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혼했어요>에 출연하는 최고기(왼쪽)와 유깻잎. 방송 화면 갈무리
처음 <티브이(TV)조선>이 <우리 이혼했어요>를 론칭했을 때, 제작진은 공식 홈페이지 ‘프로그램 소개’란에 적은 기획 의도를 통해 “이혼 후 새로운 관계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이해가 어렵지는 않았다. 작년 3월1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2019년 혼인 건수와 이혼 건수는 각각 23만9200건과 11만8000건이었다. 새로운 부부가 두 쌍 탄생할 때마다, 어디선가 한 쌍은 이혼을 선택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혼은 2003년 17만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매년 꾸준히 11만건에서 12만건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데,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을 뒤로 미루거나, 가치관의 이유로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 생각하며 비혼을 선택하는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니, 아마 혼인 건수와 이혼 건수 사이의 격차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이혼이 보편적인 일이 된 시대에, 이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여전히 금기시하는 편견을 깨고 이혼 뒤 부부 사이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탐구해보겠다는 접근은 나름 납득이 가는 선택이었다.
세상 모든 프로그램들이 다 공식적으로 밝힌 기획 의도대로만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명분은 ‘새로운 관계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것이지만, <우리 이혼했어요>가 제시하는 가능성은 그다지 새롭지 않다. <우리 이혼했어요>는 전국민이 다 아는 배우 커플이었던 이영하와 선우은숙, 유튜브 크리에이터 커플이었던 최고기와 유깻잎, 연애만 11년을 하고 마침내 결혼에 골인했다가 16개월 만에 이혼을 선택한 가수 이하늘과 박유선 등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부부들을 섭외해, 그들의 입으로 자신들이 이혼을 선택하게 된 속사정이나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감정의 편린을 이야기하도록 유도한다. 이혼 뒤 따로 살던 전 배우자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어떤 이들은 자신은 미처 몰랐던 상대의 관점을 이해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을 조금 더 너그럽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진 대국을 복기하며 패인을 찾는 바둑기사들처럼, 출연자들은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차근차근 짚어가며 배운다.
<우리 이혼했어요>에 출연한 배우 선우은숙과 이영하. 티브이조선 제공
물론 비록 더는 부부로 살아가지 않는다 해도, 서로를 향해 가지고 있었던 오해를 푼다거나, 미안했던 것을 사과하고 서운했던 것을 용서하며 복잡하게 얽힌 감정의 타래를 풀어낼 수 있다면 그건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출연자들이 오래 묵은 감정들을 조금씩 풀어갈 때쯤, <우리 이혼했어요>는 본심을 드러낸다. 이혼 뒤 처음으로 같은 집에서 잠을 자는 부부의 밤을 보며 꺼져버린 감정에 다시 불이 붙기를 고대하고, 공통의 지인들을 투입시켜 자꾸 재결합의 가능성을 떠본다. 이혼한 부부가 이혼 후에도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탐구하겠다던 기획 의도의 진짜 의미는, “이 부부가 과연 재결합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뻔한 지점으로 돌아온다. 오해도 풀리고 감정도 해소가 되고 나면, 문제가 없으니 다시 재혼해서 소위 ‘정상가정’을 복원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낡디낡은 시선으로. 결국 제작진이 이야기했던 ‘새로운 관계’라는 건 ‘행복한 결혼’과 ‘불행한 이혼’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관계를 뜻한 게 아니라, 그 이분법 구도 안에서 다시 ‘행복한 결혼’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새롭게 ‘관계’를 맺어보자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이혼에 대한 오래된 사회적 통념을 깨고 더 성숙한 관계를 설정하고 싶다며 출발한 프로그램이, 정작 자신들은 어떻게든 헤어진 두 사람을 다시 붙이지 못해 안달이다. 기획 의도로부터 한참 떨어진 자리까지 흘러왔는데, 프로그램은 그걸 감추는 대신 오히려 쩌렁쩌렁 과시한다. 스튜디오에서 영상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패널들인 신동엽과 김원희, 김새롬은 “주변 지인들로부터 이 커플 정말 재결합하는 거 맞는지 다음 회차 이야기 살짝만 알려 달라는 스포일러성 질문을 받는다”고 너스레를 떨고, 재결합 이야기를 꺼내는 최고기에게 자신은 그럴 의사가 없다고 잘라 말하는 유깻잎을 보며 “시아버지가 마음을 바꾼 걸 몰라서 저런다”며 안타까워한다. 두 쌍이 결혼하는 동안 한 쌍은 이혼을 선택해서 이제 이혼도 큰 흉이 아닌 시대에, 이혼 상태를 가장 수치스러워하고 결혼 상태의 복원을 위해 모든 자원을 쏟아붓고 있는 건 누구인가?
