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트 영화 <비스티 보이즈>(위)/ 음담패설 영화 <가루지기> (아래)
다음 주 개봉 ‘비스티 보이즈’ ‘가루지기’
한국 영화는 지금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제작 편수가 급격하게 줄어 극장에서 한국영화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추격자> 이후, 잘 만든 한국영화는 더욱 보기 힘들다. 마치 시계를 70~80년대 ‘방화’ 시절로 돌려놓은 것 같다. 막강한 자본과 기술력을 앞세운 할리우드 영화 앞에 속수무책이다. 오는 30일 간만에 선보이는 한국 영화 <비스티 보이즈>와 <가루지기>가 관객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을지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고 있다.
■ 탁월한 하정우의 연기
호스트 영화 <비스티 보이즈> 접대에 지친 룸살롱 언니들이 가학적인 얼굴로 찾는 호스트바. <비스티 보이즈>는 청담동 호스트바에서 노는 언니, 오빠들의 이야기다. 갑자기 집안이 어려워져 잠깐이라고 생각하며 호스트 생활을 시작한 승우(윤계상), 입만 열면 거짓말인데다 여자 등쳐먹을 생각만 하는 재현(하정우)을 중심으로, 밤거리의 화려함을 좇아 부나방처럼 날아들어 서로를 핥고 할퀴며 살아가는 청춘들을 비춘다. 밤문화의 속살을 보여주는 도입부는 파티처럼 흥겹다. 하정우의 연기는 혀를 내두를 만큼 물이 올랐다. “너 하고만은 프레쉬한 상태에서 시작하고 싶다”거나 “5천만원 이상으로 잘 할게”등의 구어체 대사는 영화의 리얼리티를 높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런데 거기까지. 영화는 중반 이후 방향을 잃고 헤맨다. 윤종빈 감독은 장편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군대의 상명하복 문화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두 젊은이를 그렸다. 주인공은 끝까지 비밀을 말하지 않고, 덕분에 긴장감은 끝까지 지속된다. 그러나 <비스티 보이즈>에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상업영화의 틀이 부담을 준 것일까. 영화는 결국, 소재의 화려함에 갇혀 질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귀여울것 같은 변강쇠
음담패설 영화 <가루지기> 영화는 불의의 사고로 사내구실을 못하게 된 변강쇠(봉태규)가 우연히 만난 도사로부터 비책을 전해듣고 천지개벽할 양기를 지닌 인물로 돌아오는 과정에 공을 들인다. 변강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달갱 역은 신예 김신아가 맡아 무용 실력을 뽐낸다. 산불을 진압하는 변강쇠의 가공할 오줌발이며, 동네 여인네들이 그 앞에 줄을 선다는 설정은 새롭지 않다. <싸움의 기술>을 통해 탄탄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신한솔 감독이 음악과 무용을 곁들여 마당극처럼 풀어내보지만 소재 자체의 진부함을 덮기는 어려워 보인다. 노출 강도가 높다고 흥행이 되는 시대도 아니고, 야한 이야기를 한다고 관객이 몰리는 상황도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웬 난데없는 변강쇠 타령인가. 투자·배급사인 쇼박스는 “고전성 해학극이 사라진 상황에서 소재가 독특하고 기발하다고 판단했다”며 “과거의 변강쇠 캐릭터가 억압적이고 마초같았던 반면, 이번에는 애완동물처럼 예뻐해줘야 할 것 같은 사랑스런 캐릭터로 변한 것도 재미있었다”고 투자 이유를 설명했다.
■ 불황의 그림자 밟은 복고
보릿고개와 대기근 사이 두 영화를 보며 묘한 기시감이 엄습하는 것은, 밤문화와 음담패설이라는 복고주의적 소재에 깃든 불황의 그림자 탓이다. 패션이든 문화든 경제가 어려우면 옛날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과감한 도전보다는 이미 검증된 아이템을 되풀이하려는 습성이다. 안전하게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려는 (영화)자본의 욕구가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의 상상력을 옥죄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현재 한국영화의 위기는 서사의 위기인 동시에 자본의 위기가 아닐까. 작금의 위기가 일시적인 보릿고개에 그칠지, 대기근으로 돌입하는 입구가 될지는 영화인들 자신의 깨달음에 달려 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와이어투와이어필름·쇼박스 제공.
