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개 시민·언론단체로 구성된 ‘친일·독재 찬양방송 저지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KBS) 앞에서 ‘백선엽 다큐’ 등의 방영계획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KBS 구성안, ‘전쟁영웅’ ‘고아보호’에 초점
항일세력 토벌한 간도특설대 근무 등 쏙 빼
“역사기만” 비판에 “전쟁담” 궁색한 변명
항일세력 토벌한 간도특설대 근무 등 쏙 빼
“역사기만” 비판에 “전쟁담” 궁색한 변명
친일 인사는 사라지고 전쟁 영웅만 남았다. 14일 <한국방송>(KBS)의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2부작 <전쟁과 군인>(백선엽 다큐)의 프로그램 구성안을 보면, 백선엽 다큐는 그의 친일 행적은 외면하는 대신 한국전쟁 활약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대로 방송을 탈 경우, 공영방송 케이비에스의 ‘친일 인사 미화’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방송은 한국전쟁 61주년을 맞아 오는 24일 밤 10시와 25일 밤 10시30분 백선엽 다큐를 방송한다.
백선엽 다큐의 주요 내용을 담은 에이포(A4) 용지 12쪽짜리 구성안에 따르면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일대기를 다룬 해당 다큐는 ‘1부: 전쟁이 군인을 만든다-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라’와 ‘2부: 군인의 조건-싸우면서 배운다’(각 50분)로 이뤄져 있다. 1부의 주요 내용은 △운명의 대회전 다부동 전투 △전쟁 발발과 끝없는 후퇴 △백선엽은 누구인가 △새로운 개념의 6·25 전쟁 등이다. 2부는 △적에게도 배운다 △송정리 고아원과 빨치산 토벌 △휴전과 한국군 현대화 △장군의 눈물 순서로 전개된다.
이 가운데 거의 대부분은 제작진이 구성안에서 ‘진정한 장군’ 혹은 ‘전쟁 영웅’이라고 표현한 ‘훌륭한 지휘관 백선엽’의 활약상에 관한 내용이다. ‘송정리 고아원’과 ‘장군의 눈물’에서는 전쟁중에도 광주 송정리에 백선 보육원을 설립한 일화 등 그의 인간적 매력을 소개하고 있다.
제작진은 기획의도와 관련해 “백선엽은 한국군을 든든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전쟁 영웅이자 진정한 장군이었다”며 “절대 열세의 전력, 덜 훈련된 병사를 이끌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낸 백선엽의 면모에서 21세기 한국군 지휘관의 참모습을 모색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반면 그의 생애 가운데 논란이 일고 있는 ‘친일 행적’ 내용은 12쪽 분량의 구성안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제2권을 보면 그는 1920년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나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1940년 봉천군관학교에 입학했다. 1943년에는 일본이 세운 만주국에서 소위로 임관한 뒤 간도특설대 근무를 시작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일본군이 초급 장교를 양성하려고 세운 봉천군관학교를 스스로 선택한 것도 문제지만, 더 큰 과오는 대표적 친일 조직인 간도특설대 근무 경력”이라고 지적했다. 간도특설대는 일제 패망 직전까지 동북항일연군과 팔로군에 대해 모두 108차례 토벌 작전을 벌여 항일무장세력 및 민간인 172명을 살해했다. 그의 한국군 생활은 일제 패망 직후인 1945년부터였다.
백선엽 다큐에서도 1부 ‘백선엽은 누구인가’를 통해 그의 군 입문 계기를 다룬다. 그런데 구성안은 “평양사범학교를 거쳐 봉천군관학교에 들어갔다”에서 곧바로 “해방 이후 그는 조만식의 비서가 되었다”로 이어진다. 군 입문 과정을 다룬다면서 1940년 봉천군관학교 입학부터 1945년 일제 패망까지, 정작 군 입문 직전 5년의 행적을 생략한 것이다. 백선엽 다큐를 제작한 한국방송 춘천총국의 최재호 편성제작국장은 13일 그의 친일 행적이 구성안에서 빠진 이유를 묻자 “이 다큐는 기본적으로 전쟁에 관한 이야기”라며 “그가 ‘친일파냐 아니냐’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한국방송이 항일세력 토벌에 앞장선 간도특설대 장교 백선엽을 다루며 친일 행적은 뺀 채 그의 전쟁 활약상만 언급한다면, 이는 국민을 상대로 역사를 기만하는 행위”라며 “반공·안보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친일 인사의 과오를 덮겠다는 의도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방송의 ‘이승만-백선엽’ 다큐와 관련해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민족문제연구소,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83개 시민·언론단체는 지난 7일 ‘친일·독재 찬양방송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방영계획 철회를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비대위는 오는 20일 국회에서 ‘이승만, 백선엽 바로 알기’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이에 대해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한국방송이 항일세력 토벌에 앞장선 간도특설대 장교 백선엽을 다루며 친일 행적은 뺀 채 그의 전쟁 활약상만 언급한다면, 이는 국민을 상대로 역사를 기만하는 행위”라며 “반공·안보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친일 인사의 과오를 덮겠다는 의도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방송의 ‘이승만-백선엽’ 다큐와 관련해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민족문제연구소,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83개 시민·언론단체는 지난 7일 ‘친일·독재 찬양방송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방영계획 철회를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비대위는 오는 20일 국회에서 ‘이승만, 백선엽 바로 알기’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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