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다룬 이미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초토화작전>. 이미영 감독 제공
한국전쟁 당시 벌어진 민간인학살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두 작품이 관객과 만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프리미어로 처음 공개되는 이미영 감독의 <초토화작전>과 6일 개봉하는 구자환 감독의 <태안>이다. 전자는 이번 작품에서 처음 공개되는 영상 및 기밀해제보고서를 비롯해, 당시 기록을 내세워 미군의 ‘구원자’ 신화를 깬다. 후자는 보도연맹 사건과 부역자 처단 등 동족 간의 학살 비극을 유족들의 증언으로 환기한다.
공중출격 104만708회, 기총사격 1억6685만3100회, 네이팜탄 사용량 3만2357t, 폭탄 총 사용량 63만5000여t…. 전쟁을 경험하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런 숫자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이렇게 비교해보면 어떨까. 전체 폭탄 사용량은 미국이 2차 대전 때 유럽과 태평양에 퍼부었던 것보다 많았고, 3년 동안 희생된 민간인 사망자(최소 200만명)는 20년간 지리멸렬하게 이어진 베트남전보다 많았다. 당시 프랑스 종군기자는 이렇게 썼다. “2차 대전이 벌어진 유럽엔 돌과 시멘트 잔해들이 비참하게 서 있었지만 한국의 도시에 남은 건 잿더미뿐이었다.” 그런데 왜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전만큼 알려지지 않은 ‘잊혀진 전쟁’이 된 걸까.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다룬 이미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초토화작전>. 이미영 감독 제공
영화 <초토화작전>은 한국전쟁의 핵심을 미군의 초토화작전, 즉 군 시설과 민간 시설, 군인과 민간인 상관없이 모든 걸 쓸어버리는 작전이라고 규정한다. 이것은 감독의 주장이 아니라 영화가 보여주는 미군 문서에도 등장하는 문구다. 한국전쟁을 상징하는 기나긴 피난 행렬과 흥남철수 등은 초토화 작전의 불가피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미영 감독은 남북한을 막론하고 무차별적으로 진행된 융단폭격과 다수의 민간인 조준 공격 미군 보고서 등 기록자료와 동영상, 당시 뉴스 등을 인용해 이런 주장의 근거를 다층적으로 제시한다. 특히 휴전협상 전날까지 매일 출격해 폭탄을 쏟아내는 와중에 압록강 수풍댐 폭파에 참여했던 미군 조종사는 “2차 대전 때 나치가 네덜란드에 행했던 것과 유일하게 같은 포격”이라고 증언하며 미군이 ‘전쟁범죄’를 저질렀음을 시인하는 장면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다룬 이미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초토화작전>. 이미영 감독 제공
이 작품은 한국전쟁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역사 자문을, 베트남전 등 미국 현대사를 영화에 담아온 올리버 스톤 감독이 제작 자문을 맡았다. 이미영 감독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두 거장에게) 기대 없이 이메일 연락을 했는데 두분 다 흔쾌히 자문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커밍스 교수는 영화의 한컷 한컷에 대해 꼼꼼한 의견을 주면서 평생 한국전쟁을 연구한 자신도 처음 보는 중요한 자료들이 많다고 놀라워했다. 스톤 감독은 노근리 민간인 학살 책임을 발뺌하는 미국 정부의 회견 자료를 영화 맨 앞에 배치하는 등의 구성 방식에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고, 미국 내 배급도 직접 알아볼 정도로 열성적이라고 한다. 이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40분 이상 들어낸 전쟁 초기 남한 폭격 부분을 보강하고 살을 붙여 차기작도 만들 예정이다.
한국전쟁 당시 태안 지역에서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태안>. 레드무비 제공
구자환 감독의 <태안>은 듣는 영화다. 처음부터 끝까지 입에서 입으로 이어지는 증언을 묵묵히 따라간다. 평범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 소란이라고는 여름휴가를 오는 바닷가 여행자들이 전부였을 것만 같은 마을 곳곳을 피비린내로 물들였던 도륙의 현장과 울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당시를 지켜봤던 유족들의 이야기다.
한국전쟁 당시 서산군이었던 태안에서는 전쟁이 시작되면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국민보도연맹원 학살이 발생했다. 전쟁이 진행되고 점령군이 남에서 북으로, 그리고 다시 남으로 바뀌면서 부역자 처단이 편을 바꿔가며 반복됐다. 알려졌다시피 학살의 주체는 국가였다. 당시 이 지역에서만 경찰과 치안대의 손에 죽은 사람이 12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태안 지역에서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태안>. 레드무비 제공
태안유족회를 중심으로 증언에 나선 유족 대부분은 당시 10대 초·중반의 소년들이었다. 한참 학교에 다니고 말썽 부릴 나이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살해당한 아버지와 어머니, 삼촌과 형제들의 주검을 제 손으로 수습했던 이들이다. 부역자의 가족, 그 가족의 가족이라고 손쉽게 낙인이 찍혔던 이들 중 하나는 “당시 어린아이들을 풀어주라는 아주머니 덕에 목숨을 건졌다.” 당시 희생된 이웃 아주머니의 제사를 지금까지도 지내는 이유다. 또 다른 이는 당시 치안대의 폭력에 시달리다 아버지에게 “다른 곳으로 피하면 안되겠냐”고 자신이 했던 말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다는 죄책감을 지금까지도 안고 산다. 이제는 팔순이 넘은 노인이 되어 무심한 듯 당시의 학살 현장을 덤덤하게 증언하던 출연자들이 “너무 억울해서 (말도 안 나오고) 통곡하고 싶”었던 평생의 마음을 어렵사리 털어놓을 때 과거사는 왜 과거에 머물 수 없는가라는 질문으로 영화는 가닿는다.
한국전쟁 당시 태안 지역에서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태안>. 레드무비 제공
구 감독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가까운 친지나 이웃 간에도 꺼내지 못했던 말들을 인터뷰에서 처음 꺼낸 분들이 많았다”면서 70년간 유족들의 가슴속에 졌던 응어리를 가늠했다. <태안>은 서울 인디스페이스와 메가박스(강동·코엑스·군자점)를 포함해 전국 10개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