호스트 영화 <비스티 보이즈> 접대에 지친 룸살롱 언니들이 가학적인 얼굴로 찾는 호스트바. <비스티 보이즈>는 청담동 호스트바에서 노는 언니, 오빠들의 이야기다. 갑자기 집안이 어려워져 잠깐이라고 생각하며 호스트 생활을 시작한 승우(윤계상), 입만 열면 거짓말인데다 여자 등쳐먹을 생각만 하는 재현(하정우)을 중심으로, 밤거리의 화려함을 좇아 부나방처럼 날아들어 서로를 핥고 할퀴며 살아가는 청춘들을 비춘다. 밤문화의 속살을 보여주는 도입부는 파티처럼 흥겹다. 하정우의 연기는 혀를 내두를 만큼 물이 올랐다. “너 하고만은 프레쉬한 상태에서 시작하고 싶다”거나 “5천만원 이상으로 잘 할게”등의 구어체 대사는 영화의 리얼리티를 높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런데 거기까지. 영화는 중반 이후 방향을 잃고 헤맨다. 윤종빈 감독은 장편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군대의 상명하복 문화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두 젊은이를 그렸다. 주인공은 끝까지 비밀을 말하지 않고, 덕분에 긴장감은 끝까지 지속된다. 그러나 <비스티 보이즈>에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상업영화의 틀이 부담을 준 것일까. 영화는 결국, 소재의 화려함에 갇혀 질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귀여울것 같은 변강쇠
음담패설 영화 <가루지기> 영화는 불의의 사고로 사내구실을 못하게 된 변강쇠(봉태규)가 우연히 만난 도사로부터 비책을 전해듣고 천지개벽할 양기를 지닌 인물로 돌아오는 과정에 공을 들인다. 변강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달갱 역은 신예 김신아가 맡아 무용 실력을 뽐낸다. 산불을 진압하는 변강쇠의 가공할 오줌발이며, 동네 여인네들이 그 앞에 줄을 선다는 설정은 새롭지 않다. <싸움의 기술>을 통해 탄탄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신한솔 감독이 음악과 무용을 곁들여 마당극처럼 풀어내보지만 소재 자체의 진부함을 덮기는 어려워 보인다. 노출 강도가 높다고 흥행이 되는 시대도 아니고, 야한 이야기를 한다고 관객이 몰리는 상황도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웬 난데없는 변강쇠 타령인가. 투자·배급사인 쇼박스는 “고전성 해학극이 사라진 상황에서 소재가 독특하고 기발하다고 판단했다”며 “과거의 변강쇠 캐릭터가 억압적이고 마초같았던 반면, 이번에는 애완동물처럼 예뻐해줘야 할 것 같은 사랑스런 캐릭터로 변한 것도 재미있었다”고 투자 이유를 설명했다.
■ 불황의 그림자 밟은 복고
보릿고개와 대기근 사이 두 영화를 보며 묘한 기시감이 엄습하는 것은, 밤문화와 음담패설이라는 복고주의적 소재에 깃든 불황의 그림자 탓이다. 패션이든 문화든 경제가 어려우면 옛날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과감한 도전보다는 이미 검증된 아이템을 되풀이하려는 습성이다. 안전하게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려는 (영화)자본의 욕구가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의 상상력을 옥죄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현재 한국영화의 위기는 서사의 위기인 동시에 자본의 위기가 아닐까. 작금의 위기가 일시적인 보릿고개에 그칠지, 대기근으로 돌입하는 입구가 될지는 영화인들 자신의 깨달음에 달려 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와이어투와이어필름·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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