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내 아이가 성소수자라고 커밍아웃한다면, 한국의 부모는 대부분 당황할 것이다. 지난 몇십년간 일하는 여성이자 어머니로서 평범하게 살아온 나비와 비비안도 자신이 그런 일을 겪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지난 17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변규리, 2021)은 자식의 커밍아웃 이후, 성소수자 부모 모임에서 활동하게 된 나비와 비비안, 그리고 용기 있는 그 자식들의 삶을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다.
나비는 자신의 아이 한결이 트랜스젠더라고 처음 말했을 때, 그가 도대체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복잡하고 답답한 마음을 가진다. 그래서 네가 어려서 착각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거나, 여성으로서의 삶이 차별을 받으니 남성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냐는 등의 말로 한결에게 상처를 준다. 비비안 역시 아들 예준이가 게이라고 밝히자, 큰 충격에 빠진다.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외국인 성소수자를 자주 접했지만, 비비안은 ‘내 아들’이 그럴 것이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비비안은 며칠을 통곡했다. 하지만 예준이 불합리한 세상에서 맞서게 될 차별과 혐오를 상상하며 예준의 삶으로 더 다가가겠다고 결심한다. 나비 역시 한결이 자기 몸에 대해 느끼는 이질감에 괴로워하며 “당장 돌에 맞아도 이상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절절하게 호소하자 점차 그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퀴어 축제에서 단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혐오세력에게 비난당하고 맞는 처참한 광경을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점점 투사로 변화한다. 이제 나비는 한결을 바이젠더, 팬로맨틱, 에이섹슈얼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는 든든한 지지자가 되었다. 그리고 비비안도 아들과 함께 퀴어 축제에 참가하여 나의 게이 아들이 자랑스럽다
고 외칠 수 있게 되었다. 둘은 그렇게 성소수자 부모 모임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연대의 장에서 성장하면서 자신과는 다른 정체성을 이해하는 길을 걸어 나간다.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다큐멘터리는 성소수자의 부모 모임을 중심으로 부모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피면서, 동시에 일반적으로 성소수자가 가족 안에서 처하는 불안정한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도 함께 다루고 있다. 특히 감독은
한결의 성별 정정 과정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한 인간의 정체성 문제에서 부모의 권한을 과도하게 설정한 한국 사회 법체계의 부조리함을 드러낸다. 영화는 출연자들이 자식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것에서 나아가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를 고민하는 모습으로 확장한다. “부모-자식 관계가 종속적인 것이 아니라 평등해야 한다”고 말하는 비비안과, “가족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고, 만약 그렇지 못하더라도 더 튼튼해질 수 있어 다행이다. 왜냐하면 가족은 환상에 불과하고, 자신의 뿌리는 자신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나비의 말은 큰 울림을 준다.
2021년은 드라마 <마인>에서 재벌가 여성이 성소수자라고 커밍아웃하는 장면이 방영된 해다. 동시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10만명의 사람이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법 제정에 대한 심사 기한 자체를 무려 2024년까지로 미뤄버리는 일이 일어난 해이기도 하다. 어떤 순간에는 변화가 일어난 것 같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게 느껴진다. 아마도 이 다큐멘터리가 관객들에게 가는 길도 꽤 험난하고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그 길이 조금은 평탄하기를 바란다.
영화감독
<모래>(2011)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볼 만한 다큐멘터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쓴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