부부가 이혼한 상태를 견디지 못하니, 프로그램은 자꾸 주변 사람들의 등을 떠밀어 부부 사이의 관계 복원을 위한 촉매로 삼는다. 그중 가장 자주 불려 나오는 건 역시 자식들이다. 이영하와 선우은숙 사이에는 어린 손자가 ‘큐피드’로 호명되어 냉랭한 조부모 사이를 녹여주는 역할을 촉구받고,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챙기는지를 증언하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며느리는 패널들에게 “며느리가 현명하다”는 칭찬을 받는다. 아직도 며느리에 대한 서운함을 다 풀지 못하고 있는 최고기의 아버지는 두 사람의 재결합을 응원한다며 그 이유로 “(최고기와 유깻잎의 딸인) 솔잎이가 불쌍하다”고 말한다. 21세기도 벌써 5분의 1이나 지났는데, 이혼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불행하고, 소위 ‘정상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행복하다는 이 폭력적인 이분법은 죽지도 않고 꾸역꾸역 살아 돌아온다. 손자를 봐서라도, 며느리를 봐서라도, 어린 딸을 봐서라도. ‘새로운 관계’를 생각한다는 프로그램은, 이혼을 생각하는 부부의 발목을 잡는 가장 오래된 떡밥을 수치심도 모르고 꺼낸다.
부모님이 이혼하자마자 주변 어른들로부터 “네가 중간에서 잘해야 두 분이 재결합한다. 다 같이 함께 사는 게 너도 행복하지 않겠냐”는 헛소리를 들으며 성장했던 나로서는 너무나 익숙한 시선이다. 부부가 이혼을 결심하기까진 오랜 고민과 갈등이 존재하는데, 그 갈등을 억지로 봉합하며 사는 부모를 보며 자라는 아이들은 딱 그 부모만큼 불행하다. 부모가 불행한 걸 자식들만큼 빨리 눈치채는 존재도 없으니까. 그런 속사정을 다 알지도 못하는 외부인들은, 그저 그 폭력적인 이분법을 들이밀며 “이혼 안 하는 게 그래도 낫다”, “애들을 봐서라도 같이 사는 게 낫지 않냐”는 식의 이야기를 해대곤 했다. 자기들 마음 편하자고 초등학교 5학년인 나를 붙잡고 “네가 중간에서 두 사람을 좀 화해시켜 보라”는 이야기를 대단한 덕담인 양 던지고 지나가던 어른들의 무책임한 시선이야말로, 지금 <우리 이혼했어요>의 시청률을 견인하는 가장 큰 동력이다. 거, 기왕이면 좀 같이 살지. 그래도 이혼보단 결혼이 낫지 않나. 애도 있는데…. 하나도 새롭지 않다.
재결합을 목표로 프로그램의 모든 초점을 맞춰버리니, 두 사람이 어렵게 내린 선택인 이혼은 졸지에 ‘알고 보면 그렇게 큰 것도 아닌 아주 사소한 이유에서 시작된 상처’ 정도로 취급된다. 유깻잎이 방송을 통해 자신은 더 이상 최고기를 남자로 생각하지 않으며 재결합할 마음이 없다고 밝히자, 사람들은 유깻잎을 향한 악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린아이도 있는데 너무 이기적이라는 둥, 모성애가 없다는 둥, 남의 인생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깟 거 좀 참고 다시 잘 살아보면 좋지 않겠냐는 말들을 던진다. 당황한 프로그램 제작진은 지난 21일 “큰 용기를 내준 출연자들이 더 큰 상처를 받는 일이 없도록 더 이상의 악플과 비난은 자제해주시길 부탁”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우스운 이야기다. 악플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니다. 용기를 내어 프로그램에 출연한 두 사람의 이혼 사유를 방송 촬영 몇 번 만에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사소한 것 취급하며 프로그램의 초점을 온통 ‘재결합’에 맞춘 건 제작진이다. 정말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라서 시청자 탓만 하고 마는 건가?
물론 제작진은 웬만해선 반성하지도, 방향을 바꾸지도 않을 것이다. 작년 11월 2회 만에 최고 시청률 9.288%(닐슨코리아 조사, 종합편성 기준)를 찍은 뒤, <우리 이혼했어요>는 꾸준히 시청률 8%대를 유지하며 순항 중이니까. 그럴 거라면, 기획 의도라도 좀 솔직하게 다시 쓰자. “우린 정상가정으로 재결합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의 욕망을 한껏 자극해 시청률을 바짝 당기는 게 목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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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TV)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담당 기자가 처음 ‘술탄 오브 더 티브이’라는 코너명을 제안했을 때 당혹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굳이 코너명의 이유를 붙이자면,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무시되거나 간과되기 쉬운 이들을 한명 한명 술탄처럼 모시겠다는 각오 정도로 읽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