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홍지영 감독 ‘키친’
여성 감독 홍지영씨의 데뷔작 <키친>은 흔한 멜로영화와는 다른 지점에 서 있다. 로맨스로 시작했다 스릴러로 끝나는 영화쯤 될 거라는 예상도 보기 좋게 빗나간다.
요리 영화의 탈을 쓴 이 영화(실제로 요리의 재현에 많은 공을 들이고, 상당한 성과를 낸다)는 손예진 주연의 <아내가 결혼했다>처럼 새로운 남녀 관계에 대해 성찰한다. 하지만 <아내가 …>와는 다른 점이 많다. <키친>의 사실주의적 접근에 비하면, 지성과 외모를 겸비한, 완벽한 여자를 설정한 <아내가 …>는 판타지에 가깝다. <아내가 …>가 부지런한 여자가 두집살림을 하다 티격태격하는 과정을 거쳐 결국 한집에 모여 살게 되는 이야기라면, <키친>에서는 한 여자와 두 남자가 한집에 살다 티격태격하는 과정을 거쳐 각자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아내를 극진히 아끼는 자상한 남편 상인(김태우)과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저돌적인 연하남 두레(주지훈) 사이에서 치명적 시소게임을 벌이던 모래(신민아)는 둘 다 포기하고 자신만의 길을 간다. 여기까지는 고답적인 플롯이라고 볼 수 있지만, 영화는 결말을 열어 두고 있다. 이들이 다시 합쳐 <아내가 …>와 같은 결론을 낼 수 있다는 인상을 짙게 풍긴다. 적어도 영화라는 텍스트 안에서는 일처다부제의 실험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더 지나면, 양성애자 남성이 왕과 왕비를 모두 품는다는 <쌍화점> 식의 동거 역시 ‘장렬한 최후’ 대신 ‘달콤한 결말’을 맞을 날이 올까?
홍 감독은 케이크를 소재로 한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를 만든 민규동 감독과 부부 사이다. 5일 개봉.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수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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