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밤 방영된 한국방송 백선엽 다큐 <전쟁과 군인>의 제2부 ‘싸움의 능선을 넘어’의 한 장면.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
다큐 ‘전쟁과 군인’ 항일세력 토벌 치부 쏙빼
“공정성 잃어” 누리집에 시청자 항의글 폭주
“공정성 잃어” 누리집에 시청자 항의글 폭주
“제 인생 최고의 날이었습니다.”(‘1부 기억의 파편을 찾아서’)
“한 인치 땅도 거저 얻은 것이 아닙니다.”(‘2부 싸움의 능선을 넘어’)
<한국방송>이 24, 25일 밤 방송한 2부작 ‘백선엽 특집 다큐멘터리’ <전쟁과 군인>은 한국전쟁 당시 연합군의 평양 진격을 떠올리는 예비역 대장 백선엽씨의 인터뷰로 시작해, 한국군 활약상을 강조한 그의 독백으로 끝났다. 방송 뒤 한국방송 누리집 ‘시청자상담실’에는 “백씨의 친일 행적은 외면한 채 전쟁 영웅으로만 미화했다”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이번 다큐는 백씨 시각에서 바라본 한국전쟁의 재해석 수준을 넘지 못했다는 평들이 많다. 그가 ‘다부동 전투’를 회상하면서 “내가 선두에 설 테니 나를 따르라 하고, ‘내가 만약 후퇴하면 나를 쏘라’고 말했다”고 하면 내레이터는 그의 증언을 받아 한국전 영상과 함께 “후퇴하던 병사들이 다시 고지를 사수해 전세를 바꿔놓았다”고 설명하는 식이었다. 스튜디오에 직접 나온 백씨는 주요 장면마다 등장해 자신의 생생한 기억을 들려주는 역할을 맡았다.
백씨가 기억하지 않은 것, 그리고 다큐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은 것은 친일 행적이었다. 한국방송은 이에 대해 프로그램 도중 내레이터가 “백선엽은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했다. 이것으로 그는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됐다”고 언급하는 정도로 끝냈다. 이 부분은 그의 전쟁 활약상을 소개하는 방송의 앞뒤 맥락과 고립돼 있어 시청자들은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또 그가 수많은 항일 무장세력을 살상한 일본군 간도특설대 출신이라는 사실은 소개되지 않았다.
방송 뒤 시청자들은 ‘시청자상담실’ 등에 의견을 올려 “친일 행적으로 논란을 빚은 사람을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내용에 실망했다”며 수신료 거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하루 평균 30~40건 정도였던 시청자상담실 시청자 의견은 25일 하루 동안 비판 의견만 400건 가까이 폭주했다. 시청자 김기환씨는 “백씨의 일제 때 행적을 볼 때 그는 단순 친일파가 아니라 민족반역자”라며 “(한국전쟁 때) 조국을 위해 희생한 많은 분들이 민족반역자와 똑같이 대접받기를 원치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상덕 한국방송 홍보국장은 26일 “심의를 거쳐 방송을 결정한 만큼 비판 의견이 많다면 제작진과 다시 평가를 내려볼 것”이라고 밝혔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25일 밤 한국방송 누리집 시청자상담실에 올라온 비판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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