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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신의 뜻’ 따르던 연쇄살인범이 폭로한 진실

등록 2023-02-25 15:56수정 2023-02-25 19:03

[한겨레S] 손희정의 영화담(談)
<성스러운 거미>
판씨네마 제공
판씨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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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잠든 딸에게 입을 맞추며 말한다. “일어나기 전까지 돌아올 거야.” 집을 나선 여자는 공중화장실에서 화장을 하고 신발을 갈아 신는다. 그리고 히잡 밖으로 앞머리를 살짝 꺼낸다.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하기 전, 여자는 이맘 레자의 성지 앞에 잠깐 멈춰 선다. 짧은 기도를 바치는 것이다.

길을 나선 여자가 만난 남자들은 난폭하다. 여자를 타락의 원천으로 보면서 보호해야 할 여자와 짓밟아도 되는 여자를 구분하는 문화에서, 성을 파는 여자를 ‘인간’으로 대해주는 남자는 없다. 힘겨운 시간을 꾸역꾸역 견디면서 여자는 한 남자의 오토바이에 올라탄다. 그가 오늘의 마지막 손님이다. 결국 그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오늘 밤 이맘 레자(이슬람 시아파 주류인 12이맘파 8대 지도자)는 여자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죄를 가리는 장막이 된 차도르

여자의 시체를 황무지에 버리고 돌아오는 길.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남자의 뒷모습과 함께 불길한 음악이 울리고, 카메라는 점프 컷으로 상승한다. 그리고 서서히 도시 마슈하드의 전경이 모든 작은 것들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거미처럼 스크린 위로 떠오른다. 이어서 나타나는 영화의 제목 ‘성스러운 거미’는 도시에 대한 캡션과도 같다.

<성스러운 거미>의 알리 아바시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이 작품은 연쇄살인범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연쇄살인범을 만들어낸 사회에 대한 영화다.” 이란 제2의 도시로 최대 규모의 성지이면서 시아파 근본주의자들의 요람인 마슈하드는 감독이 언급한 바로 그 ‘사회’의 정수가 응집되어 있는 장소다. 오프닝 시퀀스의 끝에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 소개되는 셈이다.

<성스러운 거미>는 21세기 초 1년여에 걸쳐 16명의 성노동자를 살해한 연쇄살인범 사이드 하네이 사건을 극화했다. 당시 범인이 히잡으로 피해자의 목을 조르고 차도르로 시체를 싸매서 유기한 탓에 사람들은 그를 ‘거미 살인자’라 불렀다. 여자의 죄스러운 육체를 가리고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라던 베일이 실제로는 남자의 범행 수단이자 그 죄를 가리는 장막이 된다는 것은 ‘거미 살인’이 의도치 않게 폭로해버린 진실이었다.

“타락한 여자들을 청소했다”고 주장했던 사이드의 살인 행각만큼이나 섬뜩한 건 그가 체포된 뒤 벌어진 일들이다. 마슈하드의 근본주의자들은 그를 이용해 지지 세력을 결집하려고 했고, 대중은 그가 신의 뜻을 대신해 사회 정화를 행한 ‘지하드’(성전) 전사라고 떠들어댔다. 그는 대중의 석방 요구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면하지는 못했다. 이란 정부가 9·11 이후 서방의 시선을 의식했던 탓이다. 그러나 그가 내세웠던 사회 정화의 대의는 전혀 심판받지 못했다.

이란 출신 감독 알리 아바시는 조국에서 벌어진 일을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마침내 이 사건을 영화로 옮기기로 했을 때, 그는 연쇄살인을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소재가 아닌 영화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주제 그 자체로 가져온다. <성스러운 거미>의 장르가 범죄를 쾌락의 요소로 삼는 스릴러라기보다는 그 이면을 폭로하는 르포르타주에 가까워지는 이유다. 영화는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밝힌다. 사이드의 정체는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비밀이 아니라 탐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사이드는 평범한 가장으로 세 아이의 아버지였다. 동시에 그는 8년간 격렬하게 진행되었지만 100만명의 사상자와 이란의 경제적 몰락 외에는 아무런 결과로도 이어지지 못했던 이란-이라크 전쟁의 참전 군인이었다. 전쟁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는 그는 전쟁에서 순교하지 못하고 비루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런 그에게 아무런 보호막을 갖지 못한 여자들만 골라 목을 조르는 일은 남자로서 자신의 쓸모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처럼 보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아버지의 지지자들로부터 용기를 얻은 사이드의 아들은 만면에 의기양양함을 띠고 기자 라히미(자르 아미르에브라히미)에게 아버지가 어떻게 여자를 죽였는지 재연해 보인다. 이 사건으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사이드의 아들은 어떤 남자로 성장했을까. 그리고 오빠가 살인자를 흉내 내는 동안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채 즐겁게 ‘시체’를 연기했던 그의 어린 딸은, 또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판씨네마 제공
판씨네마 제공

판씨네마 제공
판씨네마 제공

히잡을 벗어던진 여성들

알리 아바시는 영화에 허구의 인물을 한명 등장시킨다. 진실을 밝히고 사이드를 체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성 기자 라히미다. 직장 내 성폭력 문제를 고발했다가 해고당한 라히미는 이란 여성들이 겪는 억압적인 현실을 체현하는 인물이다. 여자이기 때문에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건 ‘화장이 진한 여자’나 ‘그렇지 않은 여자’나 마찬가지다.

동시에 그는 이란의 사회변혁 운동을 이끌어온 21세기 이란 여성의 형상을 반영하는 인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최근 이란의 민주화운동을 이끌고 있는 여성들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1990년대 말부터 조직되기 시작한 민주시민 운동에서 여성들은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2006년 성평등 운동인 ‘100만 서명 운동’을 이끌었으며, 2009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였던 ‘녹색운동’에서 녹색 히잡을 쓰고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냈다.

이 ‘깨인 의식’은 2014년 페이스북에 등장한 ‘나의 은밀한 자유’(My Stealthy Freedom) 페이지로 이어진다. 공공 영역에서 히잡을 벗은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공유했던 온라인 페미니즘 운동은 #WhiteWednesdays(화이트 웬즈데이, 수요일마다 흰색 스카프를 써서 히잡 강제 시행령에 저항하는 운동)와 만났다. 이란 여성들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히잡과 복잡한 관계를 맺으면서 민주화운동에 동참해온 것이다(<비교문화연구> 제25집 1호 ‘“혁명 거리의 소녀들”: 해시태그 정치를 통한 이란 여성의 사회 운동’).

그러므로 허구적 인물이지만 현존 인물이기도 한 라히미를 통해 ‘거미 살인’이 성스러운 전쟁이었다는 허울을 벗고 진실한 모습 그대로 우리 앞에 도달한 것은 온당하다. 2022년 히잡을 느슨하게 썼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혔다가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 이후 촉발된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에서 이란의 여성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그 ‘신의 뜻’이라는 이름의 허울을 무너뜨리는 데 있을 것이다. #Mahsa_Amini

영화평론가,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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