 11시40분 방송)을 녹음중인 한 스튜디오. 성우들의 연기가 한창이다. 손짓, 발짓에 얼굴 표정까지 연극 무대가 따로 없다. 현장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1년차 홍수정씨의 모습이 보인다. 서른살이 넘어 전공인 바이올린을 접고 성우가 됐다. 지금은 제목도 기억에 가물가물한 10여년 전 휴먼 다큐가 그를 이 길로 이끌었다. 성우가 된 뒤 유일한 훈련은 ‘보는’ 것. 참관이 수습 교육의 전부다. 단역을 위주로 3년을 감내해야 하는 이 시기를 견디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성우가 되는 비법 따윈 없다. ‘날계란 한 판, 참기름 두 병 먹기’나 ‘폭포수 앞에서 목청 틔우기’ 등의 비법이 존재할 것으로 생각했던 외부인의 시선에, “반복 연습이 전부다. 그리고 … 사실 어느 정도 타고 나야 한다”는 안경진 성우극회 회장의 말은 야박하기 그지없다.
좋은 목소리를 듣고 “성우해도 되겠다”는 말을 쉽게 하는 것은 현실을 잘 모르는 것이다. 올해로 성우 생활 17년째인 안지환씨는 “녹음해가면서 연습하는 것보다 거울을 들고 다니면서 연습하는 게 성우에게는 중요하다”며 “연극 무대에 서도 될 정도의 연기에서 목소리만 전달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올해 공채에서 200 대 1의 경쟁률을 유지할 만큼 성우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하지만 성우의 세계도 다른 분야처럼 양극화는 예외가 아니다. 몇몇의 성우들에게 일이 몰리거나 성우만의 영역에 가수나 연기자들이 들어오는 경우도 많아져 그 안에서의 경쟁은 점입가경이다. 여기에 일반 연기자들의 무명 생활과 다름없는 ‘야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이들은 ‘언더그라운드 성우’라고 불린다. 주로 활동하는 영역은 케이블 홈쇼핑 사용설명서 낭독이나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를 보정하기 위한 녹음(외화가 아닌 국내 영화, 주로 야동) 등이다. 일당 5만원이 채 되지 않는 생활임에도 이런 시기를 거치면서 성우의 꿈을 키우는 사람들의 수는 2000명에 이른다.
맥가이버, 스컬리는 갔지만… 외화 우리말 녹음의 시대는 갔지만 만화를 포함해 여전히 ‘목소리’는 성우들의 영역이다. 안지환씨는 “내레이션 등 예전에 성우가 독점하던 것들을 가수나 배우 등이 나눠 맡기도 하지만 성우들도 그들의 영역으로 진출하고 있다”며 “성우들만의 영역은 줄어들었지만 성우가 할 수 있는 일 또한 더 많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쇼’ 성우라고 성우들끼리도 폄하하던 예능 분야에서 최근 새로운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케이블채널 티브이엔 <롤러코스터>의 경우 “성우 때문에 본다”는 게시판 댓글이 부지기수다. 기계음을 떠올리며 래퍼처럼 운율에 맞춰 냉정하게 읊조리는 내레이션으로 재미를 주고 있는 이 프로그램의 코너 ‘남녀 탐구생활’(서혜정)이나, 퀴즈인지 콩트인지 모를 만큼 익살맞은 대사로 성우가 극을 주도하는 코너 ‘여자가 화났다’(김종성)는 새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글·사진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맥가이버, 스컬리는 갔지만… 외화 우리말 녹음의 시대는 갔지만 만화를 포함해 여전히 ‘목소리’는 성우들의 영역이다. 안지환씨는 “내레이션 등 예전에 성우가 독점하던 것들을 가수나 배우 등이 나눠 맡기도 하지만 성우들도 그들의 영역으로 진출하고 있다”며 “성우들만의 영역은 줄어들었지만 성우가 할 수 있는 일 또한 더 많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쇼’ 성우라고 성우들끼리도 폄하하던 예능 분야에서 최근 새로운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케이블채널 티브이엔 <롤러코스터>의 경우 “성우 때문에 본다”는 게시판 댓글이 부지기수다. 기계음을 떠올리며 래퍼처럼 운율에 맞춰 냉정하게 읊조리는 내레이션으로 재미를 주고 있는 이 프로그램의 코너 ‘남녀 탐구생활’(서혜정)이나, 퀴즈인지 콩트인지 모를 만큼 익살맞은 대사로 성우가 극을 주도하는 코너 ‘여자가 화났다’(김종성)는 새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글·사진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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