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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대한민국 헌법 제19조는 말한다. 이 조문에 근거하여, 2018년 6월28일 헌법재판소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 등이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더 이상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 순간이 오롯이 담긴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금기에 도전>(감독 김환태)이 지난 12월9일 개봉됐다.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을 18년간이나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영화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전쟁을 거부했던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독립운동사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광복 이후의 병역거부는 국가에 대한 반동적 범죄로 간주되어 2만여명의 사람들이 감옥에 가야 했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남과 북이 대치 중이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징병제를 당연한 의무로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군대는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공간이기에 ‘군대 가면 썩는다’는 말을 하는 이들도 있다. 많은 여성학자와 평화학자들이 지적했듯 군대는 그곳을 다녀온 사람 이외의 사람을 이등시민으로 만들어내는 시스템으로 작용해왔다. 대다수의 사람들 역시 군대와 국방의 의무를 신성시하는 분위기, 그리고 군대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 때문에 병역거부자들을 매도한다. 병역거부자들이 다른 방식으로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다하려 해도 국가는 그 기회를 주는 것조차 거부해왔다.
영화는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을 해온 활동가들과 2002년 이후 병역거부 운동 내 굵직한 사건을 성실하게 담고 있다. ‘평화는 강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라는 말에 맞서서 출연자 임재성씨가 ‘평화는 모두가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병역거부 운동은 평화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운동이다. 이 운동이 군사주의 문화 전반을 바꾸어내고, 한반도의 평화, 나아가 전쟁이 없는 세상을 꿈꾸기 위한 첫발자국일 것이라는 믿음으로 카메라는 인내하듯 이들 곁을 계속 지킨다. 그리고 무기거래 반대까지 확장된 운동의 모습을 통해 무기산업의 실체도 폭로한다. 영화는 무기를 사들이는 것으로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주장은 무기산업으로 이득을 얻는 자들이 꾸며낸 거짓말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다큐멘터리가 담아낸 수많은 병역거부자들의 얼굴 중에서 인상적인 얼굴이 있었다. 평화적 신념이나 종교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군대라는 시스템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나약한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드러내며 병역거부 선언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가 던진 ‘왜 병역을 통해 강한 남자가 되어야 하는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이야말로 이 영화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인 것 같다. 원래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다. 시스템에 들어갔을 때 그 시스템 자체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제주 4·3 항쟁이나, 광주 5·18 항쟁 같은 상황에서 당시 자신이 군인이었다면, 무고한 시민들에게 총구를 들이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두려움을 종종 갖는다고 한다.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이런 두려움의 마음을 갖는 것이야말로, 평화를 위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모래>(2011)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볼만한 다큐멘터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쓴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