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개봉하는 영화 <공기살인>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 중인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재조명한 작품이다. 더콘텐츠온 제공
대학병원 의사 정태훈(김상경)에겐 아내(서영희)와 6살 아들이 있다. 다복한 삶을 살던 그에게 어느 날 비운이 다가온다. 호흡기 질환을 앓던 아들이 유치원 수영 수업 중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 온 것. 급성 간질성 폐질환으로 판정된 아들은 의식불명 상태에 놓이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오겠다며 집에 간 아내마저 숨진 채 발견된다. 현직 검사인 처제 영주(이선빈)는 5개월 전 건강검진에서도 아무런 이상도 나오지 않은 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의문을 품는다. 장례식을 중단하고 부검에 나선 태훈은 아내의 폐가 섬유화된 것을 확인한다. 아내가 아들과 같은 질병을 앓고 있던 것. 태훈과 영주는 급성 폐질환의 원인을 찾아 나선다.
22일 개봉하는 영화 <공기살인>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 중인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재조명한 작품이다. 더콘텐츠온 제공
22일 개봉하는 영화 <공기살인>은 한 가정에 들이닥친 비극과 그 진상을 규명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10여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진행 중인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재조명한 작품이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2011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원인불명 폐질환으로 입원한 산모 4명이 사망하면서 불거졌다. 1994년 처음 출시돼 지난 17년 동안 1000만병이 팔린 가습기살균제의 독성으로 2만명이 목숨을 잃고 95만명이 피해를 입었다. 생활용품 속 화학물질로 인한 세계 최초의 환경 보건 사건이자, 최악의 화학 참사였다. 2011년 보건당국의 역학조사와 독성실험 결과로 위해성이 확인됐지만, 제품의 위험성을 알고도 판매한 기업과 이를 허가해준 정부 관계자는 가벼운 처벌을 받는 데 그쳤다. 참사 이후 11년 만인 지난달에야 피해 구제 최종 조정안이 나왔지만, 많은 분담금을 내야 하는 기업들이 수용을 거부하며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2일 개봉하는 영화 <공기살인>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 중인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재조명한 작품이다. 더콘텐츠온 제공
영화 속에서 검사장 출신 전관 변호사는 가해 기업의 ‘법기술자’로 활약하고, 임상병리학 교수와 화학자들은 기업 편에서 증언한다. 판매를 허가한 공무원들은 면피에 급급하고 누구도 사과하지 않는다. 대기업에 종속된 법조·의료·학계의 몰골과 무책임한 정부의 모습을 거듭 확인하는 일은 이제 분노를 넘어 서글픔마저 남긴다.
기획한 지 6년 만에 영화를 선보이게 된 조용선 감독은 지난 8일 시사회 이후 열린 간담회에서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다른 참사 이야기처럼 슬픔을 다뤄야 하나 생각했지만, 알면 알수록 분노했고 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며 “실제와 다른 영화의 결말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계속 지켜볼 것이라는, 기업과 정부에 대한 경고”라고 했다.
22일 개봉하는 영화 <공기살인>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 중인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재조명한 작품이다. 더콘텐츠온 제공
이 사건을 다룬 소재원 작가의 소설 <균>을 바탕으로 자료 조사를 한 뒤 각본을 쓴 조 감독은 “피해자들이 민사 소송을 벌이고, 기업이 독성실험을 조작하고 한 일들은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쉽게 알 수 있는 것들”이라며 “피해 상황이 너무 방대해 다 담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프고 괴로웠고, 혹시나 이 영화에서 잘못된 정보가 전달돼 가해 집단이 피해자를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될까 두려웠다”고 했다. 이어 “관공서, 병원, 학교 등 가습기가 있는 곳에서는 살균제를 대량 구매해 이용했고, 우리가 모두 간접 노출 대상이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김상경은 “나도 가습기살균제 뉴스를 봤을 때 남의 일이라 생각했다. 남의 일을 내 일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 영화가 가진 힘”이라고 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