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한국방송 <9시뉴스>(왼쪽)와 문화방송 <뉴스데스크>(오른쪽)의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논란 관련 보도 장면. 한국방송·문화방송 화면 갈무리
`9시 뉴스’ 모니터 결과 5건·7건 보도 그쳐
의혹, 단순공방 처리…‘백지화’는 크게 키워
“자기검열” 지적에 MBC선 “시각차” 해명
의혹, 단순공방 처리…‘백지화’는 크게 키워
“자기검열” 지적에 MBC선 “시각차” 해명
‘내곡동 사저’ 논란은 이명박 대통령의 도덕성에 적잖은 상처를 남겼다. 지난 17일 청와대는 내곡동 사저 건립 계획 백지화를 발표하며 논란의 진화를 시도했지만, 사저 부지 매입 방식 및 매입 대금의 출처 등에 관한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 8일 언론 보도로 이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가 이 대통령이 아닌 아들 시형씨 명의로 돼 있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지고 청와대의 백지화 발표가 나오기까지 숱한 논란과 의혹을 몰고 온 내곡동 사저 건에 대해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의 메인 뉴스는 어떤 보도태도를 취했을까.
사저 문제가 불거진 다음날인 9일부터 관련 보도가 잠잠해진 22일까지 2주 동안 <한겨레>가 한국방송 <9시뉴스>와 문화방송 <뉴스데스크>를 모니터한 결과, 두 방송사는 논란의 핵심을 구체적으로 짚기보다 청와대 해명을 주로 전달하거나 여야 정치권 공방으로 다루는 등 소극적 보도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한국방송은 2주 동안 <9시 뉴스>에서 모두 5건(총 7분38초)의 내곡동 사저 보도를 했다. 보도 횟수도 적었지만 더 큰 문제는 뉴스를 다루는 태도였다. 9일 한국방송은 <9시 뉴스>에서 내곡동 사저 보도를 10번째 뉴스로 내놓았다. 내용은 청와대가 내곡동 사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거의 전부였다. 사저 부지의 명의를 이 대통령이 아닌 아들 시형씨 앞으로 해놓은 데 대해서는 “청와대는 아들 명의로 매입한 데 대해 일부 문제 제기를 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이 대통령이나 김윤옥 여사 명의로 부지 매입에 나서면 사저의 위치가 너무 일찍 노출되는 등의 문제가 있어 아들 이시형 씨가 사도록 했다는 해명을 내놨다”고 전했다. 문제 제기는 빠진 채 청와대 해명만 들어간 것이다. <9시 뉴스>는 10일과 11일에도 “여야, 이 대통령 내곡동 사저 놓고 ‘대립각’” 등의 제목으로 각종 논란과 의혹을 여야 단순 공방으로 처리했다. 각각 13번째, 19번째 소식이었다.
<9시 뉴스>에서 사저 관련 보도가 다시 나타난 것은 1주일 만인 지난 17일이었다. 청와대가 사저 건립 백지화를 발표한 날이었다. 이날 <9시 뉴스>는 “사저 전면 재검토…논현동으로 돌아갈 수도” 제목의 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논란을 빚고 있는 내곡동 사저 부지 문제와 관련해 오늘 유감의 뜻을 밝히고, 전면적인 재검토를 지시했다”며 청와대 발표 내용을 전했다. 성재호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는 25일 “현직 대통령 일가의 도덕성과 관련한 중대 사안을 다루면서 한국방송은 단 한 명의 취재기자도 현장에 보내지 않았다”며 “현 권력과 관련한 논란이나 의혹은 아예 다루지 않겠다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문화방송의 보도 태도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문화방송 메인뉴스인 <뉴스데스크>는 9일 14번째 소식으로 청와대 해명 위주의 관련 보도를 한 뒤 10일에는 “정치권, 이 대통령 내곡동 사저 놓고 공방”이라는 제목으로 논란을 단순 정쟁으로 다뤘다. 11일에는 청와대가 사저 부지의 명의를 대통령 앞으로 돌렸다는 소식을 단신으로 처리했고, 그나마 13일 이후엔 관련 뉴스를 내지 않았다. 사저 논란에 대해 소극적 보도로 일관했던 <뉴스데스크>는 17일 청와대가 사저 전면 백지화 계획을 내놓자 첫번째 뉴스로 이 소식을 올렸다. 문화방송이 모니터링 기간에 내놓은 관련 보도는 모두 7건이었다. 이 가운데 두 건은 각각 22초, 23초짜리 단신이었다. 문화방송 민주방송실천위원회는 지난 18일 모니터링 보고서에서 “(뉴스데스크 보도는) 보수 매체인 조선·중앙일보의 보도만도 못하다”고 지적했다. 조선과 중앙 두 신문은 논란 초기엔 청와대 해명을 주로 전했으나,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내곡동 사저 계획 백지화 촉구 사설을 싣기도 했다.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사저 부지 매입 과정 등을 둘러싼 각종 불법 논란은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사안인데도, 두 방송사가 이런 식으로 축소·단순보도에 그치는 것은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미 방송사 스스로 ‘자기검열’에 길들여진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진숙 문화방송 홍보국장은 “내곡동 사저 논란에 대한 보도 여부와 뉴스 구성 방식에 대한 평가는 보는 시각에 따라 판단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방송 쪽은 “나중에 입장을 밝히겠다”고 답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