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영화 ‘누들’
이민족과 소통하려는 영화인의 따뜻한 몸짓
이스라엘 영화가 최근 잇따라 국내 극장에 걸리고 있다. 수천년을 이어온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을 레몬 농장이라는 우화적 공간을 통해 묘사한 <레몬 트리>, 지난달 27일 막을 내린 제12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개막작 <바시르와 왈츠를>에 이어, 2007년 몬트리올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누들>(아일레트 메나헤미 감독)이 오는 14일 개봉한다. 이 영화들이 좋은 건, 왠지 자폐적일 것 같은 이 군국주의 국가의 영화인들이 얼마나 건강하게 스스로를 반성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레몬 트리>가 팔레스타인의 시각에서 ‘점령군 이스라엘’을 바라봤다면, <바시르와 왈츠를>은 이스라엘 군인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감독의 시각으로 전쟁이 어떻게 인간성을 황폐화시키는지 밝혀낸다. <누들>은 이런 자성의 목소리를 넘어 ‘이민족’과 소통하고 화해하려는 구체적인 몸짓을 보여준다.
■ ‘이민족’과 소통하려는 의지
<누들>은 전쟁으로 남편 둘을 잃은 스튜어디스 미리(밀리 아비탈)가 어느날 갑자기 떠맡게된 한 중국인 꼬마를 엄마에게 돌려주는 힘겨운 여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힘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다. 중국인 가정부가 급한 일이 생겼다며 6살짜리 애(바오치 첸)를 남겨두고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다. 경찰에 신고하면 이 아이는 엄마를 따라 강제추방될 운명이다. 설상가상으로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은 무국적 신세라 국제 미아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히브리어라곤 “나는 중국 어린이입니다”라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이 꼬마와는 도무지 대화가 되질 않는다. 국수를 잘 먹어서 ‘누들’이라는 애칭을 갖게 된 꼬마는 이스라엘 민족을 둘러싼, 대화가 되지 않는, 이민족의 상징처럼 보인다. 처음에 꼬마를 부담스러워하고 귀찮아하던 미리는 중국어 사전을 사서 공부를 해가면서까지 말을 트려고 노력한다. 이들은 결국 말보다 국수와 젓가락질로 먼저 친해진다. 그러나 미리는 누들의 말을 알아들으려고 끈질기게 노력해 누들의 엄마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 재치있는 유머, 흥미진진한 전개
<누들>은 미묘한 심경 변화를 잡아낸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앙상블이 빛나는 잘 짜인 드라마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박진감이 넘친다. 특히, 엄마가 사라졌다는 충격에 굳게 마음을 닫았던 누들과 미리 가족의 어색한 동거가 서서히 깨져가는 과정을 풀어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유머로 갈등을 요리하는 비법도 놀랍다. 국수를 줘도 입에 대지 않던 아이가 아무도 안보는 한밤중에 그릇을 말끔히 비우는 장면이나, 연행되기 직전 누들의 엄마가 벽에다 써놓은 낙서를 디지털카메라에 담기 위해 남의 집 화장실 창문으로 잠입하는 장면 등 모든 에피소드마다 유머를 심어놓는다. 누들을 데리고 베이징행 비행기를 타는 여정은 어떤 모험 영화보다도 흥미진진하다. 이지적인 외모로 사려 깊은 연기를 보여주는 밀리 아비탈, 천진난만함 속에 엄마를 향한 집념을 숨기지 않는 바오치 첸 등 주연배우의 연기도 좋지만, 개성있는 조연들도 큰 몫을 한다. 까칠한 성격으로 이혼 위기에 처한 미리의 언니 길라(아낫 왁스만), 부인보다 처제를 더 좋아하는 형부 이지(아론 아붓볼), 한때 길라의 ‘정부’였던 여행 작가 마티(이프타크 클레인) 등이 그들이다. <누들>은 서늘한 극장에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하고 싶은 관객이라면 놓쳐선 안될 영화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제공
<누들>은 미묘한 심경 변화를 잡아낸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앙상블이 빛나는 잘 짜인 드라마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박진감이 넘친다. 특히, 엄마가 사라졌다는 충격에 굳게 마음을 닫았던 누들과 미리 가족의 어색한 동거가 서서히 깨져가는 과정을 풀어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유머로 갈등을 요리하는 비법도 놀랍다. 국수를 줘도 입에 대지 않던 아이가 아무도 안보는 한밤중에 그릇을 말끔히 비우는 장면이나, 연행되기 직전 누들의 엄마가 벽에다 써놓은 낙서를 디지털카메라에 담기 위해 남의 집 화장실 창문으로 잠입하는 장면 등 모든 에피소드마다 유머를 심어놓는다. 누들을 데리고 베이징행 비행기를 타는 여정은 어떤 모험 영화보다도 흥미진진하다. 이지적인 외모로 사려 깊은 연기를 보여주는 밀리 아비탈, 천진난만함 속에 엄마를 향한 집념을 숨기지 않는 바오치 첸 등 주연배우의 연기도 좋지만, 개성있는 조연들도 큰 몫을 한다. 까칠한 성격으로 이혼 위기에 처한 미리의 언니 길라(아낫 왁스만), 부인보다 처제를 더 좋아하는 형부 이지(아론 아붓볼), 한때 길라의 ‘정부’였던 여행 작가 마티(이프타크 클레인) 등이 그들이다. <누들>은 서늘한 극장에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하고 싶은 관객이라면 놓쳐선 안될 영화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