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드라마 <투 더 레이크>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모스크바에 원인불명의 감염병이 창궐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은 폐가 급속도로 손상되고 홍채에 탈색 현상이 일어나는 독특한 증세를 보인다. 더 심각한 것은 빠른 속도의 확산세와 유례없이 높은 치사율이다. 감염자들은 길어야 3일에서 4일을 버티다 사망에 이르게 된다. 정보를 철저하게 통제하던 정부는 감염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자 급기야 군대를 동원해 모스크바 전체를 봉쇄한다. 모스크바 근교에 사는 세르게이(키릴 케로)는 사태가 심각해지자 도시에 갇힌 어린 아들과 전처를 탈출시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지난달 초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러시아 드라마 <투 더 레이크>는 치명적인 감염병으로 초토화가 된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감염재난 스릴러다. 러시아에서는 지난해 이미 방영된 작품이다. 재난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남성 캐릭터와 갈등을 유발하는 여성 캐릭터 등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인물 묘사나 부족한 개연성 등 한계도 많은 작품이지만, 공교롭게도 지금의 코로나19 범유행 상황과 맞물리면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투 더 레이크>의 인상적인 점은 특유의 배경이 자아내는 분위기다. 기존의 감염재난 스릴러가 주로 대도시의 첨단 문명과 재난 이후의 폐허를 대조적으로 그리며 긴장감을 자아낼 때, 이 작품은 모스크바를 빠져나온 생존자들 앞에 펼쳐진 차가운 설원과 야생의 풍경을 통해 막막한 절망감을 드러낸다. 이는 단순히 독특한 볼거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의 폐쇄적인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감염재난 스릴러가 봉쇄와 격리의 모티브를 통해 시민을 통제하는 권력층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아낸다고 할 때, <투 더 레이크>는 가장 적절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극 초반부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정체 모를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을 때 정부는 그보다 빠른 속도로 시민을 통제한다. 감염병 상황에 대해 보도하던 뉴스 프로그램은 바이러스 전문가가 은폐된 진실을 밝히려 하자 방송사고를 가장해 화면을 광고로 전환해버린다. 한 초등학교에서 감염자가 나오자 군부대가 투입되어 건물을 통째로 봉쇄하는 장면도 위협적이긴 마찬가지다. 건물 안에 격리된 아이들이 군에 의해 실려나가는 감염자 아동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모습은 이 작품에서 가장 소름 돋는 장면이다. <투 더 레이크>의 본질적인 공포는 감염자들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그처럼 폐쇄사회로서 러시아의 현실을 환기하는 장면들 안에 도사리고 있다.
생존자 그룹의 특성도 흥미롭다. 우울증을 앓았던 세르게이, 그의 늙은 아버지 보리스(유리 쿠즈네초프), 아스퍼거증후군인 미샤(엘다르 칼리물린), 미샤를 돌보느라 억눌려 있는 엄마 아나(빅토리야 이사코바), 어린 나이에 알코올중독에 빠진 폴리나(빅토리야 아갈라코바), 만삭의 임신부 마리나(나탈리야 젬초바) 등이 주요 인물이다. 재난 상황에서 제일 먼저 소외되기 쉬운 약자들이 만들어가는 생존 서사는 이 작품에 또 다른 개성을 부여한다.
티브이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