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기프실>의 한 장면. 시네마달 제공
영주댐은 4대강 공사의 일환으로 2009년 12월에 착공하여 2016년에 준공한 다목적 댐이다. 낙동강 수질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1조 1030억원이나 들인 이 토건 사업으로 수몰된 마을이 있다. 다큐멘터리 <기프실>(문창현, 2018)은 물속으로 사라진 경북 영주 기프실 마을과 그 마을 인근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6년에 걸쳐 기록했다.
감독은 4대강 문제에 관심을 갖던 중 자신의 할머니가 살던 곳이 수몰 예정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한다. 국가 폭력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으레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적극적으로 투쟁하거나, 공권력과 강하게 대립하는 장면을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곧 수몰될 지역에서 이주를 준비하며 자신의 정든 터전과 기나긴 작별 인사를 하는 이들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카메라에 담긴 것은 아이들이 뛰노는 초등학교, 자신이 다니는 학교가 물속에 잠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초등학생, 주민들이 가꿔온 마을 공동체, 그리고 아름다운 내성천이 변해가는 모습들이다. 이를 통해 감독은 삶의 희로애락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구체적인 사연을 지닌 등장인물들을 가깝게 느끼게끔 한다.
아들을 낳고 싶었던 부모는 김노미 할머니를 낳고, 그에게 ‘놈’에서 연유한 이름을 붙였다. 할머니는 다리가 아프지만 끊임없이 농사를 지으며 이사 가기 직전까지도 부지런히 몸을 놀린다. 남편이 남긴 빚으로 고생한 어느 할머니는 토지 보상비로 아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 다행이라고 하면서도, 나이 든 몸으로 이주해야 하는 상황이 서글프다. 고향을 좋아하지만 댐 건설에 참여하면서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건설 노동자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모교에서의 마지막 체육대회에 꼭 참석해달라는 플래카드에서 느껴지는 서글픔과 달리 사람들은 그 안에서 신나게 달리기를 하고, 게임을 한다. 한 초등학생은 학교가 철거되기 전에 기념으로 교실에서 지도를 가져왔다며 즐거워한다. 댐 준공 기념식에서 국회의원은 자신이 애를 써서 이주비를 좀 더 챙겨줬으니 좋지 않냐고 생색을 내고 대통령에게 돈을 좀 더 내놓으라고 하겠다며 하찮은 허세를 부린다.
감독은 이들의 풍광을 담는 것에서 나아가 요양원에서 10년간 지내다 돌아가신 후에 장례식으로나마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할머니를 통해, 소외되고 잊힌 존재인 기프실 마을을 은유한다. 영화의 말미에 등장하는, 할머니 생전의 잔칫날로 보이는 영상에서는 모두가 즐겁게 밥을 먹고 있다. 이 컷 직후, 할머니의 집은 철거된다. 애정이 담긴 터전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자리를 따듯하게 보듬어 안듯 응시하던 시선이 처참한 현실로 옮겨간다.
그렇게 건설된 영주댐은 놀랍게도, 안전성과 녹조 등의 환경오염 논란으로 현재까지 정상적인 가동을 못 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들이 잃어버린 삶의 터전과 영주댐 인근 내성천의 아름다움이 무엇 때문에 사라져야만 했는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감독은 할머니의 영혼이 무당새가 되어 다시 날아온 것이라 믿는 어머니, 계속해서 모종을 심는 마을 할머니들,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집터에서 흙을 파내는 퍼포먼스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쫓겨나도 다시 새롭게 살아나가는 사람들의 생의 의지를 표현한다. 감독의 퍼포먼스는 소외된 존재를 잊지 않고 계속 기록하겠다는 다짐으로 다가온다. 이 영화는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사이트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kr)에서 볼 수 있다.
강유가람 감독은 <모래>(2011)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볼만한 다큐멘터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쓴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