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음악채널 <엠넷>의 ‘코크 플레이 배틀 신화’ 녹화현장. 가수가 꿈인 청소년들이 창작 안무 실력을 선보이고 있다.
[100℃르포] 대기실 꺄악 무애에선 능청 내려와선 엉엉 “기자예요? 저기 검은 모자 쓴 애 보이시죠. 완전 귀엽죠? 가까이에서 사진 좀 찍어다 주시면 안돼요? 네~?” 고등학생쯤 됐을까? 까까머리 남학생이 출연자 대기실을 가리키며 간절하게 핸드폰을 건넸다. 하도 안달복달하는 바람에 찍어다 줬더니 이 사람 아니라며 타박한다. 옆에 선 오영아(16·명일여고 1년)양은 ‘김애리 짱’이라는 플래카드를 흔들어댔다. 한 무리 여학생들은 하트 무늬를 형광색으로 그려왔다. “춤 잘 춰, 노래 잘해, 이승현 꺄악~.” 매달 30명과 배틀식 경쟁 지난 3일 오후 5시,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음악채널 <엠넷>의 ‘레츠 코크 플레이 배틀 신화’(매주 금 오후 6시 방송) 녹화현장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이들은 ‘진짜’ 가수 때문에 애태우는 게 아니다. 가수가 될지도 모르는 또래 친구들에게 열광하는 중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매달 12살 이상 신청자들 가운데 30명씩 뽑아 2주 동안 가수 훈련을 시켜주고 있다. 그 과정을 점수로 매겨 월말에 6명만 남긴다. 네티즌 투표와 그룹 신화, 가수 김완선씨, 강원래씨, 안정훈씨가 준 점수를 바탕으로 뽑는다. ‘생존자’들은 다음달에 도전자 30명과 또 겨뤄야 한다. 그래서 ‘배틀’이다. 이렇게 가다 11월께 6명 안팎만 골라 내년 초 ‘제2의 신화’로 데뷔시켜준다는 것이다. 방송 석달째, 1기는 5명, 2기는 4명 남았고, 3기가 훈련 1주째에 접어들었다. 1·2기는 벌써 팬클럽도 거느렸다. 이날 이들은 창작 안무를 선보였다. 3기 4팀 가운데 분홍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말해줘’ 팀의 한 여학생이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손을 관객에게 뻗으며 프로 같은 무대매너를 보여줬는데 말이다. “음악이 중간에 잘리는 바람에 박자를 놓쳐서 그래요.” 달래던 친구가 대신 이유를 말해줬다. ‘천생연분’ 팀은 이 프로그램의 엠시 강병규씨랑 여유있게 농담도 따먹고 성대모사 개인기까지 펼쳐보였다. 이들이 능청스럽게 무대를 장악하다가 무대 아래에선 발을 동동 구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호되게 준비했고 기대도 컸기 때문이다. 붉은 셔츠를 입은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팀의 조장 김태균(20)씨는 “중3부터 23살짜리까지 같은 팀인데 안무 연습하느라 일주일 동안 자발적으로 합숙 훈련을 했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가수가 꿈이었어요.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는데 여기 나오려고 휴학했고요. 잘 생기지 않아서 화면발이 안 사는 게 걱정이에요. 춤은 되는데 노래가 좀 달리고요.” 합숙하랴 기말고사 준비하랴, 조장 집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해 등교했다는 박종혁(16·인천정보산업고 2년)군은 “일주일만에 체중이 8㎏ 빠졌다”고 한다. 가수 비는 그의 꿈이자 ‘역할 모델’이다. 깜직한 안무를 보여준 ‘천생연분’ 팀에는 한눈에도 솜털이 보송보송한 친구가 있다. 이슬(12)양이다. 천안에서 혼자 서울까지 오가거나 연습이 늦게 끝날 때는 평택 친척 집에 신세 지는 이 친구, 자기가 뭘 원하는지 똑 부러지게 아는 애어른이다. “초등학교 4~5학년 때부터 연기 배우러 서울 왔다갔다 해서 하나도 안 무서워요.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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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잘해야 가수지 춤, 인물 되면 다 가수냐?’ 이들에겐 이런 비판이나 분류는 안 통한다. 중국에서 유학하다 방학 때 짬을 낸 박지운(17·동방국제고)군은 이렇게 말한다. “글쎄요. 요즘 트렌드가 노래를 아주 잘 부르던가 노래가 고만고만하면 춤을 잘 추던가 하는 건데 저는 어느 쪽이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인정 받으니까 인기도 있는 거잖아요.” 이 프로그램 홈페이지(zzang.cokeplay.com)에는 노래짱, 댄스짱, 외모짱에 엽기짱까지 투표가 이뤄지고 있다. 진짜 별이 되지 않더라도 안타까운 건 이들 가운덴 솔직히 그 어느 것도 안 돼는 친구들도 꽤 있다는 점이다. 이 프로그램의 강희정(34) 피디는 “모집할 때 천명 넘게 몰리기도 한다”며 “‘무슨 용기로 나왔을까’ 제작진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고 말했다. “텔레비전 속 스타야 예나 지금이나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거죠. 그런데 요즘 청소년들은 훨씬 적극적으로 이 꿈을 좇는 것 같아요. 자기 표현도 확실하고요.” 적극적인 만큼 때로는 무섭게 돌변한다. 편집할 때 한 아이만 도드라지거나 많이 나오면 바로 인터넷 게시판에 난리가 난다고 한다. 하나 더 신경 써야 할 건 좋게 말해 부모 관심, 나쁘게 말하면 부모 등쌀이다. “‘우리 애 이런 것도 잘 하는데 한번 봐 달라’는 부탁부터 ‘우리 애를 어떻게 떨어뜨릴 수가 있느냐’는 거센 항의까지 전화 많이 받아요.” 녹화가 끝나고 뿔뿔이 흩어진 이 ‘예비 스타’들에겐 ‘슈팅스타’라는 노래의 랩 16마디를 멋들어지게 불러내야 할 새 목표가 주어진다. 이 가운데 극소수는 진짜 별을 쏠 것이다. 그렇지 않은 대다수는 땀 쏟으며 함께 뒹굴고 연습한 청춘의 기억을 별처럼 기억할지도 모른다. 이날 녹화 분은 오는 8일 15분 분량으로 편집돼 방송될 예정이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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