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개봉하는 마블 신작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스틸컷. 코로나로 움츠러들었던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마블 히어로물과 ‘세미 호러’의 다층세계.
4일 전세계 동시 개봉하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닥터 스트레인지2>)는 마블 영화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공포 거장’ 샘 레이미 감독만의 색깔이 어우러진 슈퍼내추럴 블록버스터다. 3일 언론시사회에서 영화를 먼저 보니, 호러 속에 유머를 심는 샘 레이미 감독의 장기는 여전하고 악마나 피사체의 시점 숏 등 자신만의 인장도 또렷했다. ‘페이즈4’(4장)를 맞은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는 샘 레이미를 만나 ‘호러 마블’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장을 열었다.
악몽을 꾸다 깨어난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옛 애인 크리스틴(레이철 매캐덤스)의 결혼식에서 거대한 연체 괴물에게 쫓기는 소녀를 만난다. 문어를 닮은 괴물은 소녀를 납치하려 하고 닥터 스트레인지는 동료 웡(베네딕트 웡)과 합세해 괴물을 겨우 물리친다. ‘아메리카 차베스’(소치틀 고메스)라고 밝힌 소녀는 자신에게 멀티버스(다층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괴물은 소녀의 능력을 빼앗으려고 한 것. 전날 밤 꿈속에서 본 소녀가 아메리카였음을 깨달은 닥터 스트레인지는 악의 세력으로부터 아메리카를 구하기 위해 완다 막시모프(엘리자베스 올슨)를 찾아가지만, 이미 악령에 세뇌된 완다는 어느새 마녀 ‘스칼렛 위치’로 변한다. 아메리카를 넘기라고 협박하는 스칼렛 위치에게 맞서다 처참하게 패배한 닥터 스트레인지, 웡과 동료들은 아메리카와 함께 또 다른 멀티버스에 불시착한다.
4일 개봉하는 마블 신작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스틸컷. 코로나로 움츠러들었던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스파이더맨> 트릴로지(3부작)를 연출했던 샘 레이미는 <아이언맨>(2008)으로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가 열리기 직전까지 그 초석을 다졌다. 이후 엠시유를 뒤로한 채 자신의 특기인 호러로 돌아와 <드래그 미 투 헬>(2009)을 연출한 그는, 15년 만에 <닥터 스트레인지2>로 다시 마블 영화를 찍게 됐다. 샘 레이미는 외신과 한 인터뷰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캐릭터를 좋아했다”면서도 “또 다른 슈퍼히어로 영화를 찍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4일 개봉하는 마블 신작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스틸컷. 코로나로 움츠러들었던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대중에겐 <스파이더맨> 시리즈 감독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샘 레이미는 잔혹한 묘사와 유머가 공존하는 공포영화의 하위 장르인 ‘스플래터 영화’의 선구자로, 비(B)급 오락영화를 메이저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은 감독이다. 외딴 산장에 놀러 간 젊은이들이 악령을 불러내면서 끔찍한 살인극이 벌어지는 데뷔작 <이블 데드>(1981)는, 그에게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성공을 안긴 작품. 이 저예산 영화에서 시작된 악령 시점의 카메라워크와 공포 장면 속 유머는 <닥터 스트레인지2>에서도 확인된다.
4일 개봉하는 마블 신작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스틸컷. 코로나로 움츠러들었던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스파이더맨2>에서 닥터 옥토퍼스의 수술실 장면이나 <스파이더맨3>에서 성당 종소리에 심비오트가 다른 숙주에 들러붙는 장면 등에서 호러물의 장기를 선보였던 그는 <닥터 스트레인지2>에서도 악령에 쫓기는 장면과 강렬한 점프컷 등을 활용해 공포를 배가시킨다. <이블 데드>의 주연인 브루스 캠벨을 <스파이더맨> 시리즈 전편에 카메오로 출연시켰던 샘 레이미는, <닥터 스트레인지2>에도 그를 조연으로 기용해 고교 시절 영화 동아리에서 시작된 40여년 지기의 우정을 재확인시켜줬다.
특히 멀티버스를 통과하는 닥터 스트레인지와 아메리카를 여러 층위와 질감으로 표현한 영화 속 장면은 압권이다. 아름다우면서도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면서도 환상적인 그 세계 속에 마블코믹스의 만화 속 세계도 겹쳐진다.
4일 개봉하는 마블 신작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스틸컷. 코로나로 움츠러들었던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마블 영화가 견지해온 다양성과 정치적 올바름도 여전하다. 남자 슈퍼히어로들은 스칼렛 위치에게 대적할 상대가 되지 못한다. 스칼렛 위치를 상대하는 이가 여성 슈퍼히어로인 점이나, 캐스팅의 인종 다양성 등 요소도 마블 영화의 전통을 잇는다.
한편으로 <닥터 스트레인지2>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상실과 삶의 만족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자식들과 함께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싶은 완다와 헤어진 연인과 다시 시작하고 싶은 닥터 스트레인지는 자신들의 결핍을 메꾸려 노력하지만, 좀처럼 충족되지 않는다. 영화는 우리에게 가슴 속 공허가 불행이 되지 않도록 내 곁의 이웃에 기대 삶을 버텨야 한다고, 그것이 내 세계를 지탱하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마치 잃어버린 것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 사랑하는 이들 곁으로 돌아온 우리네 삶처럼.
생의 당연한 깨달음과 함께 <닥터 스트레인지2>는 마블 영화 ‘덕후’들을 위한 크로스오버식의 이야기 전개도 펼쳐 보인다. <엑스맨>의 자비에, <판타스틱4>의 히어로, 또 다른 우주에서 다른 인물로 사는 캡틴 마블과 캡틴 카터 등이 등장해, 기존 마블 영화 팬들이라면 이야기의 합종연횡에 재미를 느낄 법하다. 특히 캡틴 카터가 옛 연인 캡틴 아메리카의 시그니처 대사를 따라 하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마블 영화의 시그니처인 쿠키 영상은 2개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