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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앙증맞은 로봇들의 지구 구하기 어드벤처

등록 2008-08-04 14:42

SF영화 ‘월·E’
인류의 잿빛 미래와 한줄기 희망 다룬 ‘21세기판 이솝우화’
지구상에서 인류에게 허락된 시간은 얼마나 남아 있는 것일까? 출현한 지 1만년밖에 안 된 인류가, 화석연료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지 불과 200년 만에, 45억년 동안 지탱해 온 지구를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망가뜨리고 있지 않은가. 땅 속에 묻혀 있던 자원은 강제로 끌려나와 불태워지거나 흙을 뒤덮어 지구의 온도를 높이고 있고, 인간이 쓰다 버린 각종 물건은 지구를 거대한 쓰레기 더미로 만들고 있다. 디즈니·픽사의 9번째 애니메이션 <월·E>는 이 쓰레기 더미를 배경으로 인류의 미래를 점치는 에스에프 영화다.

잿빛 디스토피아의 미래

‘월·E’(Waste Allocation Load Lifter Earth-Class)는 지구라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 위에서, 쓰레기를 압축해 빌딩처럼 쌓아올리도록 ‘프로그래밍’된 청소 로봇이다. 월·E는 홀로 남아 수백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핵폭발 탓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지구는 푸른 빛을 잃었으며, 인류는 사라진 지 오래다. 고가도로는 끊겨 있고, 높은 빌딩은 폐허로 변했다. 움직이는 것이라곤 월·E와 애완용 바퀴벌레 로봇 한 마리뿐이다. 감정을 가진 ‘생명체’ 월·E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찾아낸 시디와 비디오테이프, 아이팟과 루빅 큐브로 무료함을 달랜다.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영화 <제 5원소>보다 <월·E>의 잿빛 상상력이 더 현실적이라고 느껴지는 건 왜일까?

우주를 떠도는 인류의 운명

그렇다면 인류는 멸종한 것인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극소수의 인류만이 살아남았다. 초우주적 기업 비엔엘(Buy n Large)이 쏘아올린 호화 우주여행선 ‘엑시엄’에 탄 승객들이다. 지구에서 생명체가 살 수 없게 된 이후 700년 동안 이 우주선은 지구로 돌아가지 못하고 우주를 떠돌고 있다. 모든 노동을 로봇에게 내맡긴 채 진화(퇴행?)한 인간은 목과 허리의 경계가 허물어진 완벽한 원통형 몸매를 갖게 됐으며,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을 만큼 허약해졌다. 로봇 생산과 우주 유람선 사업으로 지구와 우주까지 손아귀에 넣은 비엔엘의 대표이사 셸비 포스라이트(프레드 윌러드)는 승객들에게 보내는 디지털 메시지를 통해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지만, 700년 동안 계속된 거짓말이다.

할리우드의 낭만적 낙관주의

어느날 월·E는 우주유람선 ‘엑시엄’이 보낸 식물탐사 로봇 이브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이브는 광합성 작용을 하는 식물을 발견하면 즉시 엑시엄으로 복귀해 선장에게 보고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다. 이 프로그램은 지구에 돌아가려는 인류의 마지막 후손들이 짜놓은 것이다. 그러나 우주선 안에는 지구 귀환을 막으려는 프로그램이 하나 더 존재한다. 이브를 좇아 무작정 우주 여행을 시작한 월·E는 본의 아니게 선장의 지구 귀환 노력을 돕게 된다. 공상과학영화의 고전 <혹성탈출>의 우울한 전망을 공유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할리우드 특유의 낭만적 낙관주의가 발현되는 지점이다.

슬퍼하고 사랑하는 로봇의 연기

영화의 가장 큰 재미는 앙증맞은 로봇들을 보는 것이다. 망원경 같은 눈과 집게 같은 손으로 각종 표정 연기를 해내는 주인공 월·E는 연기력이 탁월한 일급 배우다. 이음새 하나 없이 곡선으로만 이뤄진 이브는 강력한 살상 무기까지 갖춘 무서운 로봇이지만 사랑 앞에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순정파였음이 드러난다. 이밖에 미생물 박멸 로봇 ‘모’, 고객의 아름다움을 망쳐놓는 미용사 로봇 등 각종 불량 로봇들이 등장한다. 영화 <월·E>는 나이가 많아도 꿈 꾸기 좋아하는 어른이라면 입맛이 당길 만한, 21세기판 이솝 우화다. 6일 개봉.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한국 소니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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