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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의사윤리’는 모두에게 공평한가

등록 2016-10-07 19:08수정 2016-10-07 19:48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히포크라테스 선서>

생명을 다루는 의료계와 진리를 탐구하는 학계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엄정한 윤리를 요구받는 전문가 집단이다.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씨의 사인을 ‘병사’라고 발표하며 유족들에게 책임을 돌린 서울대 백선하 교수나 옥시레킷벤키저로부터 돈을 받고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실험 결과를 조작한 서울대 수의대 조모 교수 사건이 분노를 넘어 허망함을 던져주는 것은 그 윤리의 최후 방어선마저 무너졌다는 절망에서 비롯한다.

장인정신의 나라로 불릴 만큼 투철한 직업윤리가 강점으로 알려진 일본에서도 최근 이러한 믿음이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로 인해 특유의 장인정신 신화가 다시금 조명받고 있지만, 정작 대중문화에서 재계, 관료계, 학계의 비리와 병폐를 고발하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을 보면 현실이 그리 밝지만은 않은 듯하다. 특히 의학드라마 분야에서는 의료계의 타락을 조명하는 이야기들이 일군의 장르를 형성할 정도다.

이달 초, 일본 <와우와우>(WOWOW) 채널에서 방영을 시작한 <히포크라테스 선서> 역시 사회파 의학드라마에 속한다. 돈의 노예가 되어 생명 윤리는 뒷전으로 밀려난 의학계를 소재로 한 소설 <살인마 잭의 고백>에 이어, 같은 문제의식을 담아낸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다만 이번 작품에서는 고발보다는 정직한 제목처럼 의사로서의 윤리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주인공의 성장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드라마는 수련의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 낭독 장면으로 시작한다.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교회를 닮은 공간에서 엄숙하게 선언하는 의사들의 표정이 사뭇 신성한 종교의식처럼 연출된 장면이다. 주인공 쓰가노 마코토(기타가와 게이코)는 ‘입사식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 암송을 시키는 유일한 곳’이라는 이유로 지금의 견습병원을 선택할 정도로 의사로서 소명감이 강한 인물이다. 훌륭한 내과의가 되어 난치병으로 고통을 겪는 친구와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만이 유일한 꿈이던 마코토에게, 담당 교수가 식견을 넓히라는 말과 함께 법의학 연수를 권유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첫회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살아 있는 환자를 낫게 하려고 의사가 되었다’는 마코토와 ‘법의학은 산 자와 죽은 자를 나누지 않는다’고 설득하는 교수의 대화다.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게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고 맹세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죽음과 삶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이는 요즘 같은 시기에 더욱 통렬함이 느껴지는 구절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백남기씨 사례에서 보듯, 최근 우리 사회의 비윤리성은 죽음을 다룰 때 더 극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극 중에서 마코토는 직업윤리가 흔들릴 때마다 히포크라테스 선언문 앞에 선다. 지금 여기에도 그 기본적인 다짐, 최소한의 윤리적 양심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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