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드라마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중국 한류가 뒤바꾼 제작 환경이다. 고질적인 졸속 제작의 대안으로 인식해온 사전제작이 중국 심의 통과를 위해 전격 도입됐고, 불황으로 보기 힘들어진 대작 규모 작품들이 다시 제작되고 있다. 상반기 시청률 1위를 기록한 재난멜로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비롯해 역시 한·중 동시 공개 예정인 두 편의 대작 사극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와 <사이당, 빛의 일기> 등 올해 최대 기대작들은 모두 이러한 환경 안에서 탄생했다.
웹드라마 쪽의 변화는 더 역동적이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국내 웹드라마 시장은 한·중 합작 방식을 통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지금까지의 국내 웹드라마가 주로 스타급 출연진이나 독특한 소재로 눈길을 끌었다면, 한·중 합작 드라마는 든든한 제작비로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영화계에서 실력이 검증된 우수한 제작인력을 끌어들여 각본 완성도 외에 로케이션, 미장센, 특수효과 등 영상미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현재 중국 대형 포털사이트 소후닷컴에서 방영 중인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이러한 한중합작 웹드라마 수준이 어디까지 왔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29살 광고기획자 고호(유리)의 일과 사랑이라는 줄거리만 보면 티브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트렌디로맨스 같지만 통통 튀는 구성과 영상미를 통해 웹드라마만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수작이다. 특히 <너의 목소리가 들려>, <피노키오> 등으로 호평받은 조수원 감독의 첫 중국 진출작이라는 화제성에 걸맞게 연출의 힘이 크게 돋보인다. 인물과 사물을 독특한 감성으로 평가하는 고호 캐릭터를 표현할 때는 광고처럼 감각적인 화면으로, 심리 묘사에서는 관조적인 화면으로 자연스러운 정서를 이끌어낸다.
스토리 구성도 흥미롭다. 지난해 한중합작 웹드라마 <고품격 짝사랑>으로 2억뷰 기록을 세운 신유담 작가는 날렵한 인물과 심리 묘사, 가볍게 치고 빠지는 대사 등으로 ‘웹로코’에 최적화된 작가임을 다시 증명한다. 다섯 남자친구 후보들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고호의 좌충우돌 연애담은 철저하게 주인공 심리에 집중한 덕에 소위 ‘어장관리’로 보일 수 있는 위험을 극복하고 이상형의 모든 조합이 가능한 디지털시대의 연애어드벤처처럼 그려진다. 다만 툭하면 손목을 잡아끌고 여주인공 말을 가로막는 남성 인물들의 언행처럼 곳곳에 드러나는 시대착오적 여성의식은 반드시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
원톱 주연 유리의 매력 또한 반짝반짝 빛이 난다. 웹드라마는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서도 눈길을 붙들 수 있는 배우의 매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장르다. 짧은 시간에 압축적인 무대연기를 선보이는 아이돌이 자주 캐스팅되는 이유다. 유리는 소녀시대 안에서의 사랑스러운 표정을 유지하면서도 연애에 까다로운 현대 여성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스낵컬처의 경쾌한 맛과 전통적인 티브이 드라마의 몰입도를 동시에 지닌 이 작품의 특징이 유리의 연기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