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던 3학년 학생 한 명이 개학식 당일 갑자기 사라진다. 뛰어난 외모와 우수한 성적으로 모든 아이들의 선망을 한 몸에 받아온 ‘학교의 아이돌’ 오기와라 아즈사(나카조 아야미)였다. 단순 가출인지 실종 사건인지, 2주가 지나도 아무런 단서가 없자 경찰은 아즈사의 친구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다. 2학년 때부터 아즈사와 같은 반 친구인 기자 지망생 니시자와 료코(마쓰오카 마유)는 직접 카메라를 들고 친구들을 인터뷰하며 나름의 방식대로 진실을 찾아내려 애쓴다. 이 과정에서 아즈사에 관해 아이들이 저마다 숨기고 있던 비밀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그들은 아즈사의 진짜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혼란에 빠진다.
2015년 일본 후지티브이에서 방영된 5부작 드라마 <그녀>(원제 ‘She’)는 한 학생의 갑작스러운 잠적을 둘러싼 진실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학원물이다. 폐쇄공간과 다름없는 특수한 공간으로서 학교 안에서, 성장기 학생들의 예민한 심리와 관계 맺기의 어려움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미야베 미유키 원작의 일본 영화 <솔로몬의 위증>이나 제이 애셔 원작의 넷플릭스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 등의 작품들과 또래 친구 같은 드라마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이야기에 흔히 끼어드는 교사, 부모 등의 기성세대 시점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철저히 학생들이 이끌어가고, 사회관계망서비스와 휴대폰 영상처럼 십대들에게 익숙한 화법을 적극 활용하면서 그들의 목소리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섬뜩한 것은 아즈사와 친구들의 숨겨진 사연이 하나둘 공개될수록 삭제된 듯 보였던 기성사회의 시선도 그제야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가령 아즈사에 대한 친구들의 따스한 감정 한편에 ‘완벽한 학생’을 향한 열등감, 소외감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성적지상주의에 따른 서열문화의 폭력이 아이들의 우정, 호감, 자존감 등을 어떻게 파괴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아즈사와 제일 절친한 친구였던 아이가 둘의 사이가 멀어지게 된 한 사건의 진실과 “너무 완벽한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건 힘든 거야”라며 솔직한 심정을 내보일 때 그 폭력이 남긴 상처는 보는 이들에게도 서늘한 통증을 전달한다.
기성사회의 폭력적인 시선에는 ‘여고생’을 대상화하는 관음증적 시선도 포함된다. 극 초반 묘사되는 아즈사는 그야말로 여고생 판타지의 총체처럼 보인다. 명문대를 바라보는 뛰어난 성적과 아름다운 외모, ‘좋은 아이’의 인성을 고루 갖추었다고 평가받는 ‘그녀’는 실제로 성인 남성들에게 성적으로 착취당하기도 하고 학교와 부모에 의해 ‘자랑스러운 구경거리’로 취급받기도 한다. 극 중에서 학교 복도에 노골적으로 전시된 우수학생 아즈사의 사진과 한 남학생이 그녀의 사진을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하는 장면은 기성사회의 서열문화와 대상화문화가 낳은 왜곡된 풍경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일본드라마 <아틀리에> 작가 아다치 나오코의 여성주의적 감수성이 또 한번 빛을 발한 수작이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