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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녹차 향기처럼’…재난 속 싹트는 연대와 공동체 의식

등록 2015-06-12 18:30수정 2015-10-26 17:38

일본 드라마 <씁쓸하고 달콤한 희망의 차>
일본 드라마 <씁쓸하고 달콤한 희망의 차>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씁쓸하고 달콤한 희망의 차>
2012년 7월 일본 규슈 북부 지역에 집중호우가 쏟아져 내렸다. 시간당 강우량과 하루 강우량 모두 관측 사상 최다를 기록한 이 호우로 인해 24만명의 이재민과 수십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일본 제일의 녹차 생산지로 유명한 후쿠오카현 야메시의 경우에는 차밭으로 엄청난 토사가 유입되면서 주민들이 집과 일터를 동시에 잃었다.

지난해 엔에이치케이(NHK) 후쿠오카 지역방송국이 제작한 <씁쓸하고 달콤한 희망의 차>는 이 규슈 재난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 특히 작품의 배경이 된 호시노 마을은 중장비도 들어갈 수 없는 작은 산골 마을이라 복구하는 데 자원봉사자들의 힘이 컸다고 한다. 드라마는 이 실화에 모티브를 얻어 재난과 절망에 처했던 지역 공동체가 따뜻한 연대를 통해 서서히 희망을 회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은 젊은 회사원 하야카와 히로타(고이케 뎃페이). 도쿄 본사에서 어떤 사건을 겪은 뒤 후쿠오카 지사로 발령받아 온 그는 무력감에 빠져 동료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늘 우울한 표정이다. 동료들의 권유로 마지못해 호시노 마을 복구에 참여하면서도 ‘자원봉사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다’며 냉소적 태도를 보인다. 그러던 중 폐허가 된 한 차밭에서 자신과 닮은 무표정의 노인 이케모토 게이이치로(가니에 게이조)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화를 겪게 된다.

드라마의 제목 가운데 ‘씁쓸하고 달콤’하다는 표현은 일차적으로는 전통 녹차 교쿠로의 맛을 의미한다. 교쿠로를 기호로 소비하는 이들에게는 그저 맛 좋은 고급차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 보면 호시노 마을 주민들처럼 생산자들에게는 단순한 차를 넘어 중요한 생계수단이고 자부심이며 희망의 의미를 지닌다. 제목 그대로 ‘씁쓸하고 달콤한 희망의 차’이자 그들의 삶 자체인 것이다.

이는 또한 재난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와도 연결된다. 극 초반 고타는 규슈 호우에 대해 알고 있느냐는 회사 동료의 물음에 별생각 없었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 처음 호시노 마을 자원봉사를 권유받을 때도 골프 모임으로 오해했을 정도다. 마을에 직접 가보고 주민들과 게이이치로를 만나고서야 그 재난이 누군가에겐 삶의 희망을 뿌리째 앗아간 비극이며 절망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냉소적으로 생각했던 자원봉사도 도움을 ‘주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을 함께 격려하고 회복하는 행위라는 것 또한. 재난 복구를 위한 연대는 바로 그 이해와 공감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김선영 티브이평론가
김선영 티브이평론가
<씁쓸하고 달콤한 희망의 차>가 재난을 그리는 방식은 지난해 국내 번역 출간되어 화제를 불러 모았던 리베카 솔닛의 저서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솔닛은 “재난의 역사는 우리 모두가 목적과 의미를 추구할 뿐 아니라 연대를 갈망하는 사회적 동물임을 입증한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재난을 디스토피아로만 생각하는 데서 벗어나 연대와 공동체를 구축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서부터 메르스 사태에 이르기까지 인간에 의해 일어나는 재난이 더 빈번하고 무서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선영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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