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bit.ly/319DiiE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의 가족이 갑작스러운 질환으로 가장 가까운 병원의 응급실로 실려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병원은 내가 가입한 의료보험회사가 지정한 병원이 아니었다. 응급실에서는 그 이유로 환자의 치료를 거부한다. 당신은 보험사가 지정한 병원을 찾아 다시 아픈 가족을 데리고 길거리로 나가야 한다. 악몽도 이런 악몽이 없다.
미국에서는 이런 상황이 실제로 발생했다. 다큐멘터리 <식코>(마이클 무어, 2007)에 출연한 도넬씨는 지정 병원을 찾아 헤매다 어린 딸을 잃었다. <식코>는 다양한 사례를 들며 미국 의료 민영화의 폐해를 고발한다.
감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온 자신이 갖고 있는 의문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능력이 있다면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위한 경쟁이 보험사들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듯 영화 속 정치인들과 민간 보험사들은 미국의 의료보험 민영화 정책이 의료 서비스를 합리적인 선택의 영역으로 가져온 것이라 포장한다. 당신이 그 서비스를 구매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효율적으로 작동되어 필요할 때 되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조장한다. 하지만 민간 의료보험사는 치료를 승인할수록 재정적인 부담을 지게 되므로, 의료 서비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피보험자의 보험 청구를 가급적 거절하는 방식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내가 낸 만큼의 비용조차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다.
시스템 자체가 이윤에 복무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의사조차 자신의 양심을 외면하곤 한다. 보험금 지급 심사에 참여하는 의사들이 지급 거부율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는 임무를 완수하면 높은 보수를 받는다. 영화에 출연한 보험사 직원은 보험이 절실한 사람의 가입을 거절하며 받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사람들의 속사정을 알고 싶지 않다고 울면서 고백한다.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는 보험회사의 배를 불리고, 정치 로비 자금으로 사용된다. 의료의 공공성을 위협하는 정책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진다기보다 공공병원을 민간에 위탁하거나 영리 병원의 이익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서서히 다가온다. 인간이 가진 이기심의 곁을 파고들어, 모두가 각자도생의 논리를 내면화하도록 만들고, 그리하여 결국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다.
영화는 의료 민영화를 저지하고자 했던 힐러리 클린턴을 조롱하는 시선으로 다루고 있어 불편한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각국 조세 제도의 맥락을 구체적으로 소개하지 않고 다소 과장된 방식으로 프랑스, 캐나다, 영국, 쿠바 같은 나라들의 의료보험 정책을 미국과 비교하는 점은 아쉽다.
물론 미국도 ‘오바마케어’ 이후 변화하고 있으며, 한국도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위한 사회적인 논의도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의료 공공성에 대한 관심을 놓아버리는 순간, 두 손가락이 절단된 상황에서 어느 손가락을 접합할지를 돈에 따라서 결정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지도 모른다는 영화 속 메시지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이다.
강유가람 | 영화감독. <모래>(2011)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볼만한 다큐멘터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쓴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