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필의 <놉>은 모든 것이 볼거리가 되는 스펙터클 사회, 주목을 끄는 것만이 돈이 되고, 돈이 되는 것만이 오로지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주목경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이다. 창공을 가르며 땅 위의 생명을 집어삼키는 ‘그것’의 거방진 입은 세상 만물을 포착하여 사각의 프레임 안에 가두는 욕심 사나운 카메라의 조리개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미국 남성성과 주목경제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남성성 비평으로 확장된다.
오제이(대니얼 컬루야)는 ‘헤이우드 목장’을 운영 중이다. 동생 엠(키키 파머)과 함께 불황 속에서도 목장을 지키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그러던 어느 날 거대한 비행체가 나타나 돌보던 말들을 잡아간다. 유에프오(UFO)를 봤다고 생각한 남매는 ‘그것’을 카메라에 담아 “돈이 되는 영상”을 건지려고 한다. 오프라 쇼에 출연해 이름을 알릴 수 있는 한방. 그건 주목경제의 밑바닥을 살아가는 이들이 노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다.
한편, ‘그것’의 존재를 발견한 건 헤이우드 목장 사람들만은 아니었다. 근처에서 서부개척시대를 테마로 하는 ‘주피터 파크’를 운영하는 주프(스티븐 연) 역시 ‘그것’을 이용해 쇼를 만들어 돈을 벌려는 중이다. 한때 미국 그 자체였던 ‘거칠고 황량한 서부’(wild wild west)는 이제 조잡한 이미지 상품이 되어 주프의 전시장에 박제되어 있고, 주프는 카우보이가 야생을 길들이듯 ‘그것’을 길들이려 한다.
드디어 데뷔의 날. ‘그것’은 주프의 예상과 달리 포악하게 닥쳐와 관람객 모두를 집어삼킨다. 영화는 놀이공원에서 벌어진 참극을 주프의 과거와 정교하게 연결시키면서 ‘그것’의 정체를 폭로한다. ‘그것’은 유에프오가 아니라 비행 생명체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제이는 오랜 시간 동물을 돌봐온 사람으로서 ‘그것’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에게 ‘진 자켓’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조던 필은 진 자켓의 폭주와 주프의 과거가 만나는 자리에 시트콤 <고디가 돌아왔다>를 배치한다. 어린이 배우였던 주프가 출연했던 이 ‘영화 속 시트콤’이야말로 <놉>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똬리를 틀고 있는 둥지다.
<고디가 돌아왔다>는 항공우주센터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명석한 딸, 그리고 아시아계 아들로 이루어진 백인 중산층 가족의 이야기로, 그들이 키우는 침팬지의 이름이 바로 고디다. 드라마는 큰 인기를 누렸지만, 사고가 터지면서 폐방된다. 침팬지 고디가 폭주하면서 촬영장에 있던 사람들을 무참히 공격한 것. 항공우주산업과 백인 중산층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생각해보면, 강제로 길들여져 볼거리가 되어버린 ‘노예 동물’ 고디의 반란은 의미심장하다.
미국 정부가 1950년대 전후(戰後)의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내놓은 국가 비전 중 하나는 ‘항공우주산업을 통한 위대한 미국의 건설’이었다. 이때 우주는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 테크놀로지의 선도국인 미국을 전세계에 과시할 무대, 둘째, 냉전의 연장선상에서 소련과 대적하는 또 하나의 전쟁터,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개척지를 대신할 20세기의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국가는 미국인들이 정복해야 하는 새로운 미래로 우주를 제시했고, 항공우주산업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으며 전후 남성들이 ‘훌륭한 가장’이 될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했다. 그렇게 국가 이미지를 대표하는 백인 중산층 ‘정상 가족’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우주시대의 개막은 달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의 이름만을 기억하는 ‘나 홀로 영웅’ 시대의 시작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미국은 이름 없는 수많은 보병들의 승리를 기억하고자 했지만, 그 이후 전후의 풍요 속에서 주목을 독식하고 이름값을 올려야 영웅이 되는 셀러브리티의 시대가 열렸다. 이런 경향은 1970년대 소비자본주의와 맞물리며 본격적인 주목경제의 시작을 견인한다. 미국 남성성의 계보를 추적하는 <스티프트>(Stiffed)의 작가 수전 팔루디는 이 과정에서 미국 사회가 추구하는 ‘남자다움의 자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공존’보다는 ‘군림’에 방점이 찍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서부에 대한 이해도 바꾸어놓았다. 19세기 서부개척시대에는 가족과 공동체를 돌보고 자연 앞에 겸손할 줄 아는 남자가 존경을 받았다면, 1950년대 이후로 넘어가면서 미국의 정체성을 정초한 개척시대의 영웅은 공동체를 떠나 황야를 떠도는 ‘고독한 늑대’의 이미지로 다시 쓰였다. 이때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할리우드다. 이 시기 할리우드는 ‘돌보는 남자’보다는 ‘과시적인 남자’의 재현에 몰두했고, 그렇게 서부는 백인 포식자의 공간으로 재정립된다.
이제 ‘진짜 남자’는 다른 생명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보다는 얼마나 많은 동물(그리고 인종에 따라 동물화된 인간)의 사체를 눈앞에 쌓고 그것을 과시하는가로 판가름 났다. 하지만 그 ‘진짜 남자’는 사실 스펙터클 사회가 만들어낸 한없이 불안정한 이미지 상품에 불과했다. 그리고 1990년대, 고디가 폭주했던 바로 그 시기에, 항공우주산업은 거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진짜 남자’들은 해고되어 거리로 쫓겨났다.
조던 필은 미국 현대사에 뒤틀린 흑인 남성성의 대표로 기록되어 있는 ‘오제이 심슨’의 오명 아래 놓여 있는 인종주의를 환기시키면서 ‘다른 오제이’를 선보인다. 그리고 과시적인 남성성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자신의 허명을 전시하기보다 “먹여야 할 입”을 생각하며 매일의 돌봄과 생산노동에 헌신하는 오제이는 오래된 미래다.
그리하여 이 예민하고 지적인 감독이 새롭게 세공한 서부는 ‘돌보는 남자’ 오제이와 동물을 제물로 삼아 스스로 기꺼이 이미지 상품이 되어버리는 주프가 상징적으로 대결하는 공간이다. 엠이 오제이의 무대에서 공동주연이 될 수 있는 것과 달리 주프의 가족들은 끝까지 보조자로 남는 것 역시 이런 차이에서 비롯된다.
영화평론가,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